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오늘은 죽지 마> 3화, 나를 죽이지 못한 것
1-1 실기실에는 열한 명의 열네 살 소녀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벽을 등지고 일렬로 서 있었다. 각자의 손은 축 처지거나 바지 주머니에 깊이 박혀 있었고, 서로 눈길을 피하며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실기실은 검은색 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창문들이 있었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창과 복도로 향하는 창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벽을 타고 내려오며 음울한 분위기를 더했다. 창문들은 보통 남성의 키만큼 높았고, 누군가가 일부러 의자에 올라서지 않는 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지아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지아는 고개를 천천히 들며 자신의 평화를 방해한 상대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 흐릿했고,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눈앞에 있는 것은 같은 실기반 소속인 서영이었다. 서영의 표정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고, 그녀의 입술은 말 못 할 무언가를 전하려는 듯 미세하게 떨렸다. 둘은 아직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지아는 서영이 왜 자신을 깨우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서영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지금 실기실로 오래." 서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2학년 선배들이."
"선배들이 왜?"
"모르겠어. 우리 실기반 애들 다 데리고 1-1 실기실로 오래."
그렇게 지아는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열 명의 아이들과 함께 실기실에 모였다.
미화 예술중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지아가 다니던 미술학원에는 이미 이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제법 진지한 얼굴로 지아에게 중학교에 들어가면 선배에게 반드시 깍듯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입학 후 일주일 동안 지아는 복도, 식당, 화장실 등 학교 곳곳에서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수도 없이 마주쳤다. 미화 예술중학교에는 미술부, 음악부, 무용부가 있었고, 각 학년마다 여러 반이 있었다. 모든 교실이 한 층에 모여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동 수업도 많아서 누가 선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1학년을 불러 모았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소녀들은 긴장한 표정 속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기대감에 눈동자가 반짝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서로의 반응을 엿보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경험을 기다리는 듯했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큰 혜영이 말했다.
"뭐야, 우리 2학년 선배들이 집합시킨 거야?"
"혹시 우리 맞는 거 아냐?"
옆에 있던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을 가진 승희가 살짝 겁먹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아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억지로 억누른 한숨이 목구멍에서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서 있는 이 자리가 마치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왜 낮잠을 방해받고 이곳에 서 있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다섯 명의 소녀들이 실기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왔고, 마치 공간의 공기를 쥐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 소녀가 문 옆 벽에 있던 스위치를 내리자, 실내는 한순간에 어둑해졌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던 햇빛은 사라지고, 차가운 공기가 소녀들의 피부를 스치며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지아는 재빨리 그들의 수를 셌다. 다섯 명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살짝 앞서 있었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섯 명이었다.
"너희 다 고개 숙여." 키가 작고 통통한, 피부가 하얀 소녀가 말했다.
지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들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길고 매끈한 팔다리에 늘씬한 몸매, 높게 묶은 포니테일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냉정했고, 가볍게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감과 리더십이 느껴졌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녀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녀는 지아를 흘끗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1학년 소녀들은 일렬로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너희 어제 여기서 수업했지?"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녀가 입을 열었다.
"..."
"대답 안 해?"
"네..."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갔더라? 여기가 너희만 쓰는 데인 줄 알아?"
"죄송합니다."
"그리고 선배한테 인사도 제대로 안 한다며?"
"..."
"앞으로 인사 잘하고 다녀."
그들은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보였다. 지아는 이 언니들이 그저 신입생들을 한 번 군기 잡아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었지만, 지아는 여전히 차분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고, 그저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듯 보였다. 소문처럼 무섭지도 않았고, 긴장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김 빠진 사이다처럼 허무한 상황이었다.
지아는 이미 학교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날의 흔적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앳된 한 살 위의 2학년 선배들의 시도는 지아에게 안쓰러운 노력처럼 보였다. 그들의 위협은 귀여운 허세에 불과했고, 지아를 겁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