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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Aug 09. 2019

마음은 어떻게 여는 거죠?

카페에서 원고를 마감하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마늘 까기에 한창이었다. 그것도 김장 담그는 큰 대야에 담긴 엄청난 양의 마늘들. 여느 때처럼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방에 들어와서 짐 정리를 했다.


이것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잘 못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마음을 쉽게 열어 보이지만 딱 거기까지다. 한계가 분명 정해져 있다. 38선처럼 넘어오고 싶어도 넘어올 수 없는 그런 장벽.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38선은 어린 날 가족이 나에게 만들어준 것일 거다. 그들이 의도했든 안 했든 간에 말이다. 그 까닭에 나는 가족에게 세상 누구보다도 뻣뻣하다. 시리(Siri)보다도 어색한 말투와 표정 없는 얼굴, 심지어는 말할 때 그들의 얼굴을 보지도 않는다. 뭐랄까, 머리로는 대화할 땐 그들의 눈을 봐야 한다는 걸 아는데 보는 순간, 마음속 뭔가 (아마 38선..?) 무너져 내릴 것 같아 쳐다보지 못한다. 무너져 버리면 감당 못할 쓰나미가 찾아오기 때문이겠지. 여하튼 난 그런 아이다. 이 집의 딸이지만 가족 구성원의 일부 정도만 해당되는 그런 딸. 사람 사이에, 가족 사이에 주고받는 교감 따윈 없는 참으로 건조한 관계.


집 오자마자 하는 샤워, 짐 정리, 로션 바르기 등의 루틴의 일과들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 빈둥거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원고 마감한 날엔 더더욱. 프리랜서로서 혼자 일하면서도 일이 끝나면 더더욱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기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길 소망하는 시간이랄까. 거실에선 어느샌가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도 함께 마늘 전쟁에 참전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지 못해도 두어 시간은 지나있을 때였으니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머니는 마늘로 하루를 거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웠는지 자기가 하겠다고 그만하라 말했다. 방으로 들려오는 두 분의 애정 어린 대화에 왠지 모르게 머쓱해졌다.


'나는 왜 저들과 함께 하지 못할까'


의지를 내보자. 말없이 그들을 지나쳐 부엌에서 비닐장갑과 칼을 챙겨 들고 그들 옆에 앉았다. 어머니는 놀란 눈으로 너도 하려고? 손 버려, 하지 마. 라고 하셨지만 표정은 분명 아니었다. 한집에 살면서도 눈 보고 대화 좀 하자고 하시는 어머니를 거절만 일삼던 내가 처음으로 다가가 손을 건넸으니 이게 웬일이야, 싶었을 것이다. 내가 봐도 내가 신기한데. 당신들은 오죽하겠어.


그렇게 몇 시간을 셋이 앉아 마늘 껍질을 깠다. 전투 중에는 적군들에게 집중하느라 말할 새가 없다. 나는 이 정도도 큰 용기였고 행위 자체만으로도 큰마음을 내보였으니 그 이상은 나에게 요구하지 않길 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말을 걸어오셨다. "지금 저 방송에 나오는 애가 이름이 뭐야?" "안재현" "저 친구도 개그맨이야?" 모든 질문에는 호기심이 들어있진 않다. 딱히 궁금하지 않음에도 물어보는 질문. 그의 질문은 대화를 하기 위한 노크 정도였다. 그걸 알아챈 나는 대답을 성의껏 해드렸다. "아냐, 모델이었는데 연기자이기도 해. 구혜선 알지? 그 사람이랑 결혼도 했어."


와, 상당히 긴 대답이었다. 내가 이들에게 이런 친절한 마음으로 조곤조곤 말을 하다니. 친절, 호의는 행동에서도 나오지만, 나에겐 행동보다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수십 배는 어려웠기에 나의 이런 장문의 대답이 스스로 놀라웠다. 마요네즈를 한 숟가락을 퍼먹은 듯 단전에서부터 오글거림이 일렁였다. 얼굴 근육을 괜히 쪼였다 풀어냈다. 이렇게 한 발자국 내딛다 보면 나도 변해 있을까. 나도 내가 부러워하는 딸들 모습처럼 곰살맞은 딸이 될 수 있을까. 고작 같이 마늘 까는 일로 엄청난 걸 바라다니. 이 정도는 다른 집에선 당연한 일들인데. 아니지. 나는 이제껏 이 당연한 것들도 안 했으니 지금 나에게 대단하다 칭찬해줘야지. 잘했어. 그렇게 조금씩 해보면 언젠가 네가 바라는 그런 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아빠가 고모한테도 마늘을 줬거든?

자긴 이미 껍질 다 깠으니 그거 우리 가져가고

안 깐 거 자기 달라고 하시더라. 그런 거야, 가족은.

어려운 거 있으면 서로 돕고 베푸는 거야."


나도 아는데 뭐랄까, 나에게 저런 말은 도덕 교과서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라 영 와닿지 않는다. 현실은 교과서랑은 다르잖아요? 이 말도 속으로 뱉었다. 나는 대화도 혼자 한다. 그런 어색한 대화가 몇 차례 오가니 밤이 깊었다. 이쯤 하고 오늘은 이만 자자고 하셨다. 다시 돌아온 혼자로 돌아가는 시간. 석방된 죄수 마냥 얼른 방에 들어가 누워있고 싶었다. 혼자. 조용히. 후다닥 들어가려는데 나의 등 뒤로 아버지께서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고마워. 손이 하나 더 느니까 일이 빨리 됐네. 내일도 같이 하자."


... 이런 말엔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하는지 잘 안다. 정답은 "아냐, 아빠도 고생 많았어. 어서 자자!" 이런 말이겠지. 아, 그런 말은 죽어도 못 할 것 같다. 입 밖으로 내뱉을 생각 하니 토할 것 같아. 어떤 말이라도 하긴 해야겠는데 뭐라 말하지. "재밌었다!" 기껏 내뱉은 나의 대답은 저런 것이었다. 애정표현 서툰 이의 대답이 의미하는 바는 그도 잘 알 것이다.


아무래도 내일도 마늘을 까야 할 것 같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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