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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Apr 08. 2022

호날두는 '날강두'인가?

호날두 노쇼 판결(2020가합527716)로 보는 '계약'의 중요성

I. 들어가며: '하루아침에 우리형에서 너네형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곡 축구장이 있는 곳이라면 골이 들어갔을 때 반드시 볼 수 있는 세리머니가 있었다.  포르투갈 국적의 세계적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이하 '호날두'라고 한다)의 시그니처 세리머니인 '호우' 세리머니였다.  두세 걸음을 달려가 높게 점프 후 양손을 X자로 내리며 "호우(siu)"라고 외치는 모습을 대한민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볼 수 있었다.  호날두의 별명은 '우리형'이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호날두의 유니폼을 사고, 호날두가 광고하는 나이키의 물건들을 구매했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호동생'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그러던 2019년 여름, 호날두의 방한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호날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했었고, 유벤투스의 아시아 투어에 한국이 포함되게 된 것이다.  호날두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대적으로 전면 광고되었다.  경기 날짜는 2019년 7월 26일로 정해졌고, 사람들은 티켓 구입을 간절히 기다렸다.  티켓 가격은 일반적인 축구경기 티켓 가격보다 훨씬 비싸게 책정되었는데, 사람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3시간이 채 안되어 모든 티켓을 매진시켰다.  당시 VIP 좌석 티켓은 40만원에 달했다.


  경기 당일, 호날두는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그와 라이벌 관계인 메시의 이름을 연호하고, 유니폼을 불태우는 등 분위기는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를 언론들에서는 '호날두 노쇼'라는 이름을 붙여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호날두가 출국하기 직전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연관 지어 보도했다.  호날두를 욕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진 분위기였다.  수많은 기자들이 유벤투스 구단과 호날두에 불만을 토로했고 그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우리나라에 오기 전까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호날두였는데, 우리나라에 온 뒤 하루아침에 그에 대한 미운 마음이 가득해졌다.  그렇게 우리형은 너네형이 되었다.


II. '호날두 노쇼' 집단소송

1. 개요

  모두에게 상처가 된 2019년 7월 26일 이후 티켓 구매자들 중 일부는 주최 측인 더페스타를 상대로 '입장권 환불'과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민사소송은 총 3가지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사건번호는 각 2019가합561017, 2019가소2526970, 2020가합527716이다(각 사건의 내용 및 결과는 유사하고 오직 1인당 손해배상의 금액에만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형사고발도 이어졌다.  경찰에서는 사기 및 불법광고(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 혐의와 관련하여 수사를 시작했다.  출국금지, 소환조사, 압수수색 등이 줄을 이어 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집단소송으로 진행된 민사소송에 초점을 맞출 것인데, 상기 3가지 사건 중 2020가합527716의 판결문만 열람이 가능(유료)했기에 해당 사건 판결문을 분석하여 소개해보겠다.


2. 서울중앙지방법원 2021. 6. 9. 선고 2020가합527716 

1) 사실관계

  주식회사 더페스타는 이탈리아 프로 축구팀인 유벤투스와 K리그 올스타팀 간의 친선 경기를 주최하기로 하고, 2019. 5. 22. 경 유벤투스와 다음과 같은 계약을 체결하였다.

- 유벤투스는 2019, 7. 27.(이후 2019. 7. 26.로 변경됨)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이 사건 경기(전ㆍ후반 각 45분)에 참가한다. 더페스타는 유벤투스 측에게 300만 유로를 지급한다.

- 유벤투스는 국가대표 차출 또는 부상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주전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45분 이상 출전해야 하고, 만일 이를 어길 시 유벤투스 측은 더페스타에게 위약금으로 35만 유로를 지급한다.


