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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죠 Jan 13. 2024

1만 5천명이 다녀간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방법

발과 머리로 뛰는 마케터의 생각기록

하루 자고 일어나면 팝업스토어가 바뀌고 새로 태어나는 시대다. 브랜드는 제각각 다르지만, 팝업스토어를 만드는 과정은 어디나 비슷하다. 기획, 설치, 그리고 운영. 그 중에서도 오늘은 기획을 어떻게 했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지난해 강남의 모 장소에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일이 주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A-Z를 기획했고, 단 4명의 최소 인원으로 진행했으며, 무려 9일만에.. 준비해서 팝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단 9일 만에 어떻게 1만 5천 명이 다녀간 팝업스토어를 기획할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을 기록해본다.



메인 고객경험을 정의하다,
마케터의 생각흐름 엿보기


1. 고객이 꼭 경험하고 가야할 것은 무엇인가?


기획의 시작은 한 문장이다.

'이 팝업에 온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꼭 경험하고 가야할까?'

즉, 핵심 경험을 정의하는 일이다.


다른 회사들이 그렇듯, 우리 브랜드에도 수많은 KPI가 있다. 앱 다운, 제품 판매, 서비스 경험, 인스타그램 팔로우.. 등등. 그 중 '이번 팝업에서 전달할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정의하는 것이 가장 첫번째로 해야할 일이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중에서 임팩트 있는 고객 경험을 위해서는 딱 하나에만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수시로 대화하면서 생각의 싱크를 맞춰나갔다.


그 결과, 이번 팝업에서는 서비스 경험. 즉 사람들이 라운즈 미러를 최대한 많이 써보는 걸 목표로 삼자고 결정됐다.


핵심 경험을 정의했다면? 다음 스텝은 이거다.


2. 어떻게 하면 우리 서비스(기기)를 써보고 싶게 할까?


라운즈의 메인 서비스에는 크게 2가지 기능이 있다.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안경을 추천해주는 AI 얼굴형 분석. 그리고 안경을 쓰고 다가가면 가격과 정보를 띄워주는 OCR 기능이다. 그 중 팝업의 메인 미끼로 선택한 것은 AI 얼굴형 분석이다.  


'요즘 핫한 AI가 내 얼굴형이 어떤지 분석해준다면?' 안경을 쓰는 사람이나,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도 궁금해 할 것 같았다. 즉 AI 얼굴형 분석은 요즘 소비자에게 잘 어필할 수 있는 대중적이고 넓은 키워드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메인 고객경험의 초안이 탄생했다.

‘여기 와서 AI 얼굴형 분석 무료로 해보고 가세요’

(기획 초반 단계의 POP 예시안)


그러나.. 아직 매력 포인트가 부족해보였다. 만약 내가 위 설명문을 본다면? ’바빠 죽겠는데 내가 그걸 왜 해?‘라고 생각이 들것 같았다.


문득! 지난 주말에 받은 퍼스널컬러 진단이 떠올랐다. 내 결과인 '가을딥톤'에 맞는 색깔카드를 받았는데, 이 카드 한 장만 갖고다니면서 비슷한 컬러의 옷과 화장품을 사니 편리했다. 또 물성으로 만질수 있는 카드 형태라서 굿즈처럼 소장가치가 있었다.

우연히 떠오른 퍼스널컬러 카드가 아이디어의 단초가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팝업에서도 디지털적인 경험(AI 얼굴형 분석)을 아날로그적인 굿즈로 전달하면 좋겠다 싶었다.


AI 얼굴형 분석결과를 퍼스널컬러 카드처럼 물성이 있는 출력물로 전달하자. 요즘 트렌드인 MBTI나 각종 심리테스트처럼 '나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도 맞을 거라 생각했다.


3. 가지고 싶은 굿즈를 어떻게 만들까?


목적과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이제 현실화할 순서다.

HOW TO. 어떻게 만들 것인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보았다.

'8종 얼굴형 모양으로 자른 엽서를 나눠줄까?'

'인바디처럼 진짜 종이에 출력해줄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상사와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가서 기다리는 동안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아까 오전에 제가 ~~이런 플로우로 아이디어를 생각해봤는데요, 어떨까요?' 라고 물어봤다. 상사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단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나는 미련없이 기존 아이디어를 버렸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해봤다.

우리의 팝업 장소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바로 교보문고였다.


교보문고는 어디인가. 책을 사고 구경하는 장소다. 이 장소에 와서 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후킹이 될만한 굿즈를 떠올렸다. (다행히 내가 책을 자주 사는 편이라 쉬웠다) '나라면 뭘 갖고 싶을까?' 생각해보니 <북마크>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북마크 처럼 생긴 종이에 + 얼굴형 분석 결과를 담아보자! 그렇다면 실용적으로 책을 읽을 때 북마크로 쓸 수 있으면서도, 내용으로도 나의 퍼스널 측정결과가 적혀있으니 쉽게 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곧바로 기획안을 작성했다.


(왼쪽) 기획안에 작성한 북마크 예시안 (오른쪽) 실제 결과물

여기까지의 과정에 하루하고 반나절이 소요됐다. 1.5일만에 기획안을 완성한 셈이다. (ㄷㄷㄷ)


솔직히 기획을 하다 보면 나의 아이디어가 천재적이라고(...) 스스로 뿌듯해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중요한 건 빠른 피드백과 조정이다. 게다가 이번 팝업은 워낙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초기 아이디어를 고집하지 않고,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툭툭 물어보며 의견을 받고 빠르게 수정했다.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때가 더 빠르고 맞는 방향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완성된 메인 테이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이 즐겁게 즐겨주셨다. (아이에게 설명해주는 스텝이 나다.)




