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입원, 뱃속의 치즈에게 편지 쓰기
임신 10개월 차에도 남편과 시댁 관련 이야기로 잦은 싸움을 이어갔다. 하혈해서 나 혼자 새벽에 병원을 찾은 적도 있었고(남편은 싸우고 본가에 가는 바람에), 새벽에 싸우다가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깜짝 놀라 부랴부랴 싸움을 중단하고 병원 응급 상황실에 찾아가 태동 검사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해프닝에 그쳤다. 아기를 무사히, 건강하게 잘 낳을 수 있을까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지냈는데... 드디어! 잡아 놓았던 수술 날을 하루 앞두게 되었다. 2023년 봄,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했다가 하나둘씩 꽃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그런 날이었다.
'아기 낳기 전날의 마지막 만찬은 어떤 메뉴로 정할까?'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그동안 잘 버텨준 '치즈'에게도 너무 고마웠다.
나는 월요일 아침 8시쯤 수술을 잡아 하루 전 날인 일요일에 미리 입원 수속을 하였다. 여행 트렁크를 차에 에 싣고 병원으로 나서는 기분이 묘했다. 지금은 둘이 나서지만 곧 셋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될 거란 생각에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집을 나서 병원에 가기 전, 우리의 만찬 메뉴는 '두부'로 정했다. 남편과 연애 시절에 자주 가던 두부 식당이 있었는데 둘 다 너무 좋아해서 첫 아이의 태명을 '두부'로 하기도 했으니... 게다가 첫아기 '두부'를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 심장 소리를 듣지 못했던 슬픔을 가슴 한편에 묻으며 잊지 않겠다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요일 점심을 잘 챙겨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강남대로는 한가로웠고, 나의 마음은 평화로웠다.
수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막막함도 없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고 기대하던 순간을 곧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주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수술 후 필요한 것들은 간단히 준비한 뒤 간호사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여러 검사를 진행한 후 일찍 잠자리를 준비했다. 아침 8시 수술이지만 새벽 4~5시부터 일어나 준비할 것들(소변줄 꼽기 같은)이 있다고 했다. 초저녁 시간대에 일찍 누워 잠을 청했지만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고 밤새 뒤척이며 시간 보내느니 아가에게 편지라도 써서 남겨 놓으면 좋을 거 같아서 뱃속의 아가에게 편지를 썼다.
치즈 안녕 :) 엄마야.
이제 우리 치즈를 11시간만 있으면 만날 수 있겠다! 엄마랑 아빠랑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 아가를 간절히 원했고... 이렇게 천사 같은 치즈가 찾아와 줘서 너무 기뻤어. 열 달 내내 치즈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마음 졸이고 지냈는데 드디어 내일이면 만날 수 있다니 너무 설렌다. 사실 엄마는 수술을 해야 해서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그래도 우선! 우리 치즈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주기를 바라고 있어. 하리보 젤리 같았던 치즈가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들려주고 뱃속에서 하품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2차 초음파 때는 아빠 코랑 똑같은 모습 보여주기도 하고... 뱃속에서 수시로 꼼지락 거리면서 엄마한테 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주던 우리 치즈... 30주 차부터 엄마 자궁수축 때문에 빨리 나와 고생하면 어쩌나 걱정 많이 했는데... 우리 치즈가 잘 버텨준 덕분에 오늘까지 왔고, 그 사이에 진통이 오면 엄마가 응급수술을 해야 했을 텐데 우리 아가가 잘 있어준 덕분에 계획적인 수술로 진행할 수 있게 됐어. 아가.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렴! 아직 부족한 게 많고 가진 게 많지 않은 엄마, 아빠지만 너를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거야. 아가. 너를 최고로 키울 수는 없겠지만 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할 거야. 우리 함께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서 행복하게 살자. 우리 천사 같은 아들. 곧 만나! 사랑해.
- 230416 나를 엄마로 만들어 준 너에게, 엄마가.
이제 곧!!! 치즈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