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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드나잇 인 미 Dec 12. 2024

[독후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김부장으로부터 거울치료 제대로 당한 나의 반성의 글


가벼운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무거운 책을 읽다보니 눈꺼풀도 같이 무거워져서 전자책으로 다운받았다.

짧고 익숙한 문장들로 구성된 이 책은, 훈계도 자랑도 하소연도 경험담도 아닌, 담백하게 교훈을 주는, 딱 내 정서의 도서이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책은, 서울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장, 정대리, 권사원, 송과장의 이야기를 제3자의 관점에서 각각 묘사하고 있었는데, 김부장이 나오는 1권을 읽자마자 김부장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서 마음이 불편했고, 또 깨달았다. 마음 한켠에서 찌르르 울리는 감정에 2,3권을 내리 읽었다.


'김부장'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부장직급을 달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상사들의 비위를 맞춰주며, '임원 달려면 이정도는 기본이지'라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있는 아부쟁이이자, 본인이 걸어온 길이 최고의 길이라 생각하는 꼰대이자, 아내와 아들을 통제하려는 가부장적인 가장이다. 한마디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을 본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김부장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김부장은 그저 열심히 살았던, 가정을 책임지려했던 사람일 뿐이었다.

김부장은 넉넉치 않은 가정에서 자라나, 사회적인 인정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대기업'에 가면 인정받을 수 있겠지, '임원'을 달면 본인이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겠지, '대기업 부장'이라면 적어도 명품 시계, 가방 하나쯤은 있어줘야지, 한국 대기업 부장이라면 그랜저쯤은 타줘야지 하는, '대한민국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시선에 갇혀진 사람이다. 김부장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오로지 본인의 앞길을 위한 생각에서 비롯되고, 본인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미친듯이 질투하며 끊임없이 남과 본인을 비교한다. 후배, 친구들보다 무조건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그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남들도 본인을 인정해주고, 승진심사에서 단 한번도 누락된 적이 없으니 그야말로 '성공의 표본'이 본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다 보니 눈과 귀를 닫고, 본인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은 모두 폄하하고, 후배들이라면 모조리 무시, 상사들이라면 어떻게든 잘보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안타깝게도 시대의 흐름은 바뀌고 있다. 닫혀진 생각보다는 참신하고 현실적인 생각이 우선시되고, 일만 해서는 부자가 될 수 없게 되고, 더 잘배우고 훌륭한 후배들이 많아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김부장은, 이런 것들을 살펴보지 못한다. 그저 본인이 인정받고 잘나가던 때에 멈춰있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김부장은 믿었던 상사에게도 버려지며, 그의 성공도 함께 저물어갔다.


책을 보는 내내 너무 공감이 가서 불편했다. 김부장은 대한민국 중년 남성이었지만, 김부장에게서 대한민국 사회초년생인 내가 보였다. 나도 사회적 인정과 시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친구들로부터 '돈 많이 벌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친구'로 인정받는 것, 직장동료로부터 '일 잘하는 동료'로 인정받는 것, 그러면서도 꽤나 잘풀린 인생이라며 스스로 뿌듯해하고 남들의 조언을 새겨듣지 않는것, 나보다 경험이 짧은 친구들을 보며 은근슬쩍 위상을 내세우는것.. 나이를 빼놓고 보면 뭐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가 한 소비들과 언행들을 돌아보았다.

남들보다 1년정도 일찍 취업했다는 자부심으로 강남 한복판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대학생인 친구들을 만나면 '돈 버는 내가 쏜다'하며 턱턱 밥을 사곤 했다. 성과급을 두둑히 받았는데, 평생 갖고 다닐 명품가방 하나 정도는 사도 된다는 마인드로 1년차 때 가방을 샀다. 직장인이라면 취미 생활은 가져도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골프를 시작했고, 한번 갈 때마다 30만원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며 공이 아닌 땅을 치러 다녔다. 골프를 치다보니 차가 필요했고, 이정도 돈을 모았으면 차 한대쯤은 사도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작은 차를 한대 샀다. 이 모든 크고작은 소비들을 하면서, 합리화를 많이 했다. 나의 소비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자취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 좋은 '체험'이었고, 가방은 경조사때마다 평생 들고 다닐 생각으로 딱 한개만 갖고 있는 것이고, 물려받은 골프채와 옷들로 돈이 들어가지 않고, 골프를 친 덕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잘한 것이고, 예상보다 많이 받은 퇴직금으로 차를 구매했으니 또이또이다. 그러면서도 돈을 안 모은 건 아니니, 이정도면 '잘한 소비'라고 생각했다. 자랑하며 다닌 것이 아니니 허세도, 엄청난 사치도 아니라며 스스로의 소비에 이유를 만들고 위로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김부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소비에는 단 한 개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소비가 없었다. 심지어 소비에 대한 이유마저도, 남들이 나한테 물어볼 경우를 대비한 변명이었다.

일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운좋게 경력직으로 입사한 다른 팀원들보다 더 많은 책임과 신뢰를 받았다. 동료가 나한테 찾아와, '멘탈 강해지는 법'을 물었다. '한참 어린 나에게 이런 조언을 구하다니? 역시 나는 꽤나 출중한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내가 걸어온 길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고집이 강해졌고, 시야가 좁아졌다. 아이디어를 마구 내는 팀원에게 경쟁의식을 느꼈고, 팀리더에게 나의 입지를 굳히려고 애썼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스스로의 오만함과 꼰대스러움을 깨달아갈 무렵, 퇴사를 했다. 다행히 자기객관화가 어느정도는 되어있었는지, 스스로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는 했으니 다행이었다.

이런 나의 쇼윈도 라이프...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이 시점에도 떳떳하지 못하다. 내가 수많은 채널 중 브런치를 선택한 이유가 브런치는 '작가 심사'가 필요하고, 심사가 통과되었다는 것은 나의 글을 타인이 인정해주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절차였던 것이다. 졸지에 독후감이 고해성사가 되어버렸는데, 그만큼 나는 김부장에게서 나를 느끼고 반성하고 있다. 최근에 산 옷들이 떠오르고, 아직 배송 전인데 취소시켜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껏해야 1-2주에 한번 타는 차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나를 버티게 해준 골프를 포기해야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그 어느 경제 서적들보다도, 경제관념을 깨워준 책이다. 경제를 넘어 정신적으로 '나'라는 사람, 잘 사는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필두로 그간 겉핥기만 했던 재테크공부를 시작해보려 한다. 김부장을 이해할 수 있는 현 시점에, 너무 늦기 전에 김부장을 만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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