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시기 전까지 꽤 오래 다닌 만신집이 있었다. 내림굿을 받은 이였는데, 이따금 그와 함께 그 집에 다니던 동생 말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가 떨어졌는가, 말은 많이 하는데 별로 맞는 얘기는 없더라고. 하필 그 동네, 그 집 근처의 만신 집이었을까. 잘 맞추지도 못한다며, 라고 생각했다.
처음 세들어 살던 아파트의 주인이 그 아파트를 팔 생각인데 살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 한 첫 번째 생각이, 역시 내 집이 있어야 하는구나, 이 낡은 아파트를 살 생각은 없고 우리는 저 이와 계약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된다고? 하는 것들이었다. 인근을 다 둘러 미분양 된 아파트 몇 채가 남아있는 단지를 발견했고, 그 동안 해놓은 저축과 관심 없던 주택 융자를 살펴보고 새 집을 계약했다.
생애 첫 집이란 은근 애착이 가는 구석이 있어서, 천년만년 살려니 했던 그 집에서 달랑 5년을 살고 타지로 떠나게 되었을 때에는 당연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전세를 주고 전세를 구해서 이사를 했다. 생각보다 오래 타지에 살게 되고 심지어 외국에까지 나가게 되는 동안, 살지 않는 동네 분위기를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세를 놓는다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원룸을 들여 부모가 임대업을 시작한 그 건물은 그들의 거주지에서 그때그때 소식을 알기에는 어려운 거리에 있었고, 아마도 그에게는 그 지역에 대한 정보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젊을 때부터 여기저기 찾아다녀, 만남의 형식이 익숙한 그 곳. 여러 사람이 들락거리고 단골이 되면 이 얘기 저 얘기 들을 수 있는 곳. 복채라는 명목의 상담비도 그의 입장에서는 적당했을 터이고. 무당이 가진다는 일반적인 예지력에 기댄 면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런 실질적인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그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그 만신과 통화를 했던가보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얘기와 무당이 말할 법한 종류의 이유 때문에 그가 아픈 거라는 말을 들었다던가. 동생이 엄마 성격에 여하튼 전화로라도 물은 얘기가 있으니 복채를 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이미 옛사람이 되었지만 엄마가 빚지는 게 싫다 해서 복채 얼마 담은 봉투를 들고 장례식 후에 그 집엘 찾아갔다.
내 얼굴이야 잘 모를 테지만 그와 함께 만나곤 하던 동생이 현관을 들어서자, 그 만신, 엊그제 돌아가신 그의 안부를 물으며, 다 괜찮아지실 거라고, 곧 나으실 거라고. 엇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별 다른 말 없이 동생은 예, 예, 그러면 좋죠, 라고 답했고.
병실에서, 전화기 저 편에서 만신이 했다던 이런저런 말들을 그는 얼마나 믿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