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을 담은 김밥
잘 말아줘 잘 눌러줘~
아침 잠 많은 나를 번쩍 눈뜨게 하는 힘을 가진 놀라운 녀석이 있다. 자명종소리보다 더 큰 엄마의 목소리로 깨우기도 전에 몸이 벌써 일어나는 것을 보면 큰 힘을 가진 게 분명하다.
사부작사부작
밤새 잠을 설쳤는데도 일찍부터 나를 설레발치게 하는 오늘은 학교 소풍가는 날.
막상 소풍을 가면 다리만 아프고 땡볕에 고생하는데도 전날 잠을 설치게 만드는 이유는
간만에 맛있는 엄마표 김밥을 실컷 먹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과자를 가방에서 재차 확인하고 이제 김밥을 담기만 하면 소풍 떠날 준비는 끝.
주방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김밥을 말고 계시는 엄마의 모습은 늘 반갑다.
고슬고슬한 밥에 소시지와 노란 단무지, 어묵, 초록의 시금치, 맛살, 두툼하게 썰어놓은 계란지단에 주황색 당근을 채 썰어 살짝 볶은 뒤 커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김밥속 재료들을 바라보다가 유독 높게 쌓여있는 계란지단에 손을 대고 동생과 하나둘씩 집어 먹다가 재료 모자란다고 꾸중듣는 건 기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김밥이 두 배로 맛있어졌다. 동네 두 군데 김밥 집에서 유독 한집만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고 보니 밥이 비결이라며 식초와 설탕, 참기름을 넣어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으면 윤기도 나고 더 감칠맛이 난다고 따라하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수북이 쌓아올린 김밥을 자르기 전에 우리 집에서 꼭 거치는 과정이 있다. 프라이팬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트린 뒤 기다란 김밥을 올려놓고 약한 불에 좌로 정렬 우로 정렬 몇 차례 굴려주면 김밥을 썰기 좋고 김의 비린내도 잡아주면서 더 맛있다.
그렇게 초등학교 때는 동네에서 다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라 우리 집 김밥이 제일 맛있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 소풍간 날, 눈동자 모양을 한 김밥과 하얀 속살을 드러낸 누드김밥 각각의 재료들과 밥으로 모양을 낸 다양한 김밥도시락을 보면서 김밥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떻게 말아야 이렇게 되지? 밥이 흐트러지는 건 아닐까? 눈동자모양의 김밥을 하려면 한쪽 끝을 눌러줘야 되나?’ 당근과 햄사이에 밥을 저렇게 넣을 수가 있는지 별의 별 궁금증이 올라왔다.
우리 집은 이제 분홍 소시지에서 햄으로 바뀌었고, 가끔씩 노란색의 계란지단을 김발처럼 말아주시면 세상 특별한 김밥이라고 좋아했었는데 세상 다양한 김밥 앞에 우리 집은 그저 평범한 김밥일 뿐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렇게 만드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라 김밥 틀이 따로 있었다. 그 놀라움 이후로 김밥은 내게 소풍 전 설레임을 갖게 하는 김밥에서 방과 후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한 끼 가볍게 먹는 먹거리가 되었고 특별히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김밥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풍 때 김밥을 싸주시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한 개라도 더 맛나게 먹일 수 있을까? 아이의 작은 입 크기에 맞게 한입 크기로 말아주었다. 날이 더울 때는 아삭한 오이로 날이 선선할 때는 시금치로 초록색 멋을 내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에서부터 다양한 식재료를 넣어 김밥을 말았다.
입맛도 없고 밥하기 싫을 날은 참치에 잘게 썬 김치를 넣고 고추장을 넣어 달달 볶아주어 김밥을 말면 많이 먹어도 느끼하지 않은 맛있는 참치김밥이 완성된다.
