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석 Nov 21. 2021

도롱뇽,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I. 들어가며: 도롱뇽의 꿈

  어렸을 적 내 별명은 '문어'였다.  단순히 내 성씨가 문(文)씨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어는 내게 참 친숙한 동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 내게 친숙한 문어에 관련된 재미있는 노래 하나를 접했다.  "나는 문어!"라는 흥미로운 가사로 시작하는 안예은 씨의 노래였다.  노래에서 문어는 꿈을 꾼다.  비록 자신은 빛이 없는 바다의 바닥에 있지만, 꿈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어는 잠에 든 뒤 꿈에서 높은 산에도 가고, 횡단보도도 거닐고, 밤하늘도 날아본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한 가지 특이한 생각이 들었다.  문어는 꿈속에서 소송을 할 수는 없을까?  누군가는 나의 이 엉뚱한 이야기를 듣고 헛웃음을 지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내 표정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문어는 아니지만 도롱뇽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롱뇽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다면, 그 가사에서 도롱뇽은 분명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도대체 이 도롱뇽의 민사소송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II.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금지가처분신청(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1. 배경

  원효터널은 경부고속선에 위치하여 울산과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연결하는 약 13km 길이의 터널이다.  터널은 천성산을 뚫고 지나가는데, 그 터널을 뚫는 과정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이 소송의 배경이자 무대가 된다.  경부고속선 2단계의 2008년 개통 목표에 따라 2007년 천성산에 터널 공사가 시작되어야 했는데, 승려이자 환경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율 스님이 꼬리치레도롱뇽의 서식지 파괴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며 시공사였던 현대건설의 터널 공사를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율 스님은 늪지 훼손과 생태계 파괴 등을 이유로 천성산을 관통하는 한국고속철도(KTX) 원효터널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농성, 3천 배 시위,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했다.  이러한 반대의 주요한 이유는 환경보호였다.  터널 공사 전 정부가 시행한 환경영향평가에서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이 없다고 보고되었으나 실제 환경부 지정 법적 보호종이 30여 종 서식한다는 것이 밝혀져 절차가 부실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무현 前대통령이 노선변경 검토를 지시하며 공사가 중지되었으나, 재검토위원회의 조사에 따라 공사 재개가 결정되고야 말았다.  그러자 단체 관계자, 각계 시민·사회단체들은 함께 이른바 '도롱뇽의 친구들'(원고 도롱뇽)이라는 이름으로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및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하였다.  대한민국 법원에 처음으로 도롱뇽의 민사소송이 제기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도롱뇽의 민사소송은 1심(울산지방법원 2004. 4. 8., 2003카합982, 결정)과 2심(부산고등법원 2004. 11. 29., 2004라41, 결정)을 거쳐 대법원에 이르게 되었다.


2. 판례 검토(대법원 2006. 6. 2., 2004마1148, 결정)

1) 쟁점의 정리

  대법원 판례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항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도롱뇽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당사자능력의 문제); (2) 헌법 제35조를 근거로 개인이 공사중지청구권을 갖는지 여부; (3) 개인의 환경 이익 침해에 기반한 공사중지청구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2) 도롱뇽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여부

  신청인 도롱뇽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도롱뇽목 도롱뇽과에 속하는 양서류로서 자연물이고,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가 소송상의 당사자로서 이 건 신청을 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의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원심이 도롱뇽은 천성산 일원에 서식하고 있는 도롱뇽목 도롱뇽과에 속하는 양서류로서 자연물인 도롱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로서는 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위 신청인의 당사자능력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3) 헌법 제35조를 근거로 개인이 공사중지청구권을 갖는지 여부

  헌법 제35조 제1항은 환경권을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천명하고 있는데, 기존 판례는 개인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근거로 직접 다른 개인에게 공사 중지를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 신청인들은 기존 판례와 달리 헌법상 기본권을 근거로 개인이 공사중지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판례는 이에 대해 기존 판례의 입장을 유지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 제35조 제1항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 도롱뇽의 친구들이 환경권에 관한 헌법 제35조 제1항이나 자연방위권 등 헌법상의 권리에 의하여 직접 피신청인에 대하여 고속철도 중 일부 구간의 공사 금지를 청구할 수는 없고 환경정책기본법 등 관계 법령의 규정 역시 그와 같이 구체적인 청구권원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으므로( 대법원 1995. 5. 23.자 94마2218 결정 등 참조),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의 신청 중 환경권이나 자연방위권을 피보전권리로 하는 부분 및 신청인 도롱뇽의 친구들의 신청(위 신청인은 천성산을 비롯한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보존운동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헌법상 환경권 또는 자연방위권만을 이 사건 신청의 피보전권리로서 주장하고 있다.)에 대하여는 피보전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고, 환경권 및 그에 기초한 자연방위권의 권리성, 신청인 도롱뇽의 친구들의 당사자적격이나 위 신청인이 보유하는 법률상 보호되어야 할 가치 등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

