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영정사진

by 요빈

마음속 영정사진이란 것이 있다. 고인을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나타나는 사진 한 장.


B의 경우는, 처음 만나던 날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던 그 얼굴. 빨간색 다운점퍼, 베이지색 배낭. 여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자라서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더 정확히 기억하는 그 얼굴. 나도 모르게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놀라서 죄송해요." 하고 솔직하게 사과했더니 그런 일 많다며 괜찮다며 멋쩍게 웃던 아이. 찰칵.


Z의 경우는, 눈을 살짝 아래로 향해 기타를 잡은 왼손을 쳐다보는 모습이다. 인상적인 장면은 함께한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가 보다. 강의실 단상 구석에 앉아, 책상 한 모서리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던 모습 이외에는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리고 C. 비록 실제로 함께한 시간은 없었지만, 이 사람의 영정사진을 어떻게든 떠올려보려 하는데 도저히 나타나지를 않는다. 파노라마조차 형성이 되지를 않는다.


전자의 두 사람의 경우엔 그렇게 밤낮을 울고불고 그 이야기를 하며 모든 추억을 다 입 밖으로 낸 후 잊기라도 할 양, 그렇게 한바탕 나만의 의식을 치렀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좀 다르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르다. 내가 만약 오래 산다면, 앞으로 수도 없이 치러야 할 과정일 텐데, 이게 과연 익숙해질 날이 오긴 할까. 지인과 가족, 혹은 나의 우상들. 그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나는 이렇게, 중요한 가방 하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


생각이 거듭되고 거듭되고 겹쳐지고 흩어지고 다시 모아 그것을 생각으로 만들고, 아니 어쩌면 무언가의 형태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이것저것 갖다 붙이기도 해 본다. 해결책과 정답은 절대 가시화되지 않을 것을 안다. 아니 어쩌면 본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쉬운 것이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가 존재하여 인간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였고 인간이 존재하여 인간들은 종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신이여, 괴로움에서 구해주소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괴로움의 끝에 있는 이 죽음이, 완전한 무의 세계가 아니라 또 한 번 당신 곁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라 하여주소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견딜 수 없는 허무감과 상실감. 마음속 영정사진을 한 번씩 꺼내 보며, 그들이 영원한 절대자의 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고, 나 역시 그리 되리라고. 언젠가는 만나리라고.


학부 때 복수전공으로 철학과를 선택했었다.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배우고 싶은 것과 실제 커리큘럼의 갭을 목격하고 바로 전공 포기원을 제출했다. 어쩌면 철학과도, 철학가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해결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알기에, 그저 뜬구름에 손 휘적대며 세상만사 원래 다 그런 척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연극을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인가에 대해 처음부터 계속 고민해 왔다. 그러나 이제 확신한다. 연극을 선택하길 잘했어. 나 스스로 이 고통을 초월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그러길 바란다.


2014년 12월

이전 15화친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