  더페스타는 사단법인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협조하에 2019. 6. 20.경부터 이 사건 경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특히 호날두가 이 사건 경기에 45분 이상 출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티켓 구매자들은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이 사건 경기 입장권을 구입하고(본인과 그 가족, 지인 등의 명의로 결제하기도 하였고), 2019. 7. 26. 이 사건 경기가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경기는 당초 예정된 시각보다 50여 분 지연된 20:50경부터 시작하였는데, 호날두는 선수 대기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았을 뿐 이 사건 경기 내내 관중들의 연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출전하지 않았다.


2) 쟁점

  ①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②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③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위반이 있었는지, ④ 책임이 인정된다면 손해배상의 구체적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의 여부가 문제 되었다.


3) 판례의 법리 분석

  (1) 채무불이행과 관련하여

- 원고 주장: 더페스타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출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음에도 그가 경기에 출전하지 아니하였는바, 더페스타는 자신의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이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 피고 항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그의 의사에 따라 이 사건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것을 피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채무불이행의 요건은 ① 채무의 내용의 불이행, ② 채무자의 귀책사유, ③ 채무자의 책임능력, ④ 위법성이다(민법 제390조).  각 요건이 만족하는가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광고의 내용이 계약의 내용이 되는지의 여부를 살폈다.  채무의 내용이란 계약의 내용이기 때문에, 계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광고는 일반적으로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나 내용이 명확·확정적이고 내용에 대한 광고주의 구속의사가 명백하면 청약이 된다.  청약의 유인에 불과한 광고라고 할지라도, 이후 거래 과정에서 상대방이 광고 내용을 전제로 청약·광고주가 승낙해 계약이 체결된 경우 광고 내용이 계약내용이 된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재판부는 더페스타가 ① 언론보도나 배포 자료를 통해 호날두의 출전을 강조했고, ②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답변해 언론의 보도가 있었으며, ③ 입장권이 통상 동종의 입장권에 비해 상당한 고액임에도 매진된 점, ④ 원고들이 호날두가 출전할 것을 알고 입장권을 구입했고 피고가 이를 충분히 예상하였을 점에 근거해 호날두의 출전을 계약의 내용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귀책사유와 책임능력 그리고 위법성은 자연스럽게 충족되게 되어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해당 쟁점에 있어서는 원고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 없이 이행 할 수 없게 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민법 제390조)

광고는 일반적으로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이 명확하고 확정적이며 광고주가 광고의 내용대로 계약에 구속되려는 의사가 명백한 경우에는 이를 청약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광고가 청약의 유인에 불과하더라도 이후의 거래과정에서 상대방이 광고의 내용을 전제로 청약을 하고 광고주가 이를 승낙하여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는 광고의 내용이 계약의 내용으로 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8. 2. 13. 선고 2017다275447 판결


  피고는 이에 대해 호날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경기에 출전하지 않을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항변했는데 재판부는 이에 대해 ① 이행 보조자의 고의·과실은 채무자의 고의·과실로 보고, ② 이행보조자는 채무자의 의사 관여 아래 채무의 이행행위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족하기에 실제로 더페스타의 고의·과실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항변은 이유 없다고 일축했다.

채무자의 법정대리인이 채무자를 위하여 이행하거나 채무자가 타인을 사용하여 이행하는 경우에는 법정대리인 또는 피용자의 고의나 과실은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로 본다(민법 제391조)

이행 보조자는 채무자의 의사 관여 아래 채무의 이행행위에 속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충분하고 반드시 채무자의 지시 또는 감독을 받는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가 채무자에 대하여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지,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지는 상관없다

대법원 2020. 6. 11. 선고 2020다201156 판결


(2) 불법행위책임과 관련하여

- 원고 주장: 더페스타가 고의 또는 과실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출전과 관련하여 허위·과장 광고를 하였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재산적·정신적 손해가 발생했다

