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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국 생활

2달간 영어만 썼더니 생긴 일

by 슈퍼거북맘

지난 8월 10일, 영어몰입 프로그램에 집중하겠다며 글을 올렸다.


https://brunch.co.kr/@ymisblue/112


뒤늦게 확인하니 이 글이 조회수가 10000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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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영어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글을 올릴 때 제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ㅋㅋ 후킹한 제목을 올리니 다음 포털 메인에 올라가는구나!


그 뒤로 두 달여가 지난 지금, 그동안 진행된 나의 영어몰입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1. IEP 미팅, 통역 없이 완주하다


아이의 IEP(개별화 교육 계획) 미팅이 1년에 두 번 열린다. 작년에는 학교 측에서 내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통역서비스를 연결해 주었다. 나도 첫 IEP 미팅이라 긴장했고 전문적 용어를 영어로 잘 말할 자신이 없어서 통역에 의존했었다.


그런데 두 번 통역을 겪어보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제대로 잘 전달해주지 않아 답답했고, 원어민이 하는 말을 온전히 전해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심지어 작업치료 등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통역사는 내가 말하는 용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냥 내가 직접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1시간 정도 걸리는 회의가 통역을 거쳐 전달되다 보니, 그리고 전화로 연결되는 통역 서비스의 특성상 멀리 앉아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면 진행이 안된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 앞으로 전화기를 갖다 대는 등의 물리적 이동이 필요하다 보니 시간이 2배 이상 지체되었다. 가뜩이나 바쁜 선생님들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결국 '이럴 거면 그냥 내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지난 9월 초에 이루어진 아이의 새 학기 IEP 미팅. 작년의 교육목표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목표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며칠 전 담당 선생님이 문서를 이메일로 보내주셔서 미리 읽어보고 내가 할 질문이나 의논할 사항들을 미리 체크하고 준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매일 스피킹을 연습했지만, 실제로 내가 원어민들과의 회의에 참석해 내 의견을 말하고 그들의 말에 피드백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되어서 당일 아침엔 평소보다 더 새벽같이 일어나 산책하고 명상하는 루틴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회의에 들어갔더니 이미 학교 측에서 통역 전화서비스를 연결해 놓았다. 나는 통역사 Jeff에게 내가 필요할 때만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고 선생님들에게 내가 직접 할 거라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


나는 내가 준비한 질문과 요구사항에 대해 침착하게 얘기했고, 선생님들의 말을 듣고 적절히 반응하고 대답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회의를 진행했다. 내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지만 대화 속에서 묻고 대답하는 말들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1시간 만에 회의가 끝났고 선생님들이 매우 만족해하며 나를 칭찬(?) 해 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Jeff가 필요 없다며 ㅋㅋ


영어몰입 프로그램의 효과를 체험한 첫 순간이었다.



2. 영어 영상이 더 들리기 시작하다


두 달간 한국어 콘텐츠를 전부 끊었다. 영어 유투브 영상을 내가 관심 있는 주제들로 매일 산책길에, 아이를 라이드 하며 수시로 들었다. 차 안에서는 라디오를 켜고 영어 뉴스를 듣기도 했다.


수동적 듣기 말고도 적극적 듣기도 병행했다. 미드 쉐도잉(shadowing), 딕테이션(dictation) 등도 따로 시간을 내어 진행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당연히 귀는 아직 안 뚫렸다. ㅋㅋ

그런데 확실히 두 달 전보다는 더 많이 들린다.


미국인 남편과 살고 있는 지인 말로는 본인 남편은 미국인인데도 100프로 다 못 듣는다고, 7~80% 정도만 알아들어도 성공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단어가 귀에 들리는 것(음운 인식)이 문제가 아니라,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것(comprehension)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단어 하나하나 다 들으려고 하기보단,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목표로 해야 한다.



3. 영어로 꿈꾸기 시작하다


뇌의 언어모드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스위치 되면 영어로 꿈을 꾸기 시작한다는 말, 두 달 만에 체험했다. ㅋㅋ

물론 완전히 스위치 된 것은 아니고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영어로 말하는 꿈을 두 번 꿨는데 한 번은 내가 잡 인터뷰 준비한다고 달달 외우고 연습했던 문장을 꿈속에서도 말하는 꿈이었고, 한 번은 영어로 뇌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잘 드러난 꿈이었다. 일본 호텔에서 내가 요구한 대로 방 배정이 잘 되지 않자 지배인에게 영어로 막 말하다가 답답하니까 Korean translator 부르라고!!! 소리친 꿈이었다. ㅋㅋㅋ


내 뇌는 과도기의 격렬한 저항을 겪으면서 잘 전환되고 있다.



4. 영어로 말하며, 엄마가 바뀌다


영어를 쓰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 아이에게도 영어로 말했다. 처음엔 일상생활에서 아이에게 쓸 법한 사소한 표현들을 영어로 뭐라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사놓았던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한 생활영어에 관한 책들을 참고하기도 했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은 chatGPT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놀랍게도, 아이에게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자 뜻밖의 가장 큰 수확은 바로 "관계 개선"이었다.


나에겐 이미 수십 년간 가지고 살던 '한국어 자아(ego)'가 있다. 그 에고는 익숙한 감정과 익숙한 생활 패턴, 행동 양식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새로 도입한 '영어 자아'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다. 마치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동안 쌓여왔던 부정적 감정도, 불편한 경험적 지식도 없다.


이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바뀌는 경험이라고 하겠다.

그야말로 정체성이 바뀌는 것이다.


한국어 자아를 가진 엄마는 그동안 아이와의 경험을 통해 쌓여왔던 오래된 부정적 감정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한다.


그런데 영어 자아를 가진 엄마는 미드에서 보던 것처럼 과장된 리액션과 칭찬을 쏟아놓는 '미국 엄마'가 된다.

실제로 내가 쉐도잉 연습했던 미국 엄마의 문장과 억양 그대로 아이에게 말했더니, 마치 내가 정말 그런 미국 엄마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자 아이에게 화가 날 것 같으면 영어로 말한다.

진짜로 효과 있다.


혹시 아이에게 새로운 엄마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시도해 보라.

진심으로 추천한다.



5. 인터뷰 성공, 그리고 채용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핵심적 성과는 잡(job)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결과 회사에 채용되었다는 것이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꼭 필요한 fieldwork 과정이었고, 내가 영어 몰입 프로그램을 시작한 직접적 목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내가 목표했던 성과를 이루었다.


나의 상황과 조건에 꼭 맞는 이상적인 회사로부터 인터뷰 제안이 왔고, 나는 두 달간 연습했던 영어몰입 경험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인터뷰와 현장 적합성 평가마저 마치고, 마침내 그 회사로부터 채용되었다는 정식 오퍼(offer)를 받았다.

불과 지난주 금요일의 일이다.

지금 채용을 위한 onboarding process를 진행 중이고 조만간 일을 시작할 예정이다.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물론 아직도 내 영어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제보다 한 문장 더 말하고, 어제보다 한 단어 더 들렸다면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다.


나의 영어몰입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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