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펜이 강하다는 것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배웠다

글 내림받은 작가 이은영

by 이은영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0월의 주제는 '내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당연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상황을 매우 견디기 힘들어하며 원망하거나, 때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나에겐 2009년이 그러했다. 그해 나는 얼굴 피부에 의료사고를 당했는데, 그로 인해 패션 사업도 연애 사업도 실패하면서 죽음을 계획했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 내가 태어나서 읽은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그것은 단순히 지금 처한 상황과 괴로움을 잊기 위한 또 다른 도피 방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아무튼 전 세계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두꺼운 책만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나갔는데, 단 하나의 구절을 읽는 순간 눈부신 빛이 내 두개골을 쪼개며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 위에 적힌 한낱 글자에 지나지 않았던 구절이 내 삶으로 들어와, 지금도 내 인생을 최고의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


아무도 '이것이 저것보다 나쁘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때가 되면 좋은 것으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온 마음과 입을 모아 찬미가를 부르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가톨릭 성서 집회서 39, 34-35)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고 했다.

전 세계 스테디셀러라는 성서 속 문장들을 마음속에 담자, 어쩌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협한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나쁘다고 판단하는 내가 있을 뿐,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좋고 나쁨은 없다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부정적인 감정 역시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반응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래서 한동안 혼란스러워하며 괴롭혔던 나 자신부터 올바로 사랑해주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절대 기준이 아닌 단순히 내 감정에 따라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의 지혜를 찾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상 속 사랑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은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총보다 펜이 강하다는 것을, 죽음을 생각하던 그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배웠다. 2000년 전 누군가 기록한 글이 나를 살렸으니, 오늘날 내가 기록하는 글도 누군가를 위로하며 용기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내면의 소리를 따라 펜 끝으로 쏟아내는 나의 진심은,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지구 반대편 독자의 마음에 까지 뿌리내리며 또 다른 삶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 의지는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다. 피할 수 없는 수많은 시련 속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체험하게 해 준다.


지난날, 미움 속에서도 다시 용서하고 사랑했던 일, 용감하게 견뎌낸 시련이라는 실체는 계속해서 견고하게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모든 고통 속에서 복수의 칼날을 뽑기 보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를 올리고 펜을 잡았던 태도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릴 때 들었던 특정 종교의 가르침처럼 천국과 지옥은 사후 세계에서 심판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가운데, 나의 마음 안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바로 구원의 날이고 부활 체험이다.


만약, 지금 내 뜻대로 돼서 행복하고, 내 뜻대로 안 돼서 불행하다면 그건 진리에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다. 외부 환경에 지배되지 않고, 널 뛰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 안의 중심을 잡고, 내 안에 존재하는 성자(聖者)를 만나야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도 묵묵히 땀과 눈물을 흘리며 자기 길을 걸어가는 나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이 글이 가닿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을 상상하며,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결국,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인생의 모든 일은 때가 되면 좋은 것으로 판가름 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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