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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Nov 11. 2020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규칙을 주셨는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규칙)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Question 2 (제2 질문)

Q: What rule hath God given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
문: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는가?

A: The Word of God, which is contained in the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is the only rule to direct us how we may glorify and enjoy him.
답: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 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I. 모범답안: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제2 질문은 제1질문(=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과 연결된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규칙을 주셨냐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가이드라인 혹은 로드맵을 제시해주셨는가?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소요리문답 제2문의 모범 답안은 간단히 말해 "오직 성경(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극히 간단하지만, 너무 설레는 답변이다.  마치 500여 년 전 마틴 루터가 당시 기득권이던 교황청을 향해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를 외치며 개신교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라는 모범 답안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짧은 문장이 가진 무게를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시어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는가?  신구약 성경(창세기-요한계시록)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그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았을 때, 결코 그것을 하나님이 지시하신 규칙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아마 나 스스로가 갈망하는 것이지 않을까?


II. 왜 성경인가?: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

"오직 성경으로"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명제다.  교파를 막론하고 기독교라는 종교가 공유하는 기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명제는 과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모범 답안에서 내포하는 것처럼, 성경이 정답인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인데, 기독교와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제2문답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부분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나였다.  할아버지는 한 교회의 담임목사셨고, 부모님은 모두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셨다.  자연스레 나는 성경과 친하게 지내며 자라났다.  교회를 20년 정도 다녔을 무렵, 대학교에 입학하여 한 선배를 통해 '외경'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다.  성경이 사람들에 의해서 선별된 것이라는 것이었다.  어? 성경이라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  성경을 매주 교회에 들고는 다니지만 정작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어떤 책인지 몰랐던 스무 살의 나는 처음으로 성경의 권위와 관련한 혼란에 빠졌다.  교회에서는 항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책이라고 말했었는데, 이것이 사람이 고른 것이라고?  충격이었다.


더욱더 큰 충격은 이곳저곳을 찾아다녀도 이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나를 그저 경계하거나, 어설픈 답을 내놓았다.  이 질문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쓰여있다는 것(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을 대답으로 내놓았다.  잘못된 논증이었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질문의 답을 성경 안에서 찾아 꺼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논증이다.  때로 솔직한 분들은 '잘 모르겠다' 혹은 '신학적인 내용이라 설명이 어렵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이 없다면, 나는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분명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스스로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왜 오직 성경이고, 왜 성경 한 권으로 충분한지 말이다.  그래서 부족하고 주관적이지만 나름대로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III. 이래서 '오직 성경'이다

1. 성경 한 권은 수없이 많은 저자에 의해서 쓰였는데, 그 내용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어진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은 총 66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지역과 시간에서 살아갔던 40여 명의 저자들은 이 책들을 기록했다.  기록에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1500년이다.  그런데, 40여 명의 다른 사람들이 1500년에 걸쳐서 작성한 이 책은 똑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고 그 내용이 연속적이며 통일적이다.


나는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자주 "성경은 데칼코마니 같이, 구약과 신약이 연결되는 부분을 찾을 수 있고 그게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하다"라고 말한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번제는 4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된다.  출애굽기에서의 유월절 어린양은, 4 복음서에서 세례 요한이 말하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또한, 유월절은 성찬식과 연결된다.  레위기의 율법과 더불어 도피성 법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원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다 쓰기에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성경의 수많은 부분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2. 성경에서 예언되었던 내용들은 성경 안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한 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흔히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떡밥'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작가나 감독이 어떠한 부분을 '복선'으로 깔아 놓으면, 그 부분이 나중에 결정적인 이야기로 파생된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구약이 바로 떡밥 덩어리다.  구약에 쓰여있는 수많은 예언들과 원리, 규칙들이 신약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연결되고 파생된다.  구약에서 쓰인 수많은 예언들에 대해, 신약은 한 구절 한 구절을 언급하며 그것이 이렇게 이루어졌음을 기록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은 참으로 놀랍다.  왜냐, 성경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라는 궁극적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66권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세상 구원의 방법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야기'와 모든 부분이 이어진다.  그래서 성경은 One Story(하나의 이야기)다.


