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by 영민아이

2019년은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이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한해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던 어느 날, 사촌남동생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미국체험학습을 가는데 아이들의 인성을 담당할 여자 선생님이 필요하다며 7월23일부터 8월 3일까지 10박 12일의 기간 동안 시간이 되냐고 물었습니다. 비행기 값이며 모든 비용걱정은 하지 말라는 기적 같은 말을 들었고 전화를 끊자마자 두근두근 설렘과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의 습관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는 저에게 인성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인데, 러시아 캐나다 다음으로 큰 미국대륙을 운전하고 영어로 말하고 인솔한다는 너무 막중한 책임감에 다시 통화할 때는 자신 없다 는 말을 늘어놓으며 영어강사인 제 친구를 같이 데리고 가면 어떠냐는 제안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당연히 안 된다고 했고, 경험 많은 동생은 ‘할 수 있다’ 며 제 마음을 다독여 주었고, 저의 일생일대 아메리칸드림? 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체험학습기간까지 4개월 남짓한 시간. 제일먼저 작년에 다녀왔다는 미국체험학습후기를 읽어보고 미국의 동부와 서부지역에 관한 책을 도서관에서 싹쓸이해서 읽었습니다. 다행이 비행기 일정과 맞지 않아 서부 여행은 생략하고 동부지역만 간다고 했을 때는 오히려 기뻤습니다. 드디어 동생이 보내준 일정에 맞춰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펴서 꼭 관람해야 할 곳과 코스등 역사에 관한 중요한 것들을 메모했습니다. 일정 중에 나사의 케네디 우주 센터를 가는데 신기하게도 TV영화채널에서 우주항공센터에서 아폴로발사에 관한 영화를 하는 것이 마치 미국여행에 대한 초보인 저를 안심시키며 불안이 점점 흥미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미국전자비자를 30분 안에 신청하고, 열심히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잘될 리가 없지요. 영어파닉스부터 시작해서 공항에서 출입국할 때 자주 하는 질문을 보고 적고 말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으니 이제 공항만큼은 자신 있다 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장시간 동안 미국항공사의 비행기 안에서 꼭 필요한 영어와 화장실의 주요 명칭까지 커피주문과 버거주문할 영어영상을 필요하다고 생각한 만큼 모두 보고 적고 말하기 연습을 하고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사면서 해야 할 영어까지 하고나니 마지막으로 도로 주행 시 필요한 도로교통법에 대한 간단한 공부를 끝냈습니다. 유학 다녀온 지인이 다른 건 몰라도 네거리에서는 무조건 1분 정도 멈췄다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렇게 겁 많은 제가 너무 요란하게 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지인 분들이 여행 잘 다녀오라며 두둑한 쌈짓돈까지 챙겨주셨고, 7월23일 체험학습 떠나는 날이 마침 생일이었는데 이제껏 살면서 미국여행이라는 가장 큰 생일 선물을 받은 감격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함께 떠날 20명의 학생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고, 어려서부터 큰 꿈을 심어주려는 부모님들의 정성이 새삼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기 있는 저 친구가 우리 딸이고 아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같은 생각을 뒤로 하고 짐을 부치는 동안 인터넷으로 신청해놓은 유심 칩을 찾으러 공항 구석구석을 헤매면서 한국말인데도 헤매는데 미국에서는 어쩌지 하는 염려가 올라왔습니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여러 차례……. 남편이 대신 해주던 사소한 일들을 하나하나 혼자하려니 정말 느렸습니다. 얼른 다녀오겠다던 제가 늦자 아이들이 아닌 저를 걱정하는 동생에게 시작부터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3시간 비행 끝에 디트로이트 공항에 도착했고, 워싱턴을 향한 환승 비행기를 탔습니다. 대형여객기에 비하니 이번엔 아주 작은 비행기인데다, 사람도 적어서인지 마음이 한결 편했고 쿠키를 먹은 다음이라 지나가는 승무원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습니다.

“워터 플리스”

덩치 큰 흑인 승무원이

“홧?” 하고 되묻는데 순간 그 억양이 너무 커서 내가 뭘 잘못 말했나? 하고 혀를 굴려

“워러 플리스” 라고 작게 말하고 난 후부터 저의 입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입국심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누나로써 인솔 선생님으로써 좀 멋있게 보이려고 했던 자신감은 ‘워터’ 발음이후에 급 작아졌고, 호텔리무진을 기다리는 동안 ‘역시 미국이구나!’ 할 정도로 크고 넓고 튼튼해 보이는 모든 것에 속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닌 척 동생을 의지하며 호텔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워싱턴에서의 첫날밤, 처음끼워보는 유심 칩에 로밍하기까지 설명서를 읽고 또 읽어가며 겨우 성공하고 나니 이 쉬운 것도 남편이 다 해줘서 한참을 헤매고 사는 구나 반성도 들고, 아이들은 피곤해 자는 사이에 짐풀고나서 미국화폐단위를 다시한번 공부하고 내일 일정을 훑어보니 이제 시작인데 앞으로 남은 날이 까마득해보였습니다. 과연 그날이 오기는 올는지 내가 그 시간동안 잘 버텨낼 수 있을지…….

간사한 게 사람마음이라고 했던가요? 며칠 지나고 나니 현지에서 만난 한국선생님도 계시고 함께간 남자 선생님들이 있어서 인지 여전히 말은 못하지만 마음이 안정 되면서 한국에서 걱정하실 아이들의 부모님들께 하루의 즐거웠던 일들을 보고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영어를 잘 사용했고 한국에서도 무섭다는 중2학생들이 많아서 인지 다들 용감하게 바디랭귀지며 짧은 영어를 쓰면서 다들 신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 저보다 훨씬 기특했습니다. 애들만도 못한 내가 속으로는 부끄러웠지만 나도 너희들 나이때는 그랬단다……. 입이 안 떨어지는 제 마음도 답답했지만 다음번에 오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하고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봐도 재밌는 건 다급할 때는 어떻게 말을 할지 이리저리 생각을 하지 않아서인지, 쇼핑센터에서 이 화장실은 공사 중이라 사용할 수 없으니 다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냐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시간이 빠른 것 가기도 하고 멈춘 것 같기도 하던 미국체험학습기간의 끝이 보였습니다. 여전히 말은 잘 안나왔지만 최소한의 말은 들렸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휴가를 내서 이곳 디즈니월드에 다모였는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많아서 길을 걷다가 서로 부딪힐 정도라 평생 동안 사용해야 할 단어인 'SORRY'를 종일 했던 것 같습니다. 미안하다고…….


4번의 비행기를 타면서 보완 검색한다고 캐리어속 내용물이 깨진 것도 있었고, 한국 돌아오는 길에 캐리어가 망가지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0박 12일 동안 생일이 이틀인적은 처음이었고, 가기 전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올수도 있다는 어느 유투버님의 말에 설마 했었는데 ‘SORRY’ 만 말하고 온 그 사람이 나인 것을 떠올리니 웃음도 나왔습니다. 여행 짐을 풀자마자 라푼젤로 영어 귀 뚫기 훈련을 했고, 지금도 매일 엄마표 영어를 반복하며 영화채널을 볼 때마다 들려오는 문장에 귀가 번쩍 뜨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는 지난여름, 12일의 미국여행이 꿈같고 아득하지만 하늘에서 큰 생일 선물을 주신 것 같아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고,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도 언어가 안돼서 영어로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지나고 나니 한국에서 한국말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감사임을 깨달았던 나의 부족함과 나의 넘침을 생각하는 고마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이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제 발로 걸어 다니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기쁜마음으로 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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