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무효심결이 가져온 준재심 인용 판결
조정으로 종결된 IP 침해소송도, 등록디자인이 무효로 확정되면 다시 뒤집힐 수 있습니다. 특허법원은 2025년 11월, 디자인 무효심결 확정 → 형사 재심 무죄 → 민사 준재심 인용으로 이어진 연쇄적 구제 경로가 실제로 작동함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발가락 교정기에 관한 디자인 분쟁입니다. 원고 A사는 조정참가인 D와 함께 두 개의 등록디자인(제1 등록디자인·제2 등록디자인)을 보유하였고, 피고 C가 유사 제품을 판매하자 민·형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였습니다.
형사 절차에서는 피고가 2018년 1심 유죄판결을 받은 후 상고까지 이어졌으나, 대법원은 디자인보호법위반 부분을 유죄로 유지하였고, 환송심을 거쳐 2022년 2월 형사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민사 절차에서는 2019년 침해소송 제기 후 2021년 원고가 전부 승소하였습니다. 피고가 항소한 특허법원 사건에서, 피고는 제1 등록디자인에 대한 무효심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출하여 변론이 재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간 합의가 끝내 성립되지 않자, 법원은 2023년 3월 직권으로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하였고, 피고는 25,000,000원을 원고 측에 지급하고 문제된 제품의 생산·판매를 중단하기로 하는 내용이 2023년 4월 확정되었습니다.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상황이 급변합니다. 피고가 청구한 제2 등록디자인 무효심판에서 특허심판원은 2024년 2월 무효심결을 하였고, 같은 해 4월 확정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개의 디자인권이 모두 소급적으로 소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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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무효심결 확정을 근거로 형사 재심을 청구하였고, 법원은 2024년 8월 무죄판결을 선고·확정하였습니다. 이어서 피고는 확정된 조정결정에 대한 민사 준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핵심 쟁점은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8호의 재심사유, 즉 "판결의 기초가 된 재판이 다른 재판에 의해 변경된 때"가 조정결정에도 적용되는지였습니다.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은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민사조정법 제34조 제4항) 준재심 자체는 허용됩니다. 문제는, 결정조서에 이유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유 미기재 조정결정에 대해서는 재심사유를 판결보다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습니다(대법원 2003다55936 판결). 이유가 없으니 어떤 재판이 결정의 기초가 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허법원은 이 난점을 간접사실의 종합으로 돌파하였습니다. 첫 번째 단서는 소송 경과입니다. 조정결정 당시 이미 제1 등록디자인의 무효심결이 확정되어 있었고, 피고가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 변론이 재개된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 단서는 조정결정의 금전 지급 구조입니다. 법원이 피고로 하여금 원고와 조정참가인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하도록 한 점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보유한 제2 등록디자인의 침해를 전제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세 번째 단서는 제1심부터 형사판결 전체가 증거로 제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정기일 전 제1 등록디자인에 대한 무효심결이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피고가 원고와 조정참가인에게 같은 액수의 금전 지급을 명한 점을 종합하면, 법원이 제2 등록디자인의 침해를 전제하여 결정한 것으로 보이고, 관련 형사판결의 유죄 인정이 그 판단의 자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판시를 통해 법원은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8호의 재심사유를 인정하였습니다.
준재심 사유가 인정된 이상 본안 판단은 비교적 간명하였습니다. 디자인보호법 제121조 제3항은 무효심결이 확정되면 그 디자인권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규정합니다. 제1 등록디자인(2023년 1월 확정)과 제2 등록디자인(2024년 4월 확정) 모두 무효가 확정된 이상, 원고의 권리는 소급적으로 소멸합니다.
"제1, 2 등록디자인 모두 무효심결이 확정된 이상 양 디자인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원고의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것 없이 이유 없다."
법원은 준재심대상조서를 취소하고, 제1심 판결을 취소하며,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습니다. 피고가 지급한 2,500만 원은 법리적으로 반환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입니다.
(1) 형사 재심 → 민사 준재심의 2단계 구제 경로 숙지 디자인 침해로 형사 유죄판결과 민사 배상 명령을 동시에 받은 피고라면, 이후 등록 무효가 확정될 경우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6호에 따라 형사 재심을 먼저 청구하고, 이어서 민사 준재심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그 경로가 실제로 작동함을 확인한 첫 사례 중 하나입니다.
(2) 이유 없는 조정결정의 준재심 — 간접사실 구성이 핵심 조정결정에는 이유가 적히지 않는 것이 통례이므로, 어떤 재판이 결정의 기초가 되었는지를 간접사실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결정 전 증거 제출 현황, 금전 지급 구조, 관련 형사·행정 절차의 진행 상황을 꼼꼼히 정리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3) IP 권리자의 리스크 관리 이 판결은 권리자 측에도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무효 위험이 현존하는 권리에 기초하여 조정을 진행한다면, 이후 무효 확정 시 조정결정 자체가 번복될 수 있습니다. 원고 측은 제1 등록디자인의 무효심결이 확정된 상황에서 조정에 응했는데, 제2 등록디자인까지 무효가 되면서 합의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4) 조정 조건에 권리 유효성 조건을 명시할 것 "본 조정은 제○ 등록디자인의 유효를 전제로 하며, 무효심결이 확정될 경우 별도 협의한다"는 식의 해제조건 조항을 조정 내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처럼 준재심이라는 복잡한 경로를 거치는 대신, 당사자 간 사전 합의로 분쟁을 조기에 정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