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부마 Oct 27. 2024

<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재즈 음악가인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작품이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내며 인종, 종교, 그리고 여러 인생사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다. 얼마 전, 도서출판 미래지향에서 이 책의 서평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국과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읽고 있으면서도, 미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한 작가가 그려내는 미국 사회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게다가 오프라 윈프리와 버락 오바마가 추천한 책이라는 설명과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사에서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적어도 읽고 나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의 시작은 강렬했다. 1972년, 한 우물에서 발견된 해골이 사건의 시작을 알리자마자, 나를 1920~30년대 치킨 힐이라는 가상의 마을로 데리고 갔다.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유대인 부부 초나와 모셰가 운영하는 하늘과 땅 식료품점이 있다. 모셰는 루마니아에서 온 이민자이고, 초나는 리투아니아 계 이민 2세다.  이곳은 가난한 흑인, 유대인,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치킨 힐 공동체의 중심지이자, 장애를 가진 흑인 소년 도도의 안전을 위한 보호막과도 같다. 초나와 모셰는 도도를 위험한 시설로부터 지키기 위해 서로 다른 배경과 신념을 가진 이웃들과 협력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인물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 연대하며 희생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 책의 절정은 바로 도도를 지키기 위해 각기 다른 문화와 인생사를 지닌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합치는 장면이다. 초나와 모셰를 비롯해 유대인, 흑인, 라틴계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자신의 편견을 내려놓고 함께 나아가는 모습은 단순한 협력을 넘어, 서로가 가진 다름이 오히려 강점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각 인물들이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통해 도도를 보호할 때, 그 다름 속에서 강한 연대와 진정한 인간애가 피어나는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종과 신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손을 맞잡고 한 사람의 삶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어벤저스처럼 함께 모여 거대한 힘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연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야기 곳곳에는 인물들이 지닌 서로 다른 가치와 신념을 부딪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들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고, 내가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애로운 마음이 있어야죠! 자애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내가 시내에 갔을 때 한 여자가 내게 '저 불쌍한 불구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나는 생각했죠. 누가 불구인가? 물건이나 현상만을 숭배하는 사람이 불고 아닌가? 무언가 더 높은 것을 숭배하는 사람이 불구인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더 많은 돈이 삶을 편하게 할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 상처를 내는 것이었다.


초나의 꿈과 모셰의 실용적인 신념이 만나는 이 장면은 이들 부부가 어떻게 이상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이 대화를 통해 나는 현재 내가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


모셰는 아내의 단호한 신념을 가만히 바라본다. 재정적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믿던 그의 신념에 상처를 내는 것 같은 말이지만, 모셰는 결국 아내의 뜻에 따라 치킨 힐에 남는다. 초나가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해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모셰의 수입 덕분이었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들 부부는 따뜻한 마음과 경제적 지원이 결합된 시너지로 이상적인 공존의 모델을 보여준다. 이 대화를 통해 나 또한 현재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게 되었다.



극장에 온 스페인계 관객들을 보고 놀란 모셰와 라틴 음악가 마리오에게 말한다. 


"이 주변에 저렇게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모셰가 중얼거렸다.

마리오가 웃음을 지었다.

"당신에게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이지요. 내게 그들은 푸에르토리코 사람, 도미니카인, 파나마인, 쿠바인, 에콰도르인, 멕시코인, 아프리카인, 아프로 쿠바인들이랍니다. 정말 다양하지요. 수많은 다른 소리가 함께 섞여 있죠. 그게 미국입니다. 당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해요. 모셰."

-중략-


마리오의 말은 단순한 대화 이상의 울림을 준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칫 그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생각하지는 않는지. 마리오의 말은 진정한 공존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사회의 근본이 된다는 점을 꼬집어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 후, 미국인 친구에게서 Rosh Hashanah 예배를 스트리밍 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지나쳤겠지만, 이 책 덕에 유대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그러겠다고 했다. 유대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Rosh Hashanah와 열흘 후의 속죄일 Yom Kippur를 함께 경험하면서,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에서 순수와 정결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예배를 통해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유대인’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이제는 나와 함께 손을 맞잡는 이웃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치킨 힐은 지금의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특정 지역은 소득에 따라 거주하는 인종이 구분되어 있으며,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과 백인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의 생활환경 차이는 분명하다. 

매일 아침 들려오는 라디오 뉴스 속 ‘low income neighborhood(저소득층 지역)’이라는 표현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법적 구속은 없지만 경제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상황은 치킨 힐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많은 부분, 그중에서도 나 자산의 인식조처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성찰을 던지는 작품이다. 초나와 도도는 각각 소아마비와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강인하다. 도도는 공동체의 새로운 세대이자 희망이었고, 가치고 싶은 가치다.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이들이 연대하여 도도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은 우리가 가진 다름이 어쩌면 새로운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포용하고 그 차이를 넘어서며, 진정한 연대와 인간애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준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각기 다른 물줄기들이 모여 강이 되듯,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 본연의 따뜻함과 연대, 그리고 우리가 함께할 때 발휘되는 강인함을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공존이 무엇인지,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다움이라는 메시지를 건네준다. 서로를 포용하며 공존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 주었다.

『하늘과 땅 식료품점』은 소설적 재미와 함께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