3. 성경에 대한 고증이 충분히 이루어졌다

성경이 틀렸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은 성경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그 투쟁을 성공적이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실제로 성경의 이야기들은 역사서와 고증에서 검증되고 증명된다.  구약의 출애굽 내용은 이집트의 과거 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구약 열왕기하에 나오는 히스기야가 절망 앞에서 기도 했을 때 13만 5천 명의 앗수르 군대가 하루아침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쥐에 의한 페스트 감염으로 13만 5천 명이 하루아침에 죽었다는 것으로 그대로 언급된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역사 속에만 있는 '앗수르 제국'의 터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앗수르 제국이 허상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1842년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구약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를 실제로 발견하게 되고 수많은 성경의 내용들이 유물을 통해 증명된다.  로마의 많은 문헌들은 예수라는 청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고, 그 제자들의 행적을 낱낱이 기술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길고 긴 인류 역사를 통해 그 이야기가 실제로 전해져 내려왔고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4. 주관적 경험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듯,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어느 정도 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며 살아온 나였지만, 내 마음속이 얼마나 악한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나를 비추어 보았을 때 확실해졌다.  잘 살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내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게 나침판이 되어준 것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대로 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 성경을 따라가 보고자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내 삶은 훨씬 나아졌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나라는 사람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성경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IV.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오직 성경'이라는 명제 다음에는, 골치 아픈 해석학의 영역이 우리를 맞이한다.  성경이 그렇게 좋고, 읽으면 삶이 바뀐다는 것을 알겠는데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는 것이다.  똑같은 문자를 읽고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른데 그럼 성경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3명이 성경을 읽는다면, 3개의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 견해들을 내놓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3가지 이론을 설명하는 것을 통해 이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해당 이론들은 학자들을 거치며 바뀌기도, 발전하기도 하기에 가장 보편적인 설명들로만 소개하겠다.


첫 번째는 자유주의(Liberalism)다.  자유주의는 성경을 완벽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또 누군가에 의해서 쓰이고, 번역되면서 어떠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남고 어떠한 부분은 인간이 덧붙이거나 왜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문제 된다.  이런 관점에서 자유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큰 희망을 갖는다.  성경을 읽는 주체인 인간이 스스로 해석함으로써 그 성경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정통주의(Neo-orthodoxy)다.  신정통주의는 성경을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문서로 전제한다.  인간의 이성의 역할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와 조금 다르게, 신전통주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중시한다.  그래서 신정통주의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올바른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부분은 모두에게 통일적, 일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다르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알맞은 방법으로 그에 맞게 말씀을 해석케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칼 바르트가 발전시킨 이론으로 현대신학의 시작이라고 불린다.


세 번째는 개혁주의(Reformed Theology)다.  개혁주의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이는 앞서 본 두 가지 견해와 달리 성경에 오류가 없음(무오성)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완전하고, 그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누가 읽던지 그 독자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은 이 관점들 중에서 무엇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판단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먼저 '오직 성경'이라는 기독교의 큰 기반을 받아들인다면 그 이후는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 된다.  그 성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 것은 독자 스스로 하여금 자신이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람이다.


V. 결론

500여 년 전 마틴 루터는 당시 기득권이던 교황청을 향해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를 외쳤다.  그 외침은 모든 것을 바꾸었고, 비로소 기독교가 시작되게 되었다.  전세계를 호령하던 천주교(Roman Chatholic)는 성경에서 시작했지만, 그 성경을 멀리하고 일반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성경에서 멀어지자,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마틴루터의 "오직 성경으로"라는 이야기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다시 가까이 가자"는 이야기가 된다.  마틴 루터에게 성경과 하나님은 완전히 연결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규칙을 주셨는가?  바로 성경을 주셨다.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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