두려움이 만든 어떤 습관

by 포근한 바람


1.

일상에서 생겨나는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시도하기보다 안 하는 쪽으로 선택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일까. 여전히 안 하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새롭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일단은 질러보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지? 막연한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난다 해도 미리 알고 준비하면 된다고 다독거리면서 지나온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움츠리고 살았던 시기가 더 길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드러내기보다 표현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거짓으로였든 아니든 청렴하고 결백하게 사는 것이 미덕인 양 얘기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욕망 없음(이라고 생각되는 느낌)이 그닥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은 아니었다. 어느 사이, 온 세상이 욕망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그에 대해 비용을 치르는 게 권장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진다는 걸 느끼면서 이따금 내게 묻곤 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그다지 없는데.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대해 이따금 엄마가 말하곤 했다. 너무너무 많이 울어서 아버지가 어느 버스정류장인가에 버리고 온 적도 있고, 같이 살던 작은아버지가 그만 울라며 마구 때린 적도 있었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였다고. 아마도, 무언가 바란 게 있었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울었을 테지. 하염없이 소리내어 우는 아이의 영상을 떠올려보지만 왜 그렇게 울었을지에 대해서는 내가 그랬다는데도 짐작 가는 바가 없다.

어릴 때부터 귤과 고기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곤 했다. 가난한 집에 고기가 자주 있을 리 만무했으니, 그야말로 어쩌다가 먹을 기회가 생겼을 터인데 그럴 때는 양손으로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귤은 내가 기억하는 시기에도 꽤 좋아했어서, 앉은 자리에서 혼자서 귤 한 봉지를 다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것이라면. 뭔가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 던가? 뭔가를 버리기보다 모으기는 했었다. 예쁜 것, 아기자기한 것. 지금도 화방이나 커다란 문구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데 조그마하고 알록달록한 문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것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어릴 때 어쩌다가 보게 된 백과사전에 보석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초록색은 에메랄드, 파란색은 사파이어, 빨간색은 루비... 보석이름도 보석도 예뻐서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가지고 싶어한 적은 없다.


무언가 보기를 좋아하지만 갖는 것은 다른 영역이라는 것. 이 구분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진짜로 좋아하는지를 헷갈리게 만든 기준이다. 값비싼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좀 강한 거부감같은 것. 사라질 것에 대한 집착에 대해 점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었을까.


생리적인 욕구가 매우 왕성해진다고 알려져서, 특히 뱃속의 아이를 핑계대며 먹고 싶은 것을 요구하기 좋은 분위기가 있었던 임신기에도 나는 딱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결혼 전부터 좋아하던 원두 커피와 음료보다 좋아했던 맥주를,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딱 끊었는데, 임신기간 내내 그리고 수유기간까지 포함하여 근 2년 반 동안(수유기간이 19개월이었다) 유일하게 즐겼던 저 두 가지가 간절히 생각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 나는 먹는 것에 관한한은 좀 조절이 되는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했으나, 실은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없는 편에 가깝다는 게 맞겠다. 다른 먹을거리보다 조금 더 좋아하긴 했으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달까.

아마도, 가난한 집의 맏딸이라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자라는 중에 크게 작용했지 싶다. 내가 기억하는 시점부터는 우리집이 그닥 가난하지는 않았다. 비교대상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에 돈 때문에 무얼 못하지는 않지 않았나? 생각하다가, 그런데, 사실은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의 이, 무언가를 갖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는 욕망을 알아서 접는 버릇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떤... 경멸같은 것을 키운 시기가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동생들이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졸라댈 때,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넉넉하지는 않아서, 이를 테면 나름 교육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엄마가 학교 교육 외에 세 아이 모두에게 하고 싶은 것을 다 시킬만한 여유는 없어서 큰 딸인 나는 주산학원, 둘째와 셋째에게는 각각 피아노학원과 서예학원을 다니게 한 것 같은. 한 명에게 한 번에 하나씩. 그 이상은 해주기 어렵다는 부모의 말을 그냥 한 순간에 이해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동생들은 아무래도, 당연히 어린 아이들이었으므로 무언가를 해달라거나 갖고 싶다거나 했을 것 같은데. 사건은 기억나지 않고 어렴풋한 경멸감만 남아서, 상황과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돈이 필요한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누군가에 대해 어렴풋이 아직 어리구나, 철이 안 들었구나, 나는 철이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판단했던 일들이 쌓여 오랜 습성으로 굳어진 게 아닐까.

혹은, 근거 없는, 가난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오래 끌어안고 살았던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8살이 되던 해에 번듯하게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다섯 살 무렵부터 살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 이웃 동네 대여섯 가구가 세를 들어사는, 마당이 아주 큰 집에서는 단칸방에 살았다. 우리 방 바로 옆이 돼지 우리였던가, 다같이 사용하는 공중 화장실이 있었던 집.


우물과 두레박, 토끼장 같은 것들이 있던 그 집은 어렸던 내게는 꽤 큰 공간으로 기억되지만, 여하튼 남동생이 태아나기도 했던 우리가 사용한 방은, 문을 열면 부뚜막이 보이는 부엌, 부엌문을 통해 들어서면 방 한 칸이 전부인 공간이었다. 이때의 기억은 많지 않지만 여러 가구가 살았기 때문에 앞방에 사는 누구, 옆방에 세든 누구와, 이웃집의 누구와 같이 놀거나 싸우거나, 다 함께 모여 놀았던 기억들이 간간히 떠오른다. 주인집 외에는 모두가 다 셋집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때 특별히 내가 더 가난을 인지할 일은 없었을 거다. 그럼 나의 이 오랜 가난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