- 피고 항변(추정): 불법행위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요건은 ① 가해행위, ② 위법성, ③ 고의 또는 과실, ④ 손해발생과 손해액수, ⑤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이다(민법 제750조).  재판부는 사실관계가 이러한 요건사실을 충족하는지 검토했다.  재판부는 ① 계약의 구체적 내용 중 불출전시 위약금에 관한 내용이 있는 점, ② 경기 당일 불출전 의사를 듣고 출전을 독촉하였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위 요건들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해당 쟁점에 있어서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에 있어서 고의ㆍ과실에 기한 가해행위의 존재 및 그 행위와 손해발생과의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자에게 있다

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9다92272 판결


(3)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과 관련하여

- 원고 주장: 더페스타는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의 거짓·과장 내지 기만적 표시·광고를 함으로써 해당 법률을 위반해 동법 제10조에 의거 손해 배상의 의무를 진다.

- 피고 항변(추정): 계약의 내용상 피고는 표시·광고 내용과 다른 계약이행이 이루어질 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의미하는 거짓 과장의 광고는 사실과 다른 광고 또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풀린 기만적인 광고로 사실을 은폐·축소 등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고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광고행위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호날두 출전을 광고·홍보하였으나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은 것은 인정되나 ① 해당 법률 위반은 무과실책임을 규정함으로 허위·과장 등과 관련된 판단은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② 계약 내용상 피고가 호날두의 불출전을 예상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이유로 원고의 주장이 이유 없다 하여 해당 쟁점에서 피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업자등은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ㆍ광고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거나 다른 사업자등으로 하여금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거짓ㆍ과장의 표시ㆍ광고
2. 기만적인 표시ㆍ광고
3. 부당하게 비교하는 표시ㆍ광고
4. 비방적인 표시ㆍ광고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

사업자등은 제3조제1항을 위반하여 부당한 표시ㆍ광고 행위를 함으로써 피해를 입은 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피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 제1항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는 사업자등은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들어 그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0조 제1, 2항)

표시ㆍ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거짓 과장의 광고는 사실과 다르게 광고하거나 사실을 지나치게 부풀려, 기만적인 광고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광고하여,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로 하여금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광고행위로서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광고를 말한다

대법원 2017. 4. 7. 선고 2014두1925 판결


(4) 손해배상의 범위(간략하게)

ㄱ. 재산적 손해

- 입장권 가격 50% 인정: 호날두의 출전을 기대하고 실제로 지급한 경기 입장권 구입대금과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는 경기 입장권의 적정 가격의 차액

- 수수료 불인정: 호날두가 불출전 한다고 하더라도 수수료 액수에는 변동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구체적인 손해의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에 법원은 변론 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에 의하여 인정되는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배상 액수로 정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제202조의 2)


ㄴ. 위자료

  재판부는 ① 국내에서 호날두의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적고 원고들이 그에 따른 기대감으로 전국 각지에서 경기장을 찾은 점, ② 그런데 호날두는 부상 등의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경기장에 있으면서 관중들의 연호에도 전혀 출전하지 않았고 그에 원고들이 크게 실망한 점, ③ 호날두가 부득이한 사유가 없었음에도 약속과 달리 이 사건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음이 알려지자 이 사건 경기장을 찾지 않았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비난 여론이 형성된 점, ④ 피고의 대표이사는 이 사건 경기 후 실망한 관중들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한 점을 고려하여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을 산정했고, 1인당 5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했다.

일반적으로 계약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재산적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로 인하여 계약 당사자가 받은 정신적인 고통은 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짐으로써 회복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재산적 손해의 배상만으로는 회복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고, 상대방이 이와 같은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08. 12. 11. 선고 2006다20610 판결


ㄷ. 보론

  위에 소개했던 2019가합561017, 2019가소2526970, 2020가합527716 판결은 대부분 비슷한 결론이고 바로 손해배상의 범위에 대해서만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2019가합561017에서는 입장권의 60%, 2019가소2526970에서는 입장권의 50%가 인정되었다.


