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라디오 덕후, 돌고 돌아 라디오 작가가 되었다
11살, 하굣길에 무심코 들은 라디오 소리에 가슴 설렌 적이 있다. 슈퍼 앞에 세워져 있던 트럭 안에서 작게 (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울려 퍼진 G.O.D의 음악이었다.
아마도 그때쯤부터였다.
떡볶이 사 먹을 돈도 모자랐던 초등학생이었기에 카세트테이프는 나에게 '값비싼 어른의 물건'이었다. 그때 내게 묘안이 되어준 것이 '라디오'였다. 기약 없는 라디오 선곡에 맞춰 공테이프를 넣어놓고 어쩌다 '그 노래'가 나올 때면 제자리에서 튀어 올라 녹음 버튼을 누르곤 했다. (본의 아니게 순발력 훈련이 되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로또 같은 라디오를 듣다 못해 사연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순전히 노래를 듣기 위해서, 아니 공테이프에 녹음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분명 처음에는 음악이 목적이었는데, 나중에는 나의 글이 방송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졌고 더 나중에는 라디오라는 매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그렇게 라디오를 향한 집착이 시작되었다.
나의 학창 시절 취미는 단연코 라디오 청취였다.
MBC FM4U의 하루 편성표를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종일 들었다. 이후 학업에 치여 라디오를 잠시 잊을 무렵, 친구의 조언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많고 많은 글 쓰는 직업 중 라디오 작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에게 길이 열리는 건 아니더라. MBC TV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때면 라디오국에 올라가 스튜디오를 빙빙 배회하다가 오기도 했다. 주변을 머물며 나의 꿈을 잊지 않겠단 일념으로 블로그 <장작가의 요거트라디오>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덧 8년이 지나간다.
여전히 주변부를 배회하며 글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정말이지 우연찮게, 꿈을 이루게 되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던 회사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하겠다며 내게 작가 제안을 해주셨다.
결국, 돌고 돌아, 꿈을 이루었다.
내가 쓴 대본을 누군가의 목소리로, 말투로 읽는다.
대본을 쓸 때면 나는 여러 사람으로 빙의된다.
그의 말투로, 숨을 들이쉬던 박자도, 말버릇도 체크하며 글을 써 내려간다.
어느 날 한창 원고를 쓰고 있는데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건넨 말이 기억에 남는다.
뭐가 그렇게 웃겨?
일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
내가 쓴 글에 나 혼자 히죽거리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며 질문한 것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그토록 염원하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즐겁지 않을 수가 있는가!
이것이 언제까지 내게 주어질 임무일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끝내주게 즐겨주어야지.
후회가 남지 않도록! :)
@YOGURTRA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