어느새 우리 집은 김밥이 소풍 때만 먹는 먹거리에서 여느 쉬운 반찬처럼 자주 해먹는 음식이 되어있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봄소풍을 다녀온 무렵, 나는 어느 가수의 김밥노래를 즐겨 부르며 일에 싸인 스트레스를 풀 고 있었다. 노래가사처럼 김과 밥은 늘 붙어산다는데. 결혼 전부터 불협화음이던 우리부부의 헤어짐 이후로 아이들과의 갑작스런 단절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부터 챙기던 김밥을 더 이상 싸줄 수 없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 물어보니 김밥대신 볶음밥을 싸서 갔다고 했다.
오랜시간동안 서로의 상처와 아픔에 갇혀있느라 단절된 우리에게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아픔도 조금씩 더디어 갈 무렵 아이들과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서, 소풍 때 못챙겨주던 미안한 마음을 담아 나는 김밥을 꼭 싸기 시작했다. 몇 줄 돈 주고 사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소풍 때마다 김밥을 못싸고 다닌 게 혹시라도 마음의 상처가 될까봐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들 먹일 마른 반찬과 평소 먹고 싶다던 음식을 만들고 예전에 평범하다고 했던 엄마표 김밥을 나도 똑같이 만들어서 간다.
한줄 두 줄 아이들의 먹성이 좋아서 일곱 줄은 도시락에 담고 나머지는 호일에 한 줄씩 말아주면 아이들과 놀다가 먹기에도 좋다.
아이들 집근처에서 만나 반찬과 먹거리를 한 짐 건네주고 근처 밖에서 기다리는데
누군가 아는체 해왔다.
“이게 누고?”
벌떡 일어나 얼떨결에 인사를 했지만 무척 어색한 만남이었다. 아니 평생 안 만나도 좋으련만 아이들의 친할머니는
“이게 뭐하는 짓이고?” 하면서 말문을 이어가셨다.
어쩌면 이분이 살아계시면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시는 마지막 일수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의 평정심도 생기고 끝까지 들을 수 있는 용기도 생길 즈음
10여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엄마 가요~” 아들의 목소리에 짧은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데 갑자기 서러운 눈물이 핑 돌았다. 다행이 조금 전부터 오락가락하던 빗방울 덕분에 후드모자를 쓰면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게 고마웠다.
아이들도 눈치가 백단인지 조금 걷자고 했다. 우리는 근처 공원에서 싸온 점심도시락을 먹을 수 있도록 비를 피해 의자에 앉았다.
“엄마가 너희들과 같이 살면서 엄마로써 해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할 뿐이지 엄마는 너희에게 큰 죄를 짓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만나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고 얼굴을 보는 것이 엄마는 그저 감사한 일이라고…….”
그리고 엄마가 올 때마다 김밥을 싸오는 것은 너희들 소풍 갈 때마다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엄마가 없어서 김밥을 못싸간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풀고 싶은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들은 한 달에 한번 나를 만날 때마다 엄마표 김밥을 먹는다.
한입가득 입에 넣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앉아 먹을 수 있는 김밥이 있어 너무 감사하다.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어묵국물과 함께 날이 더운 날은 탄산음료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다.
배가 부르면 잠시 남겼다가 다시 배고플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한입 김밥이 내게는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
어느 날은 김밥보다 함께 만들어간 소고기불고기가 더 맛있고, 비빔만두도 맛있다고 하면 김밥에 대한 충분한 기억이 쌓여진 것 같아서 내심 기쁘기도 하다.
나에게 김밥은 부지런을 떨게 하는 음식이다. 어릴 적 소풍전날 가졌던 설레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줄 수 없는 현실이지만 엄마를 만날 때마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김밥의 추억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집근처 어디서든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이 김밥을 마주할 때마다 입 안 가득 넣고 오물오물 맛나게 먹는 아이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김밥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마음과 정성이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에게 엄마표 김밥이란?”
“엄마의 사랑입니다.”
“흑미김밥 입니다.”
우리는 김과 밥처럼 붙어살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늘 그렇게 붙어살기를 응원한다. 애들아!
사랑하고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