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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Nov 28. 2018

다른 방식으로 그리기 #1 도구의 활용

가방에 노트와 연필을 찔러 넣고 훌쩍 여행을 떠나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고, 때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향기를 맡으면서 창밖의 모습을 한 장의 종이 위에 옮기는 꿈을 꾸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시작한다. 매일 조금씩 따라 하면 된다는 드로잉 책도 사고 미술 학원 문도 두들겨 보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잘 보고 그대로 그리기만 하면 된다는데, 왜 이리 보이는 데로 그리는 것이 어려울까?


그림은 근본적으로 3차원 입체를 2차원 평면에 옮기는 작업이다. 우리의 눈은 3차원으로 보는데 2차원으로 옮기려니 쉬울 수가 없다.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드로잉 책의 저자나 미술학원 선생님 역시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결과이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퇴근 후나 주말에 잠깐 밖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입장에서 그들이 받은 훈련받은 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한 워크숍은 미국의 미술교육 학자인 베티 에드워즈의 두 권의 책,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Drawing on the Right Side of Brain)'과 '내면의 그림, 우뇌로 그리기(Drawing on the Artist Within)'에 나온 이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베티 에드워즈는 대학에서 비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미술을 가르쳤다. 드로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포기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그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좌뇌-우뇌 이론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교습법을 창안하게 된다.
1979년 처음 출판된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 책은 수십 개 나라에 번역되어  비전공자를 위한 미술 교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술교육 시장이 유아와 전공자 위주로 형성되어 있어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 같다.  

베티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교습법은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거꾸로 그리기', '순수윤곽소묘'와 같이 기존 미술교육의 틀을 벗어나 새롭고 혁신적이다. 특히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성인을 위해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드로잉 훈련이 부족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베티 에드워즈가 제시한 보이는 데로 그리는 훈련법에 대해 소개하겠다.

(1) 프레임 안에 그리기    


에두아르 마네 <아르장퇴유의 배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

많은 사람들은 배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네 부부처럼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자유롭게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왠지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 아마추어 같이 보이고, 수업 시간에도 그냥 스케치북이나 캔버스에 바로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이 방법은 숙달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훈련을 요구한다.    

사실 화가들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달리 옛날부터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리는데 도구를 활용해 왔다. 16세기의 위대한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는 3차원 물체를 2차원 평면 위에 옮길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다. 아래의 그림처럼 화가 앞의 탁자 위에는 격자 철망과 똑같은 크기의 격자 표시 종이가 놓여 있는데, 화가는 이 철망을 통해서 정확한  각도, 굴곡, 선의 길이 등을 수직·수평선과 비교하면서 그가 지각한 것을 종이 위에 그린다. 만약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그린다면 비례나 형상,  크기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실제 인체와는 다르다. 따라서 본 그대로, 즉 사실과 다른 비례대로 그리게 될 경우에만 그림이 실제와 같아진다.  이것이 르네상스 이후 화가들이 입체적인 공간을 평면에 나타내는 데 사용했던 원근 투시법의 원리이다.   


뒤러 <여인의 투시도를 그리는 제도사, 1525년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많은  도구를 활용하듯이 뒤러의 장치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면 초보자들이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우선 두꺼운 종이에 사각형 구멍을 낸 후, 투명 아크릴판을 부착하고 중심에 십자선을 긋는다. 만들어진 프레임을 통해 그리고 싶은 물체를 보면서 아크릴 판 위에 보이는 그대로 수성펜으로 윤곽선 그린다. 그려진 윤곽선이 평소에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상한 형태일 것이다. 이것이 입체적인 것을 보이는 그대로 평면에 옮겼을 때의 모습이고, 둘 사이의 관계를 자유롭게 연결시킬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 사실 같이 실감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크릴판에 그려진 윤곽선과 주요 경계선을 상하좌우 비율에 맞춰 종이에 옮긴 후 다시 물체를 세밀하게 보면서 놓친 부분과 명암 등을 표현하고 마무리한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 갑자기 향상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많은 화가가 그랬듯이 도구를 이용해 3차원 공간의 사실적 표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것이다.


(2) 비례 맞추기


눈은 얼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까?   나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 눈의 양 끝을 지나는 눈높이 선이  머리 꼭대기에서 1/3 정도 내려온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2 되는 곳이다. 이러한 인식상의 오류는 '두개골  분할의 오류라고 하는데, 그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얼굴의 중요한 시각적 정보를 이마 아랫부분에서  얻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게 느끼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옆얼굴을 그릴 때 귀는 어디쯤 있을까? 눈 끝에서 귀 끝까지의 길이는 눈높이 선에서 턱 끝까지의 길이와 같다. 생각보다 귀가 뒤쪽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귀를 눈과 너무 가깝게 그려, 머리가 잘려나간 것 같은 그림이 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더 크게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반대로 작게 생각하다. 아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사람 몸 크기로 그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스케치나 데생을 할 때 측량을 하듯이 팔을 쭉 벗은 상태에서 연필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대상의 상하좌우 비례와 각도를 측정하기 위한 행동이다. 비례와 각도만 잘 맞아도 그림이 한결 사실적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데로 가 아니라 실제의 형태를 관찰하고 비례를 측정하여 그리려고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래 그림은 수업 첫날과 1달 반 정도 지나서 화실 안의 풍경을 그린 것인데, 비교해 보면 십자선이 그어진 판과 연필만 잘 사용해도 그림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화실에 걸려있는 곡선자가 눈에 들어왔다. 곡선자를 캔버스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다리가 연상됐다. 곡선자를 세 번 겹쳐 그리고 그 위에 오일 파스텔과 아크릴 물감을 칠해 완성한 작품이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여성을 떠올리며...

<설레임>, 혼합재료, 2016.7.30.

같이 워크숍을 했던 어떤 분은 내가 곡선자를 사용하여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공대 출신이라 자를 대고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그리는군'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을 하셨다. 원래 자는 치수를 측정하고 선을 정확하게 긋기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더해지면 곡선자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을 태우고 하늘을 나는 말인 페가수스'와 '사랑을 나누는 두 마리의 새'로 변신한다.     

<페가소스> , 혼합재료, 2016.8.27.
<연인>, Acrylic on paper, 201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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