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과정을 기록해두는 일
붙잡지 않으면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한 곳에 모아서 적어두기로 한다.
브랜딩과 마케팅에 관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고,
거리에서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떠오른 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경계를 두지 않고 모든 것을 다루되,
가볍게 써보자는 취지에서
'에브리띵 바이트'라 이름붙였다.
중요한 건 지금 나이, 지금 연차,
그러니까 현재의 나여야만 쓸 수 있는 생각들이다.
초벌의 조각들.
박물관에서 건져올린 단어다.
그저 흙덩어리가
아름답고 고운 빛깔을 가진 청자가 되기까지.
사이에는 어떤 흙이든 초벌의 과정이 있었다.
불 온도를 맞춰주지 않아서 깨어질 수도,
주인장 기준에 맞지 않아서 깨어질 수도.
여러 등등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는 초벌의 조각들을 보자마자 단숨에 마음을 뺏겼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흔적 같아서.
투박하고 하찮고 미완성된 조각들이라도
계속 다시 하고 또 다시 하고, 수없이 반복을 거쳐서
결국에는 아름다운 청자가 된다.
그러니까 CHAT GPT, 생성형 AI의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과정만큼 빛나는 건 없겠다란 생각이 든다.
AI에겐 과정이 없다. 입력과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는 어떤 임무가 주어지면
1,2초만에 뚝딱 결과값을 산출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부딪히고 깨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달려가는 과정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에게는 누구나 있다.
날 것의 과정을 기록해두는 일.
그것이 AI의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임을,
한땀한땀 쌓아올리는 여정 자체가
곧 경쟁력이란 걸 느낀다.
하루에 단 15분, 30분이라도 이 자리에 앉아서
지금 떠오르는 날 것의 생각,
그리고 과정의 조각을
여기에 기록해 두기로 한다.
덧. 요즘 읽고 있는 책.
- 조수용 <일의 감각>
연휴동안 잘 읽었다.
양장본이라 손에 감기는 느낌도 좋고.
홍시 속살빛 표지도 예쁘다.
그 안에 담긴 내용도..
허세 없이 담담하게 쓰인 어른의 발자취 같았다.
- 임상진 <상구너을 이기는 작은 가게 성공 법칙>
생활맥주의 이야기.
요즘 내가 담당하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매장에 관한 이야기라서
퇴근하고 도파민처럼 푹 빠져들어서
헤치우듯 읽는 중.
육성으로 '와 재밌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
라는 일종의 동질감.
- 도리스 레싱 <다섯때 아이>
오독오독 북클럽 3월의 책. 아직 안 펴봄.
- 성유미, 이인수 <서른에 읽는 프로이트>
엄마가 요새 고민이 많아 보인다며..
선물로 보내주심.
쿠팡으로 책 선물 받기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