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케: 좋은 게 좋은.. 거겠지?

εποχη (epoche), 나는 그 판단을 일단 보류

by Jo

최근 들어 내 귀에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관용구(?)가 자주 들린다. 깊게 따지고 보면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일을 따지거나 더 파고들지 않고, 좋게 받아들이자는 뜻으로 으레 사용되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갔다. 좋은 게 좋은 거라니, 밥솥으로 밥 짓는다 같이 너무 당연한 소리 같아서 분명 무슨 뜻이 더 있을 것이라 하고, 그 명제를 나는 좀 더 '따지고' 봤는데, 무슨 상황에 사용해야 적합한지 이해하고 나선 비슷한 속담으로 "긁어 부스럼" 혹은 "Why so serious"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에포케, 판단중지


내 짐작과 판단들이 부족한 경험과 지식들에 비해 내 의식이 벌써 어느 방향으로든 굳어지게 만드는 것 같아 일단 냅다 '판단 중지'를 해야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εποχη (epoche):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용어, 특히 회의주의자들이 어떠한 판단에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짐.

현대 현상학에서는 주로 경험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의미.

판단을 멈추는 것으로 그냥 흘려보낼 수 있었던 생각들이 생겼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섣불리 함부로 판단하기 전에 조금은 더 멈출 수 있는 경계심을 심어줬다.


판단, 멈춰!

그런 의미로 나에게 그 '좋은 건' 좋다고도 판단이 되기 전에 일단 멈추는 거다. 그렇다/그렇나? 하고 인식, 거기서 함부로 내 생각을 담아 넘겨짚거나 판단하지 않기. 판단을 중지하기 너무 어렵다면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판단해 보기였다.



토끼 굴


우리가 사는 현대는 정보도, 현상도 그 현상을 전해 들을 소통로도 너무 많다. 그 과정과 파생 정보들을 전달하기도 무척 쉬워진 세상에서 자주 선뜻 결정과 좋은 판단을 하기 힘들게 만든다. 이 많은 정보들로 인해 자칫하면 분석마비 (Analysis Paralysis)로 빠질 수 있다.

오케이, 지나갈게요

그래서 내 삶전체를 뒤흔들어놓는 문제나 큰 가치에 연관된 문제가 아니라면, 판단 중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산뜻하게 지나가는 것도 선택과 필요 없는 파고듦의 피로를 줄이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이 정도면 좋다 하고 넘어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