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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 Dec 25. 2023

재해석의 시대, 재해석을 다시 해석하다

2023년을 관통하는 마케터의 한 단어는?

잘하는 브랜드들을 관찰하고, 길거리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로 쏠리는지 관찰한다. 4년차 마케터로서 나의 일이다. 올 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단어를 하나로 정리한다면 무엇일까?


2023년의 유행을 관통하는 단어로 '재해석'을 꼽고 싶다. 재해석. 이것은 실로 마법의 단어다. 인어공주가 흑인이 되어도 인어공주의 재해석이고, 붕어빵에 수제 라구 소스를 넣어도 붕어빵의 재해석이다. 어제는 성수동 골목 한복판에서 가마솥을 봤다. 십중팔구 그것은 재해석일 것이다. 


오늘은 온,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2023년을 휩쓴 단 하나의 키워드. 재해석에 대해 다시 해석해보고자 한다. 



도대체 재해석이란 무엇인가?


먼저 사전에서 재해석을 검색해봤다. 다시 재, 풀 해, 풀 석. 다시 푼다는 뜻이다. 옛것을 다시 풀어 설명하겠다는 거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새로운 관점'이란 단어다. 새로운 관점이 없는 재해석은 표절이겠지. 요즘 것들의 관점으로 옛것을 바라보아 새롭게 선보이는 것. 그것을 우리는 재해석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재해석은 2023년에 처음으로 나타난 단어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 우리 곁에는 그동안 수많은 재해석이 있었다. 뉴트로, 모티브, 오마쥬, 콜라보, 리메이크, ~에 영감을 받아...


와 같은 말들이 재해석의 또 다른 얼굴들이다. 늘 그자리에 재해석은 있었다. 



안경도, 약과도, K팝도 재해석을 외친다


그러나 올해는 유독... 재해석이 여기저기서 범람하듯 유난히 많이 보였다. 


일례로 내가 일하는 안경업계에는 '아넬형 안경테'라는 하나의 장르(?)가 있다. 조금 디테일하게 설명하자면 '아넬'이라 불리는 안경 디자인을 지구상 최초로 만든 회사는 1970년대 이미 파산했다. 현재는 수많은 브랜드들이 사라진 아넬 형태를 최대한 '복각'해서 안경을 만든다. 


그래서 아넬형 안경테는 존재 자체가 재해석이다. 아넬을 아넬로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을 지키되, 브랜드마다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의 차이를 둔다. 그렇다보니 부작용이 생긴다. 너도 나도 오리지널 아넬을 재해석했단 문구로 자신들 안경을 소개한다. 10만원 짜리든, 50만원 짜리든. 아넬형 안경을 만드는 브랜드들 각각의 차별성을 찾기 어려워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포털에 '재해석'을 검색하면 다양한 업계의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안경 뿐인가. 마라 떡볶이에 로제소스를 더해도 떡볶이의 재해석이다. 약과를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약과의 재해석. 블랙핑크가 노래를 부를 때 한복을 입으면 한복의 재해석. NCT가 1990년대 HOT의 노래에 기계음을 섞어서 부르면 K팝의 재해석이 된다. 


어쩌다 한국 시장은 너도 나도 재해석을 외치게 되었을까? 사실 창작은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엔, 요즘은 연구에 투자할 비용도 시간도 투자자도 없다. 괜히 덤볐다가 대중의 싸늘한 무관심만 얻을 수도 있다. 투자 대비 위험 요소가 크다. 


그러니 과거에 이미 인기 있었던 것, 검증된 것을 가져온다. 여기에 조금만 색다른 요소를 더해서 선보인다. 과거를 과거대로 순순히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을 슬쩍 붙여 빠르게 내놓는 것이 요즘 시대의 재해석 논리다. 




재해석의 끝은 어디일까?


브랜드와 고객 사이를 잇는 마케터로서, 습관처럼 어딜가든 브랜드들이 외치는 단어를 모으고 수집한다. 올해는 유독 '재해석'이란 말이 산업을 불문하고 등장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오히려 피로감을 느낀다. 


사실 나는 단어로서 수명이 다했다고 생각해 글을 쓸 때 웬만하면 피하자 싶은 '만능단어' 목록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다. 올해는 그 중에 하나를 추가했다. 라이프스타일, 스토리텔링, 엣지있는, 영감,,, 그리고 재해석이다. 지긋지긋한 재해석. 



너도나도 재해석을 외쳐대는 이 시대의 종말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오리지널이다. AKMU 이찬혁 같은 아티스트가 그 훌륭한 예시다. 찬혁은 재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에 없던 길을 스스로 만든다. 재해석의 시대 끝에는 비로소 오리지널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올거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누군가는 찾을테니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풍요의 시대라도, 오리지널은 어디서든 탄생할 수 있다. 특히 다음 세대의 오리지널은 AI와 인간이 합작으로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오리지널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면.. 레트로, 뉴트로, 그리고 재해석의 계보를 잇는 또 다른 단어가 나올수도 있겠지만... (제발 그것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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