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종말

by 육만호

능소화가 만개했다.

여름이 온 것이다.

선홍빛이 가을과 닮아있다 생각했는데

한사코 더위에 두 눈이 뿌예지면

이토록 몽환스러운 여름이다.


누군가는 러브버그가 한껏 기승을 부릴 때

곤충 따위도 사랑을 나누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이 외롭다고 한다.


뭐 사랑이 인간만의 것이던가


더위에 헥헥 대는 강아지는 혓발을 내밀고

점멸하는 사이를 비집고 들 것에 실려가고 있다.


이 더위도 인간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미치게 사랑한 영국밴드는 화해를 했고

그때 내가 사랑한 것이 그들인지

그들을 좋아한 너였는지 의문이 드는 오후


여름이 갈 것이다.

선홍빛의 가을이 올 것이다.

갈변하는 계절이 올 것이다.


그러다 사라지는 계절이 올 것이다.

이 아득한 알아차림은 인간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