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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Feb 20. 2024

걸음마부터 다시 연습 시작

아이를 낳고, 엄마로 다시 태어나다

'마미톡'이라는 어플에는 임신 과정 증상에 대한 정보, 필요한 검사, 아기 성장에 대한 정보, 커뮤니티, 쇼핑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간이 될 때마다 틈틈이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맘카페 대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맘카페는 너무 방대하고 정보도 넘치고 넘쳐 이 어플이 조금 더 정돈된 느낌. 인지가 더 잘되는 느낌이라 어플을 주로 활용했으며 지금도 잘 활용하는 중이다.) 뱃속의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긴장도 되고 두려움도 커져갔다. 아기는 밤낮 가리지 않고 발로 차 갈비뼈 언저리까지 아픈 날들이 늘어가면서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날이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어플에 들어가 출산 경험담들을 읽어보았다. 


자연분만은 출산과 함께 통증이 있지만 낳고 나면 회복 자체가 빨라서 당일에도 걸을 수 있으며 입원 3일 정도면 퇴원이 가능한 반면, 제왕절개의 경우 출산 후 통증이 심한 편이고 수술 자국이 아물어야 하기 때문에 회복도 더딘 편이라고... 각각 다른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하였다.


과연 정말 그러했다.


수술 1일 차. (수술 당일)

무통 주사와 페인부스터까지 맞고 있었지만 수술 자국 부분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에 진통제를 하나 더 추가했다.(진통제 하나까진 추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했다.) 페인부스터를 뚫는 통증이라니. 나의 경우 자궁과 난소를 동시에 수술해서 통증이 배가 되어 그랬던 것도 같다. 혹은 내가 엄살쟁이 거나. 그래도 걷기 연습을 해서 아기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일어나기 연습부터 했다. 수술 후 아파도 걷기 연습을 많이 해야 회복도 빠르다는 조언을 정말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쉽게 되지 않아 침대 각도를 조절했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두 다리를 바닥으로 향해 내딛으며 몸을 일으키는 순간 몸 안의 장기들이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뭐 아프다거나 힘든 건 아니었지만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다. (흔히들 장기 쏠리는 느낌이라며 이 느낌에 대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긴 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내려오는, 굉장히 간단한 과정이고 동작이지만 평소 내 몸 같이 않은 상태라 움직임 하나하나 쉽지 않았고 약간의 통증들이 동반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바닥을 디디고 여러 개의 링거 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쇠기둥을 한 손으로 붙잡아 밀며 한 발자국을 떼었다. 그리고 또 한 발자국...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온몸이 아파서 정말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던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하기'가 바로 이것이구나. 싶었다. 아기가 처음 무언가를 붙잡고 일어섰다가, 몸을 기대어 움직이다가, 손을 놓고 스스로의 힘으로 한 발자국을 떼는 과정처럼. 아기를 낳은 엄마들도 '엄마'로 다시 태어나면서 다시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는구나. 싶었다.


수술 2일 차. (수술 다음 날)

남편이 다니던 회사(현재는 이직해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아내의 출산 시기에 출산 휴가를 3일만 허락해 주는 굉장히 야박한 곳이었다.


#_ 법적인 남편의 출산 휴가: 아내의 분만으로 인해 배우자가 쓸 수 있는 유급 휴일. (공식적인 휴가 일수에 미포함시키는 특별 휴가) -2023년 기준

* 10일 (유급) 사용 가능

* 출산한 한날로부터 90일 이내에 배우자 출산 휴가 급여를 신청할 수 있음.

* 1회 분할 사용 가능


2024년부터는 다둥이의 경우 10일~15일까지 확대될 될 예정이며 3회 분할까지 사용 가능하도록 바뀐다고 하니까 자세히 알아보고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법적으로 10일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출산 휴가를 눈치 보며 3일밖에 쓸 수 없다니... 저출산 현상에 대한 심각성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이런 눈치를 주는 회사... 정말 고발해버리고 싶었다. 여하튼 상황이 그러해서 수술 2일 차까지만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3일 차부터는 뭐든 혼자 해야 했기에 수술 2일 차부터 나는 혼자 하는 연습을 필사적으로 했다. (남편이 수술 전날 같이 입원해서 잤기 때문에 수술전날, 수술날, 수술 2일 차까지만 동반 입실, 3일 차부터는 혼자 지내야 했다.) 아파하면서 끙끙대며 일어나고 눕는 나를 부추겨 주려고 나서는 남편의 손길을 외면하고 혼자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갔다. 소변 줄을 빼고 정말 틈 나는 대로 복도로 나가 복도 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천천히 걷기. 비록 링거 줄 걸이대를 밀며 엉거주춤 걷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아기를 낳고 나 역시 무사히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현실이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제왕절개 2일 차 되는 날에는 남편도 나도 아기를 만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날 아기는 B형 감염 1차 주사를 맞았던 거 같다.(아기수첩의 기록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아기 수첩은 출산 후 예방 접종 주사들을 맞힐 때 챙겨가지고 다니는 수첩이다.)

수술하면서 잠깐 치즈 얼굴을 본 게 전부였던 나는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 남편이 신생아실에서 찍어 온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또보며 그렇게 입원실에서의 둘째 날과 셋째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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