고객 참여형 이벤트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팝업스토어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 바로 이벤트다.


랜덤 뽑기로 선물을 준다. 여기까진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아이디어다. 그러나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의 유무가 갈린다. 심지어 오프라인에서는 응모권의 생김새부터 종이 재질, 응모권을 보관할 곳과 버리는 곳, 응모권을 작성하는 고객들의 동선과 소품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고민을 필요로 하더라)


다행히 나는 그동안 여러 팝업스토어를 두루 다녀본 경험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지난 컬리푸드 페스타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프릳츠라는 카페 부스에서 보았던 '프릳또' 즉석 복권 이벤트였다.


이 이벤트가 좋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복권을 긁기 위해 사람들이 내내 서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길을 걷다가 '오? 저긴 사람들이 왜 서있지?' 궁금해서 한 번 더 고개를 돌려보았었다. 사람들이 서있단 것 만으로 일종의 홍보효과가 된다는걸 깨달았다.


그래서 100% 당첨되는 꽝 없는 럭키드로우 응모권을 기획했다. 이 아이디어를 들은 상사는 처음엔 부정적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걸 긁는 동안 계속 서 있으면서 홍보효과가 될 겁니다” 한 마디에 “OK 설득됐어” 하셨다.



다만 요거 만들기 위해서 스크래치 스티커도 따로 주문하고.. 종이도 만들고, 그 위에 스크래치 스티커를 또 300장을 한 장 한 장 붙이는 수고로운 과정이 있었다. 후회했다.



그렇게 완성된 럭키드로우 응모권 테이블!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요 이벤트는 결과적으로도 조금 아쉬웠다. 생각한 것보다 사람들이 참여를 잘 하지 않았고, 인스타를 안하는 사람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더라. 다음부터는 꼭 인스타그램을 위한 이벤트보단 다양한 SNS 채널을 활용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픈 D-day.
마케터의 기획은 끝나지 않는다

새벽 5시, 아무도 없는 신논현역 그리고 날것의 현장

드디어 팝업 D-day. 오픈날이 되었다.


오픈날에는 새벽 5시에 일찍 출근했다. 현장에 집기를 셋팅하고 패키징된 제품을 진열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매장 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첫날에는 거의 하루 내내 스텝으로 있었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마케터에겐 해야할 일이 있다. 바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며 그때그때 수정/보완하는 것이다.


1)  '사람들이 생각보다 안내판을 잘 안보네?'

>> POP 스탠드의 각도를 비틀고, 자리를 옮겨본다. 사람들의 동선에 따라 시선이 닿는 방향에 스탠드를 둔다.


2) '사람들이 가상피팅이 뭔지 모르고 걍 지나가네?'

>> 기기 설정 모드를 바꾸어 상시 ÅR 모드로 설정해 화면이 늘 켜져있도록 바꾼다. 자기 얼굴이 띄워져 있으니 한번이라도 고개를 돌려 보게된다.


3) '사람들이 세일하는지 모르네? 스텝이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네?'

>> 세일 문구 배너를 출력해서 붙여둔다.


계속해서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 패턴을 관찰하면서 유기적으로 수정/보완하며 아쉬운 부분을 채워나갔다.


오픈 후에도 기획은 끝나지 않는다.

오픈 이후..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의 기쁨과 슬픔

녹초가 된 기분으로 팝업 준비와 오픈까지 다 마무리하면? (진짜 진짜) 마지막으로 홍보가 남는다. '우리 이런거 해요~ 놀러오세요~' 스틸 사진, 릴스, 스토리, 피드 등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해서 세상에 널리 알리고, 기록하고, 홍보하는 것까지 또한 마케터의 일이다.


그리고 사실 위에 적은 일련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정~말 중요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발로 뛰는 일들이다.


알파 문구점에 가서 POP 아크릴 스탠드를 사오고, 높이가 맞는 책상을 서칭해서 퀵으로 수령해서 낑낑 끌고오고, 동대문 원단시장에 가서 원단을 마 단위로 끊어 재단하고, 인쇄소 사장님이랑 파본으로 싸우고, 줄자로 현장 규격 재고, 다이소 뛰어가서 멀티탭 사오고..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도 또한 팝업 준비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한정적인 예산으로 현실로 구현해내는 일에는 많은 발품이 드는 법이니까.


무릎이 닳도록 뛰어다니고 방법을 찾고 개선해나간다.


팝업 오픈을 하고 이틀쯤 지났던가? 버스에 기대어 쪽잠을 자다가 정류장을 몇 개 지나쳐서 내렸다. 그만큼 몸은 고되고 힘들고 지쳐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짙은 감정이 하나 남는데, 바로 뿌듯함이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하는 과정은 PPT와 종이 위에  끄적였던 내 생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었다. 댓글과 DM으로만 소통하던 고객을 실제로 눈 앞에서 만나는 일이다. 특히나 기획하고 의도했던 반응대로 고객의 입에서 정확히 '우와! 신기해요!!!'가 튀어나오면? 그만큼 뿌듯할 수가 없었다.


마케터가 일하는 동안 가장 뿌듯해지는 지점은 바로 이렇게 가설이 적중하는 순간일 것이다.


손님에게 기능을 설명해주는 중이다.


특히나 이번 팝업은 짧은 준비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만 5000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셨고, 또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만큼 매출도 나왔다. 그래서 더욱 뿌듯했던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많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또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귀한 경험을 맞이하게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지난 팝업의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해본다. 왜냐면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잘해내고 싶기 때문에. 나는 이미 이 일의 기쁜 '맛'을 봐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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