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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 Jun 19. 2024

[서울의지형도] 이곳으로 공간을 불러오기

한국예술종합학교신문 382호 기고

Korea Mational University of Arts News

서울의 지형도 Topography of Seoul 정기연재


7 이곳으로 공간을 불러오기 

초과되는 세계, 찰나에 대한 감각 : <철인 3종 경기>(2023) 조희수


귀에 마찰하는 공기의 흐름으로 바람을 알듯, 몸에서 작동하는 감각이 우리의 주변을, 주변의 공간을 지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 마찰, 접촉만으로는 지각하는 대로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내 감각은 나의 몸에 새겨지는 것으로 남기 때문에, 그것은 끝끝내 공유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었다면 들리게 하는 것, 보았다면 보이게 하는 것, 그리고 느꼈다면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순간의 마찰을 뒤따라온다. 하나의 상태가 육화되도록, 현현하도록. 그래서 나의 몸에 한정된 감각을 초과시켜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도록. 


기술의 발전을 따라 생겨난 매체는 지각하는 대로의 세계를 포착할 수 있다는, 적어도 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냈다. 각각의 매체로부터 자신이 감각한 세계, 내 몸의 세계가 접촉한 순간의 공통 분모를 찾은 사람들은 그 언어를 빌려 재구성된 세계를 창출한다. 내 몸이 겪어 지나온 한순간을 설명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들리게끔, 보이게끔, 느껴지게끔 한다. 조희수의 작업은 우리에게 그 순간순간이 있다는 것을 외마디 외친다. 27분가량의 영상물 <철인 3종 경기>를 두고 ‘외마디’라 일컫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순간 이상으로 확장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인 3종 경기>는 살아내라는 명령과 플레이 백되는 욕조 안 빨간 물의 움직임으로 끝난다. 마지막 쇼트로 진입하기 이전에 하나의 단어가 반복되는데, 카메라를 빤히 바라보는 얼굴이 말한다. 카메라온. 카메라온. 카메라온. 카메라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얼굴은 카메라를 뚜렷이 응시하며 그 말이 재생되는 시간을 허구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눈을 가지고 있고, <철인 3종 경기>는 끝을 맺는다. 앞서 계속해서 가중되어온 속도와, 그 속도가 가진 관성이, 중첩되고 쌓여가는 이미지의 세계를 완성하는 동시에 이 세계는 종료된다. 작업을 마무리하는 시퀀스 이전에 등장하는 것은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사람들과 집안에 놓인 두 사람, 시간의 축을 오가며 반복되는 호텔 안 한 사람-세 사람의 하루인데, 작업은 이들 각각으로부터 더 이상의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반복하고 맴돌게끔 둔다. 시작과 종료, 순간-행위의 반복. 이렇게 <철인 3종 경기>는 계속 달리면서도 순간이 되기를 택한다. 생중계라는 형식은 <철인 3종 경기>가 가진 다층의 시간을 순간으로써 집약하기 위한 송출의 양상이고, 긴 시간의 지평 안에서 한순간을 감각하는 조희수의 방식이다. 그가 말했듯, “살아내”라는 외마디와 같이 순간인 것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만든다. 