4) 소결론

  재판부는 피고 더페스타가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입장권 가격 × 0.5) + 위자료 5만원을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 


III. 계약이 중요한 이유

1. 호날두 노쇼 사건의 핵심은 무엇인가?: '계약'

  판례 분석을 통해 알아본 호날두 노쇼 사건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계약'이다.  계약서에 어떠한 문구를 넣었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주요한 쟁점이 되었던 계약서상 문구는 "유벤투스는 국가대표 차출 또는 부상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주전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45분 이상 출전해야 하고, 만일 이를 어길 시 유벤투스 측은 더페스타에게 위약금으로 35만 유로를 지급한다"이다.  계약의 양당사자인 더페스타와 유벤투스는 이 계약의 내용대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고, 계약이 체결된 이상 모든 의무는 계약서 내용에 한정된다.

유벤투스는 국가대표 차출 또는 부상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주전 선수들을 출전시킨다.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경기에 45분 이상 출전해야 하고, 만일 이를 어길 시 유벤투스 측은 더페스타에게 위약금으로 35만 유로를 지급한다


2. 이 사건 계약에서 아쉬웠던 부분들

1)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계약

  계약서의 해당 조항은 크게 2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① 국가대표 차출 또는 부상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벤투스는 호날두를 45분 이상 출전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② 호날두의 불출전시 유벤투스는 35만 유로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내용은 계약의 당사자인 유벤투스로 하여금 자신의 팀 선수이자 제3자인 호날두를 45분 이상 출전시키는 의무를 지우는 것이고, 두 번째 내용은 앞의 내용이 지켜지지 않으면 위약금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들이 존재하지만, 10년간 국제경기를 다수 주관해왔던 정재훈 모로스포츠 대표의 말처럼 계약서에 안전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시각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국가대표팀 초청경기의 경우'이전 월드컵 최종 멤버 중 15인 이상이 포함된 스쿼드여야 한다. 15인에는 ○○○, △△△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와 같은 조항을 넣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이다.


2) 새로운 가능성을 막게 된 출전 시간 강제조항과 위약금의 액수

  계약을 처음 보았을 때, 눈에 띄는 부분은 "45분"이라는 숫자였다.  해당 내용을 유벤투스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전반전이 끝난 시점에서 호날두를 투입하지 않으면 어차피 35만 유로의 위약금을 내게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경기 후반 더 이상 호날두를 투입할 동기가 없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출전시간 강제조항이 오히려 출전의 기회를 줄여버리는 역효과를 불러온 것이다.  만약 호날두가 후반전 마지막 15분을 남겨두고 교체되었더라도, 이러한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페스타측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이러한 일말의 가능성 자체를 막아버렸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앞서 살펴보았던 관행적인 출전 강제조항의 삽입이 불가능했다면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 등 많은 예상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는 축구라는 경기에서 자존심 강한 선수에게 45분이라는 시간적 강제를 부과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러한 강제는 한번 출전하면 45분이 지나기 전에 교체도 할 수 없고, 후반전 시작 후 1분만 지나도 출전을 했어도 위약금을 내야하는 이상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강제조항을 대신하여 "양 당사자는 이 사건 경기의 관중들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출전을 가슴 깊이 바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와 같은 조항을 넣고 시간적 강제조항을 제하는 대신, 두 번째 위약금 부분을 경기를 통해 유벤투스가 지급받는 300만 유로의 약 11.7%에 불과한 기존 35만 유로에서 더 높은 비중으로 높였으면 어땠을까?  호날두의 주급이 53만 유로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렇게 적은 위약금은 계약 이행의 유인이 되지 못한다.  양보를 하고, 또 양보를 요구하는 이러한 협상 없이 단순히 상대방이 위약금 증액을 거부했다는 항변 역시 큰 공감을 얻기 힘들다.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계약서만 착하게 작성한 뒤, 상대방이 신의칙을 지켜주기만을 기도할 수는 없다.