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4) 개인의 환경 이익 침해에 기반한 공사중지청구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은 천성산에 건립되어 있고 터널공사 구간 일부 토지의 소유권도 가지는 바, 환경이익의 침해가 있다고 주장했다.  판례는 피신청인(한국철도시설공단)에게 자연보호와 보존의 적극적 조치를 취할 책무를 부담하여 환경영향평가에서 새로운 사정 발견 시 환경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개연성'이 있는 경우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단층, 지하수 등으로 인한 안전성 위협을 비롯한 새로운 사정이 발견되었으나 정밀조사를 실시했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검토의견에 따라 공사가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사정에 대해 단층대 등 지질적 특성을 파악해 설계 및 공법에 반영하였으므로 터널 공사로 인해 신청인들의 환경이익이 침해될 '개연성'이 없다고 판시하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위 신청인들의 주장과 같이 여전히 활성 단층과 관련하여 공사의 안전성 및 지하수 유출 가능성, 무제치늪과 화엄늪 기타 천성산 일원의 여러 습지들 보호 등의 문제가 제기될 수는 있으나, 피신청인은 위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환경 침해에 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비록 법령상의 환경영향평가절차는 아니지만 사단법인 대한지질공학회에 의뢰하여 자연변화 정밀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조사 결과 및 환경부의 의뢰로 이루어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의 검토의견에 의하면, 이 사건 터널공사가 천성산의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된 사정 등을 모두 종합하여 보면, 현재로서는 이 사건 터널공사로 인하여 위 신청인들의 환경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개연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인정된다.

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3. 소결: 도롱뇽의 민사소송법상 당사자능력 그 너머

  사실 시험을 위한 법학인 수험 법학에 집중된 우리 법학 교과서에서 위 판례는 민사소송법 판례로 분류된다.  민사소송법에서 당사자능력은 소송의 주체(원고, 피고, 참가인)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고, 민사소송법 제51조에서 당사자능력은 민사소송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다면 민법과 그 외 법률에 따른다고 하는데 이러한 민법상 권리능력 있는 자를 의미하는 당사자능력자는 일반적으로 (1) 자연인, (2) 법인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민사소송은 자연인 또는 법인에 의해서만 적법하게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례 원문을 찾아서 읽어보면, 진정한 이 판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국고손실액이 얼마인지에 대해서 추후 소송이 이루어졌을 만큼 천문학적 비용이 파생된 이 소송의 의미가 단지 도롱뇽이 민사소송의 주체가 아니라는 법리 하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판례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III. 나오며: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금지가처분신청 판례의 의미

1. 자연에게 하는 말: "인간이 미안해"

  먼저, 도대체 왜 이러한 소송이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율 스님은 이 소송을 제기한 주축이지만, 이 소송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소송과 법적 공방에 연루된다.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고,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불구속 기소되기도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판에 참여하지 않아 유죄가 확정된다.  왜 지율 스님은 형사범죄까지 감행하면서 이 모든 일들을 했을까?  나아가 승소할 확률이 희박한 소송에 굳이 '도롱뇽'을 신청인으로 포함하여 소송을 진행한 것일까?  결론은 '환경 보호'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곳곳의 도로를 달리며 그 도로 근방의 풍경을 감상하게 된다.  그 풍경을 한창 감상하다가 나무가 없이 드문드문 민둥산이 된 산들을 발견한다.  대부분 골프장이 건설 중이거나, 개발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늘도 우리나라에서는 수없이 많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경우 공사는 자연을 해친다.


  지난 2년간 전 세계 사람들을 아프게 했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게 하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정말 다양하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없어짐에 가까운 '여행'의 감소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계 유명 여행지들의 환경이 달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60년 만에 베네치아 운하의 물은 맑아졌고, 없었던 물고기들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인간이 미안해"라는 구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욕심이 결국 수없이 많은 자연파괴로 이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동물들과 식물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도롱뇽이 낸 민사소송은 아마 이러한 모든 자연이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대신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소는 제기된 것이 아니었을까?  김영란법으로 유명한 김영란 당시 대법관을 비롯한 재판부의 판결 결론은 처음 1심에서 소송의 원고로 지정된 ‘도롱뇽의 친구들’이 소송비용을 부담하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되는데(당사자 능력이 없는 도롱뇽은 소송비용도 부담할 수 없으므로), 자연을 함께 향유하는 우리도 저 ‘친구들’에 사실 포함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여운이 들게 했다.

"그러므로 재항고를 모두 기각하고, 재항고비용은 신청인 내원사, 미타암, 도롱뇽의 친구들이 부담하도록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박재윤 김영란(주심) 김황식

대법원 2006. 6. 2., 자, 2004마1148, 결정


2. 돌아봐야 할 점: 소송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반응

  지율스님의 소송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억이 나진 않는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 중학생에 불과했고 이러한 이슈들은 아마 아버지가 보는 9시 뉴스에서 이러한 뉴스를 통해서나 지나가며 보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주류 언론들의 모습은 기록으로 남아있고, 이를 통해 언론과 대중들의 반응을 유추해볼 수 있다.  주류 언론들과 주요 정부 인물들이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비용'이었다.  해당 가처분신청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고, 얼마나 많은 세금이 낭비되었는가에 대해 기사와 언급들이 쏟아졌다.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때문에 발생한 손해라는 뉘앙스의 정치적 기사도 뒤를 이었다.  각종 시민단체들은 피켓을 들고 지율스님에 대한 처벌을 외쳤고, 학계에서도 다양한 비판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한 신문사 보도가 허위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그제서야 뒤늦게 지나친 비판들에 대한 사과문들이 이어졌다.  정정보도문이 이어졌다.  언론과 관련 사람들은 이런 실수를 했지만, 그 이후의 모습들을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언론과 관련 사람들이 크게 바뀐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오늘 어딘가에서 진행 중인 공사에 대해서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나아가 가처분신청으로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면 언론들과 대중은 이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시선을 보내게 될까?  귀중한 혈세를 축내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진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환경단체의 가끔 조금은 지나친 주장들과 선정적 시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기각으로 끝난 도롱뇽의 소송을 생각해본다.  환경과 자연에 대해서 무지한 나조차도 한번쯤 환경보호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 소송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이지 않을까?






*커버사진 출처: ⓒ연합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