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위한 멈춤; 멈춤 여행의 시작
또 하루가 밝았다.
어제는 또 하루가 간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늘의 아침과 어제의 밤마다 같은 생각을 한지 한 8개월쯤 된 것 같다.
또 하루가 밝았다.
어제는 오늘과 같은 하루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8개월 만에, 오늘의 아침과 어제의 밤에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하고
바다가 보이는 창문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고,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달라고 하늘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앉아 비행기표를 사고
회사에 낼 사직서를 작성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하여 나는 멈췄다.
멈춘 지 오늘로 20일째, 항상 무언가를 계획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평소의 나와는 너무나 틀리게 매일같이 늦잠을 자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림이 그리고 싶으면 그리고 글이 쓰고 싶으면 쓰고 밥이 먹고 싶으면 먹고 걷고 싶으면 걷는다. 나는 천성이 개미인 사람인데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실은 몹시 불편한 상황이다. 그리고는 쉼표 기간이라면서 이 느릿한 삶을 뉴욕 한 중앙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하고 있다는 것.
10분 간격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도로 앞 건너편 건물 공사의 드릴 소리로부터 유일하게 나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동네에 있는 카페로 피신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사정도 뭐 그렇게 다를 것이 없긴 마찬가지 지만. 그도 그럴 것이 조용한 동네 카페에서는 커피의 잔을 1/5 도 비우지 못한다. 앉을자리 없어 눈치만 살살 살피다 겨우 앉아 마실 수 있는 커피 한잔은 왜 그렇게 맛있는지. 맛도 좋은데 분위기도 좋고 사람도 없는 내가 살던 동네 와는 사뭇 다른 이 동네는 맛있는 라테의 마지막 한 모금처럼 써서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아깝다.
하지만 오늘도 그 마지막 한 모금을 위해 긴 줄을 서서 요리저리 눈치 보며 겨우 잡은 자리에서 라테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실 생각이다. 한 백번 정도 하면 꽤 멋진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