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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게구름 Dec 31. 2018

영감은 어디서 오는가?

일주일 만에 화실에 가서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의자에 앉는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지나간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는데 캔버스에는 점하나 찍혀 있지 않다. 텅 빈 하얀 캔버스는 공포이고 괴로움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겪는 고통이다. 꼭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텅 빈 모니터 화면이 주는 느낌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 올라 이것저것 구상해 보고 마침내 붓을 든다. 그런데 새로운 구상에 집중하여 작품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꿈은 사그라져 버리고, 결국에는 계속해 나갈 가치가 없다는 결론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처음의 아이디어가 수명을 다하고 다시 새롭게 구상하고 전개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겪어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결국 창작의 과정에는 끊임없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어디선가 계속 영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구상을 위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가까이에 있다. 다만 상상력과 불확실성에 맞설 용기가 없어 애써 외면할 뿐이다. 요즘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을 봐라. 누구나 매일 사용하는 화장실의 변기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상상했고,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에 맞설 용기를 갖고 전시회에 출품해 '레디메이드'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를 열었다.

   

물론 뒤샹의 행동을 거장의 괴짜스러운 행위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영감이 떠올라도,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비웃지 않을까?', '사람들이 나의 의도를 이해하고 인정해 줄까?' 등과 같은 불확실성에 맞설 용기가 없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작업하는 도중 한계에 봉착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투입하여 한 발 더 나아가는 일은 어쩌면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수 있다. 혹시 새로운 시도가 애써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모든 것을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근본적인 문제는 돠두고 엄한 곳만 계속 손을 대어 그저 그런 작품으로 마치게 된다.


나의 필명은 '뭉게구름'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을 쳐다보면서 "이건 곰 같아", "저건 기차야" 하며 놀았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뭉게구름은 정확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오히려 이 불명확함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계속 무언가를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같은 구름을 놓고 나는 곰이라고 하는데 친구는 개라고 한다. 어차피 불확실한 것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까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놀이를 즐기면 된다. 


이 뭉게구름 놀이가 나의 작업방식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나는 세밀하게 구상을 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뭘 그릴지 아이디어가 떠 오르지 않으면, 일단 무엇이 됐든 캔버스에 끄적거려 놓고 뭉게구름을 보듯이 상상의 나래를 편다. 중간에 막힐 때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림 속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는다. 어차피 내 상상 속에 있던 것을 그리는데 남들이 뭐라 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놀이처럼 그림 그리는 과정을 즐길 뿐이다. 이런 즐거움야 말로 우리 같은 아마추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즉흥적인 그리기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자연스런 무의식의 흐름과 즉각성이야말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빈 캔버스 앞에 앉아서 이 행성들 안에 무엇이 있던지, 무엇이 지나가던지, 나를 장악하도록 내버려둔다. 나는 그냥 어떤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둔다. 내가 그릴 그림이 어떤 모습이 될지 모른다는 것은 진심으로 흥미 있는 일이다."   
- 케니 샤프 -




하나의 작품이 끝나고 시간이 어정쩡하게 남았다. 새 캠버스를 끄내 놓고,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지만 뭘 그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붓을 휘들러 본다. 아닌 것 같다. 물감으로 전체를 다시 덮는다. 그리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마지막 장난으로 흰색 물감을 툭툭 떨어뜨렸다.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다음 주 화실에 가서 캠버스를 이젤에 올려놓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까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TV에서 본 한 장면이 생각났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심해에 물고기들은 뜨거운 물이 나오는 열수구 주면에 모여 산다. 열수구에서는 분수처럼 물이 솟구쳐 나오면서 주변은 물방울로 가득하다. 짙은 남색을 전체적으로 덧칠하고 나이프로 긁어 물고기를 표현해 본다. 깊은 바닷속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심해>, Acrylic on Canvas, 2017.7.15.

 앞의 그림이 남색 배경에 떨어진 물감 방울에서 영감을 얻었다면 이번 소개할 작품은 색깔에서 시작됐다.

이번 역시 작품을 끝내고 남아있는 물감으로 장난을 쳐 놓은 캔버스를 그다음 주에 쳐다보다가 아랫부분에 진한 빨강과 노란색이 겹처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불타는 듯한 강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살려나가면서 언덕과 불타버린 기둥을 그려 넣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전쟁 때문에 신전의 폐허가 되고 도시는 불타고 있는 장면을 연상하며... 

<불타는 신전>, Acrylic on Canvas, 2017.11.4.

요즘은 번지기와 흘리기 기법에 빠져 이것저것 실험을 해 보고 있다. 물 농도 조절을 잘하면 멋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손에 익지 않고 완전히 말린 후 다음 단계로 가야 하기 때문에 특별한 구상 없이 일단 여러 가지 조건에서 물감을 섞어 놓은 후 집에 간다.

   

멋지기는 한데 앞으로의 방향이 난감한 형태가 나왔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른쪽 아랫부분에서 사람의 얼굴이 연상됐다. 그리고 윗부분에 흐르고 번진 부분은 우리 뇌의 신경 같았고, 왼쪽 아래 부분은 노란색과 빨간색이 뭔가 솟구치는 형태가 인상적이었다. 

  

<분노>, Acrylic on Canvas, 2018.11.24.

직장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일로 꾸짖는다. 고개는 숙이고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얼굴은 차갑게 경직되어 있다. 하지만 목구멍 저 밑에서 올라오는 분노의 목소리는 참을 수 없다. 머리 속은 분노와 이성이 충돌하며 복잡하게 엉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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