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92

by 포근한 바람


외할머니와 그의 둘째 딸은 외모가 많이 닮지는 않았다. 작달막하고 동글동글 오동통했던 할머니는 겉모습만 보면 귀염성 있어 보여 장난을 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사노 요코의 그림책 표지에 등장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화를 내실 땐 <백만 번 산 고양이>의 고양이가 짓는 눈초리를 하시기도 했으나.


그는 상대적으로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가져 어디를 봐도 귀엽다거나 작다는 느낌은 없었다. 젊을 때에는 예쁘다기보다 잘 생겼다 소리도 아마 들었지 싶으나, 전해들은 말이 없으니 알 수는 없다. 외할머니가 ‘선비’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해준 이는 그였다. 그 단어가 주는 느낌과 할머니의 인상은 퍽이나 다르지만, 이따금 보았던 할머니의 옛사람스러운 행동방식, 그에게서 들었던 몇 안 되는 할머니와 관련된 일화를 연결해보면, 얼추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더 자세히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외할머니는, 아마도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얼핏 듣기로 자랄 때는 꽤 귀하게 대접받았다 했다. 결혼 후 몇 해 안 돼 홀로 아이를 키우는 처지가 될 거라고는 상상치 못하셨을 테지. 그 시기에, 전쟁이 나고, 남편이 사라지고, 영영 돌아오지 않은 채 긴 생을 살았던 당신 어머니에 대해 그가 무슨 마음을 가졌을지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없다. 그런 걸 물어볼 생각이 들 무렵까지 그가 살아있지 않다는 말이 더 맞겠다.


둘 사이가 다정하다거나, 서로가 서로를 따뜻이 위해준다거나 하는 느낌으로 보인 적은 한 번도 없다. 선비처럼, 선비의 자식처럼 마음 속으로 깊이 사랑하고 생각했을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모녀 사이 딱 그 거리를,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렇게 생겼고 늘 그렇게 살아와서 서로 지키는 듯 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의 세 딸은 모두 다 무덤덤했다. 삼 일 내내 그런 자매들을 지켜보던 아부지가 어째 우는 자식 하나가 없다고, 그리 매정할 수 있느냐고 타박을 할 만큼 말짱한 얼굴이다가 화장을 하고 난 후 장례를 마칠 때까지 셋 모두 또 그렇게 울 수가 없겠다 싶게 서럽게 울어 얼떨떨하기까지 했는데.


시어머니는 훨씬 더 나이 들어 당신의 어머니를 보내드렸고, 때때로 당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 짓곤 하셨다. 그보다 이른 나이에 모친을 잃은 그는 모친이 돌아가시고 나서 당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멀리 떨어져 살았고 아주 가끔만 만나던 시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나. 어쩐지 그와 외할머니 사이에는 ‘그리움’이란 단어가 끼여들 여지가 없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이제야, 엄마를 잃은 엄마는 내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 또한 그에 대해 무덤덤한 딸이었는데도 이런저런 마음이 드는데, 그 시기에 그는 당신 어머니를 보내고 마음으로 무엇을 겪고 있었을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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