순간을 붙잡았다면, 이제 <철인 3종 경기>는 두 가지 층위에서 공간에 접근한다. 하나는 실재의 몸이 겪어내는 공간, “당시의 영광을 뒤로하고 황폐화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에 들어서는 것이다. 조희수는 올림픽 이후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평창동계올림픽 경기장(이하 올림픽 경기장)을 찾아가 실제 인물의 몸을 뉜다. 이들은 달린다. 경기를 행한다. 행위와 공간이 일치한다. <철인 3종 경기> 속 올림픽 경기장은 허구의 세계를 직조하기 위한 로케이션에 그치지 않고, 카메라가 반영할 감각이 실재하는-실재했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철인 3종 경기>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올림픽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 카메라는 공간을 샅샅이 훑지 않으며, 이곳이 불과 4년 전 동계올림픽이 이루어진 경기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부연하지 않는다. 올림픽 경기장에 대한 카메라의 관심은 자신이 붙잡은 순간을 현현하게 하는 것에 있다. 달리 말해 카메라가 어느 공간을 향했다면, 이는 그곳이 조희수가 구성해내는 순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몸, 칼바람을 느끼는 몸, 실재하는 몸. 이들은 ‘스크린 속의 몸’이지만 ‘직접 겪어내는 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는 실재하는 공간을 불러오는 것으로 다시금 강조한다. 잊혀지고 있는 경기장을 찾아가 바라보는 시선은 공간을 이곳으로 불러오고, 몸의 감각과 떨어지지 않는, ‘이곳’으로 만든다. 지각의 육화. 올림픽 경기장은 <철인 3종 경기>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공간인 동시에 <철인 3종 경기>의 ‘이곳’으로 존재한다. 그곳에서 질주하는 배우들의 현실을 시각적 세계의 현실과 매개한다. 


한편, <철인 3종 경기>가 공간에 접근하는 다른 층위는 매체언어와 연관된다. 몸이 겪어내는 감각을 매체의 언어로 재구성함으로써 ‘이곳’, 즉 공간을 지각하게 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순간을 응시하고 포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순간에 개입한다. 다양한 운동성을 지니고 선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카메라는 때로 관찰자의 시선을 취하다가도 자전거 바퀴의 기계적 운동으로 넘어서고, 공중의 드론으로 화각을 극대화해 달리는 인물과 공간을 조망하며, 때로는 물의 울렁임 자체를 취하기도 한다. 조희수의 작업은 이러한 이미지의 구성원리뿐만 아니라 쇼트의 진행, 즉 러닝타임을 따라 진행되는 이미지의 연속운동에서도 카메라의 움직임과 속도를 적극적으로 들인다. 작업의 다른 축은 경기장을 질주하는 역동적 시퀀스로부터 떨어져나와 내러티브로 진행된다. 다른 세 가지 시간대에 존재하는 한 명의 캐릭터는 호텔 방에서 서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 호텔 방은 올림픽 경기장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물과 작업 안에 개입하고 있다. 이곳에서 실재 공간의 지표성이 감각의 매개에 조력하는 측면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시점 쇼트와 관찰자 시점 쇼트의 혼합, CCTV 시점의 카메라를 등장시키는 것, 스크린에 부연 노이즈를 부과하며 줌인하는 카메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물이 자리하는 공간을 보여준다. 호텔은 잠시 거주하는 곳으로의 장소로 존재한다. 멈출 수 없는 선수들, 멈추지 않을 선수들과 달리 호텔 방 안에서 인물들은 머물고, 같은 순간을 기다린다. 몇십 년의 간격을 두고 반복 등장하는 각 년도 대의 캐릭터는 이곳에 도착하기를 그들의 작은 순간순간 안에서 끊임없이 기다렸을 것이고, 이미 그곳에 갔을 것이며, 아직 이를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세 시간 속의 여성들은 분명 디제시스적 시간의 흐름에 탑승해 있지만, 앞서 <철인 3종 경기>의 목소리가 ‘순간’에 한정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이들은 순간으로서 존재한다. 


제한된 만큼의 시간 동안, 제한된 만큼의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기다린다. 이들이 향하게 될 곳은 분명하게 적시되어있다. 그들의 행선은 어쩌면 올림픽 경기장 속 인물이 향하는 나선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다. 몸을 초과하는 감각으로 세 여성의 순간을 증폭하며 작업의 다른 축 내 질주하는 인물들과 연계를 만들어내는 것. 그럼으로써 육화의 가능성을 지니게 하는 것. 지각의 육화. 조희수는 이를 비선형적 생중계라 명명한다. 움직이고, 불러오고, 달려 나간다. 


1고 2024.06.14

1.5고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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