3) 모호한 계약 문구가 가져오는 비극

  또한 계약 내용에서 "국가대표 차출 또는 부상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열거된 특별한 사정에 '국가대표 차출'과 '부상'밖에 존재하지 않고 그 두 가지 등 특별한 사정이라는 문장은 너무나도 모호한 계약 문구다.  부상이라면 그 부상의 정도가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시되어야 한다.  전치 1주의 부상, 하루면 낫는 부상, 전치 6개월의 부상 등 '부상'이라는 단어 하나에는 수없이 많은 내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호날두나 유벤투스의 주장은 빠져있기 때문에, 재판부는 '위자료' 부분에서 호날두가 아무런 사정없이 계약의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한다.  위 계약 내용 중 '부상 등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이러한 표현은 변론주의 원칙상 다른 재판부에 제출된 것 이외의 사실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지만, 당시 유벤투스 감독은 호날두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밝힌 바 있다.  만약 이러한 증거들이 재판부에 제출될 수 있었다면, 판례의 어조나 표현들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동일하거나, 조금 더 피고에 불리했을 거라 생각한다.


  유벤투스에서 더페스타 측에 위약금을 지불했는지의 여부는 밝혀진 바 없어 알 수 없지만, 내가 유벤투스 측 변호사였다면 바로 이 부분을 강하게 걸고넘어졌을 것이다.  호날두는 '부상'이 있었고 계약의 예외조항에 따라 출전을 감행하지 않았던 것이므로 유벤투스는 위약금을 낼 의무조차 없다고 말이다.


IV. 나오며

1. 승리 아닌 승리

  분명 앞서 언급한 3가지 판결에서 원고들은 승소했다.  배상명령도 내려졌다.  그렇다면 그날 경기장에 찾았던 관객들의 통장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 입금되었을까?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  주식회사 더페스타가 폐업·부도 상태이고 보유한 재산이 없어 강제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손해배상의 책임은 존재하나 낼 돈이 없고 나아가 강제집행을 통해 현금화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입장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피고에게 단 1원도 받지 못했다.  시민들의 의식을 고취하고, 재발방지 및 소송적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소송의 핵심인 손해배상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SBS
"그리하여, 2년 이상의 기간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페스타 명의의 집행가능한 재산이 없어 티켓구매자들의 피해보전을 하지 못한 채 부득이하게 사건을 종결하게 되었고, 이에 송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우리나라 집단소송의 큰 획을 그엇고 나름의 역사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민사소송에서 승소 후 집행이 불가능한 일은 부기지수이나, 피해가 일반 국민 다수에게 발생하였던 집단소송에서는 어떻게든 실질적으로 피해 회복이 보장되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단소송 분야에서 상당히 뒤쳐져있는 우리 사법시스템이 향후 집단소송을 활성화하여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넓히고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법률사무소 명안의 최종 공지

https://m.blog.naver.com/myanlaw/222536886218


2. 변호사의 제1덕목: '보전처분'

