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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May 05. 2023

100세 대입프로젝트

엄마의 시간, 엄마의 꿈

1938년생 우리 엄마는 무척 바쁘다.

어딜 가든 70대 초반으로 보는 사람들뿐이라고 자랑을 연신 하신다.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한 예쁜 할머니다.

신세대이고 세련된 예쁜 할머니인 우리 어머니는 사실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시골 아주 구석진 시골에서 부잣집딸이 하얀 카라 달린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눈물흘리던 촌 계집아이였다.

세상이 그러려니 팔자가 그러려니 그렇게 자라서 형편 것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

사춘기 시절, 어머니가 답답하게 여겨지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가 뭘 모르면서..'

'엄마가 대체 왜?'

이런 유의 불만을 품었던 시기, 엄마가 학교를 얼마나 다녔는지, 얼마큼의 지식을 가졌는지 

관심 없던 때의 일들이 무심하게 스친다.

어머니의 내면에는 배우지 못한 콤플렉스 때문에

 딸들 앞에서 조차 모르는 것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하여 함구하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어머니는 며느리로서의 의무감과 친정어머니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할머니로서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쉼 없이 일하셨다.

표시도 나지 않고 누군가 크게 감사하지도 않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인 채로...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다 주지도 않는 희생의 몸짓들로 세상의 시간을 보내셨다.

십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아니 십오 년쯤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복지관에서 하는 노래교실에 다니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사실 본 것은 아니고 어머니께 이야기로 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중등 정도였으니 동생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취학 전이거나 싶다.

노래교실에서 나누어준 악보의 노래를, 제법 잘 부르시는 어머니를 보며, 동네에서는 썩기 어렵다고 부추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문득 악보를 휙 던지시며,

 이놈의 콩나물 대가리는 볼 줄도 모르는데, 선생이 자꾸 몇째 줄 뵈라, 악보 잘 봐라 그런다는 것이다.

'엄마, 이거 쉬워, 내가 가르쳐 줄게'

'뭐가 쉬워 그게 그 거구  다 똑같구먼'

나는 엄마 이리 와봐하며 하나하나, 악보를 그려가며 박자랑 쉼표랑 높이를 설명해 줬다.

그때의 엄마의 눈빛은 경이로움의 반짝임과 더불어 1시간이면 배울 수 있는 것을 평생 알지 못해

어디 가면 악보보구 노래하는 이들 앞에서 기가 죽은 것이 억울했다는 아쉬움의 가는 울부짖음 같은 거였다.

나는 그때 참 미안했다.

그런데 어리석게두 그 미안함을 달리 생각지 못했다. 내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또 칠십이 넘은 엄마에게

무엇이 필요하랴 하는 무관심이 우둔한 어리석음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학교에 다니신단다. 86세의 동안의 미모를 가진 세련된 할머니가...

사실 그냥 흘려들었다. 할머니 몇 명 모아놓고 봉사자들이 한글이나 가르치는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엄마는 그곳에서 잘하는 축에 끼인다고 하신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카톡을 보내고, 사진을 전송하고 이런 것들을 할 줄 아는 86세의 할머니가 얼마나 있을까? 나는 내심 어머니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드리며, 엄마가 진짜 신세대이며, 대단한 할머니라고, 그런 분이 우리 엄마라고 자랑까지 하고 다닌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학교를 다닌다니... 응원을 해드렸다. 엄마 잘하시라고, 좋으시겠다고...

엄마가 학교에 다니신다고 말씀하시고 두어 달이 지난 다음부터 간혹 카톡으로 사진이 날아온다.

오늘 숙제한 건데 다 맞았냐고...

자존심이 하늘 위인 엄마는 선생님께 보여줄 숙제가 오답일 거라는 건 생각조차 싫으신 것 같았다.

늘 다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친절히 틀린 것은 왜 틀렸는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드렸다. 

이제야 시작한 게 너무 어리석었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든다.

며칠 전 통화에서는 드라마를 안 보신다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드라마 보는 시간이 아까우시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마음이 아팠지만, 다행이다 엄마가 너무 재밌는 일이 있으시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공부 열심히 해, 대학 가게.. 엄마 대학 가면 내가 다 대줄게'

'에구 말도 안되지 지금부터 해서 대학 가는 게 말이 되냐 소가 웃겠다.'

'그 말이 안 되는 걸 엄마가 해봐, 15년 잡고 하면 되지 않겠어? 그럼 엄마 티브이에 신문에 나올걸'

...

잠시 엄마가 침묵하신다...

'내가 15년 전에 시작했으면 지금쯤 가능했을까?'

'여기서 공부하던 이 가 74세인데 대학 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던데...'


'엄마, 가능해... 엄마처럼 몸도 마음도 건강한 86세면 100세에 대학입학 가능해'

'우리 해보자..'


엄마가 웃는다... 욕심이라고... 또 웃는다... 정말 가능할까를 물으며...

내가 웃는다... 엄마가 나의 자랑이라고... 그리고 나는 눈물이 난다... 엄마의 딸이라서 너무 행복한데..

엄마를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늦어서 죄스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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