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아. 너 혈액형 O형이지?"
"응,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O형은 어떤 사람인데?"
"같이 골프 치면 그 사람 성격 다 나오거든~ 그런데 넌 어떤 상황에서도 둥글둥글한 게 O형 같아!"
상대의 성격을 4가지 혈액형으로 맞추면 옛날 사람이고, 16가지 MBTI로 추론하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라고 한다. 나는 MZ세대지만 네 가지 혈액형으로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영락없는 옛날 사람인가 보다(웃음).
MBTI에서는 인간의 성격을 4가지 선호 경향으로 분류한다. ▲ 주의 초점-에너지의 방향인 외향성(E)과 내향성(I) ▲ 인식 기능-사람이나 사물의 정보를 수집하고 인식하는 방식인 감각(S)과 직관(N) ▲ 판단 기능-판단하고 결정하는 근거 방식인 사고(T)와 감정(F) ▲ 생활양식-선호하는 삶의 패턴인 판단(J)과 인식(P). 이를 다시 특성 간의 조합을 통해 총 16가지 성격유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흔치 않은 경우지만 나는 매번 테스트할 때마다 외향성(E)과 내향성(I)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결괏값이 달라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용한 페르소나에 있다.
나의 타고난 성향은 내향성(I)에 가깝다. I(Introversion)의 특징으로는 자기 내부 세계에 흥미를 갖고 주의 집중하기에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돌보며 평온을 찾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에너지를 충전한다.
객체보다 주체를 중요시 여겨 타인의 호의를 얻으려는 경향이 적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기보다 자신의 결정과 판단에 따라 행동한다. 신중하여 얕고 넓은 관계보다는 좁고 깊이 있는 대인관계를 선호한다. 글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기를 좋아하며, 관찰하고 이해한 다음 행동한다.
주변 사람에게 내가 사실은 내향형(I) 인간이라고 말하면 다들 농담하는 줄 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할 때는 대체로 외향성(E)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E(Extraversion)의 특징은 자기 외부에 주의 집중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지식이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사교적, 활동적이며 낯선 외부 활동에도 두려움 없이 적극성을 발휘한다. 리더의 자질이 있으며 폭넓은 대인관계를 선호하고, 행동한 다음 경험을 통해 이해한다.
그렇다면 극과 극인 두 성향을 어떻게 한 사람이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마치 홀로 팔짱을 꼈을 때 어느 쪽 팔이 위로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냐는 것과 비슷하다. 흔히 오른쪽 팔이 위로 올라가면 좌뇌형이고, 왼쪽 팔이 위로 올라가면 우뇌형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편한 것과 상관없이 양 팔이 존재한다면 두 가지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나의 타고난 성향이 내향성(I)이라서 밖에 나가 외향성(E) 인간으로 활동하면 에너지가 방전된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소위 '시체 놀이'를 즐긴다. 일정 시간 밖에 나가지 않으면 에너지가 재충전되기에 혼자 집에 있어도 재미있고 심지어 바쁘다. 나와 같은 IE성향이 의외로 많다 보니 최근에는 이런 부류를 '자발적 아싸'라고도 부른다.
그동안 골프를 칠 때 외향성(E)을 많이 보여왔는데, 그건 처음 골프를 가르쳐준 KLPGA 프로님의 영향이 크다. 나는 아마추어 취미 골프니까 스코어 계산하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동반자들과 어울려 즐겁게 치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하셨다.
해서 회원수 몇 천 명 규모의 골프 동호회 운영진 자리를 맡은 적이 있다. 그때 신규 회원들과 라운딩을 하며 그들이 동호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덕분에 남녀노소 불구하고 낯선 동반자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기술력이 향상됐다.
MBTI에서 말하는 내향성(I)의 나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동안의 교육 및 경험, 새로운 환경에 처하자 전혀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가까운 예로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실내 생활이 갑갑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때쯤 지인의 추천으로 골프 조인에 도전했다. 그 덕에 좋은 골연(골프로 연을 맺는 것을 의미)도 생기고 즐거운 추억도 쌓으면서 지금의 골프 칼럼까지 연재하게 됐다.
이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변화된 환경과 자주 어울리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기존에 몰랐던 잠재 능력이 발휘되기도 하고, 자신에게 편한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깨닫기도 한다. 그렇기에 MBTI의 결괏값은 테스트할 때 처해진 환경과 당시의 생각, 심리적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스스로 기술하거나 선택하는 방법으로 진단하는 '자기 보고식 검사'에 기인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정리하자면 타고나는 개인의 성향과 기질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성장 배경과 환경, 현재 주어진 역할, 어울리는 사람들, 종교와 그에 따른 가치관이나 사상 등에 의해 사람은 변한다. 이를 제2의 본성 즉 '아비투스'라고 한다. 하여, MBTI 결과가 바뀌었다는 것은 결국 나의 생각이나 마음 자세, 삶의 태도가 변화했다는 의미다.
온라인 상에서 10분 정도 소요되는 문항을 체크하면 자신의 성향을 무료로 알려준다. MZ세대에서는 워낙 그 인기가 뜨겁다 보니 최근 채용 공고문에서 지원 자격으로 MBTI가 등장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정 유형의 사람은 지원 불가하다고 하여 댓글창에는 갑론을박까지 펼쳐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우려하며 비과학적인 MBTI를 오해, 과몰입하고 맹신하는 태도를 지양하라며 권고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개인의 성향과 업무 역량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MBTI 검사를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지, 특정 유형을 배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상호보완적인 건강한 관계를 이뤄갈 때 업무 능력은 훨씬 효율적이다.
특정 성향을 혐오하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이 세상에 좋고 나쁜 MBTI 성향은 없으며 동시에 모두가 필요한 성향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자신도 모르는 다양한 모습이 여전히 존재한다. 문득 함께 골프를 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그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오늘 궁금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고 해서 서로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해.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 알아가야 하는 존재니까."
그래서 고백하건대, 사실 나는 둥글둥글한 O형 안에 겁나 까다로운 미인형이 숨어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