  미국법을 배우던 로스쿨 1학년, 불법행위법(torts) 시간에 교수님이 했던 질문이 생각난다.  "자 Moon, 너한테 고객이 와서 이런 문제가 있었고 자신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어! 그럼 변호사로써 너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지?"  그 질문을 들은 나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어떤 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본 뒤, 비슷한 사실관계의 판례들을 비교해서 평균적인 손해배상 금액을 알려줍니다"라고 말했다.  짓궂었던 교수님은 미소를 띠고 강의실 모든 학생들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Wrong!!!(틀렸어!!!)"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잠재적 피고가 돈을 낼 능력이 있는지를 봐야지(You need to check wheter the potential defendant is affordable)"  그리곤 "돈 많은 상대를 피고에 앉히는 게 중요해"라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미소를 지으며 "Deep Pocket(부자)"라고 말하며 잠재적 피고의 재산규모를 확인하고 가압류, 가처분 등을 통해 승소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미리 만드는 것이 변호사의 제1덕목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100번 승소를 해도 손해배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 승소는 알맹이가 빠진 승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실제로 이는 중요한 문제다.  정의를 되찾고, 역사를 새로 쓰고 등등 많은 수식어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민사소송의 유일한 목적은 '돈'이기 때문이다.  이를 법률적 용어로 '보전처분'이라고 한다.  소송을 시작하면서 가압류나 가처분결정을 받아 승소했을 때 배상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본 사건에서도 주식회사 더페스타에 대한 가압류나 가처분결정이 선행되지 않았고 결국 승소를 하고서도 채무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법 교수님의 답변이 단순한 유머가 아닌 이유이다.  오늘 이 글에서 본 사건의 담당 변호사들 역시 소송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보전처분이 가능한지 분석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민사소송절차는 많은 시일을 소요하게 되는데, 그 사이 채무자가 재산을 처분하면 나중에 판결을 받더라도 채무자의 재산 등이 없게 되어 무용지물이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판결을 받기 전 미리 채무자의 일반재산 등에 대하여 처분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치가 가압류와 가처분이다. 윤 변호사는 “가압류나 가처분결정은 소송을 통한 판결보다 빠르고 손쉽게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 반면 채무자 입장에서는 보전처분이 내려지면 많은 고통을 받는다. 예를 들어 급여나 예금에 대한 가압류를 할 경우 채무자로서는 생활이 어렵게 되거나 유동성 위기에 빠지게 되고,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나 가처분이 있게 되면 매매를 하거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유능한 변호사일수록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민사소송을 하기보다는, 가압류나 가처분결정을 받아 채무자를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보전처분을 받아냄으로써 민사소송을 하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보전처분은 민사분쟁해결의 수단으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중요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윤경 변호사 인터뷰 발췌
https://www.joongang.co.kr/article/6171043#home


3. Pacta Sunt Servanda(약속(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Pacta sunt servanda'는 오래 된 라틴어 법언으로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계약법(Contract) 교과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채권법 교과서에도 이 격언은 포함될 정도로 영미법·대륙법을 불문하고 이 법언은 민사법의 기본적 원칙이다.  우리 대법원은 이를 '계약준수의 원칙'이라 표현한다.  이 글에서 판례를 분석하고, 결과론적 관점에서 계약을 하나하나 분석하다보니 마치 계약을 지키지 않은 유벤투스와 그 소속 선수였던 호날두가 옳은 일을 한 것처럼 비추어질 수 있을거 같다.  그러나 앞서 말한 기본적 원칙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호날두가 한국에서 자신을 보기 위해 입장한 6만명의 팬들을 위해 계약상 이행의무였던 45분 출전을 감행했다면, 이 모든 사건은 일어날 필요가 없던 것이다.  지각으로 경기를 늦게 시작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등 행위 역시 합리화될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유벤투스는 호날두의 출전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지만, 불출전의 조건(부상 등)을 충족하였거나 불출전시 부과되는 위약금(35만 유로)을 지불하여 법적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약속(계약)이 지켜졌다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른바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였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되는 것이고

대법원 2007.3.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요즈음 우리나라의 여러 매체에서는 호날두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시금 나오고 있다.  이는 최근 2022 카타르 월드컵 32강 조추첨에서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제가 되는 것 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가치 생산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우리 국민 대부분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호날두에 대한 정확한 근거나 이유 없는 무분별한 비난들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판결을 분석하고, 계약서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난 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하다.  냉정하게 계약서상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그래도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나라 시민들과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였다고 분노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 사실관계에 어떠한 법적 장치와 법적 쟁점이 숨어있는지를 찾아보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이미 발생한 문제와 분쟁을 더욱더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소송을 진행했던 법률사무소 명안의 블로그에 2019가합561017 판결문이 올라와 있으나, 열람이 불가능한 손상된 파일이다. 캡처본만 조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무료로 파일로 된 판결문을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유료로 유일하게 2020가합527716 판결문을 구할 수 있었고, 본 글은 해당 판결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커버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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