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보험이다.12
의료대란의 숨은 범인 '보험'
의료대란이다. 말 그대로 난리다. 뉴스에서는 전혀 양보할 수 없는 양측의 날선 공방이 보도되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환자의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더불어 유튜브에서 핫한 주제도 의료대란, 의대정원 등 현 사태에 대한 경제전문가의 의견이나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문제, 이들이 우려하는 부분이나 불만이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있다.
필자의 일이 의료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지라 피드에 뜨는 모든 영상을 주의 깊게 봤다. 경제 전문가도, 정치인도, 의사들도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의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현재 모든 의료가 수도권과 3차 병원으로 집약돼 있는 것이 매우 기형적이고 이로 인한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과 비효율적인 진료로 인해 환자 뺑뺑이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지역병원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술도 멀고 예약도 어렵고 진료비도 비싸고 소변검사 하나를 하더라도 대학 캠퍼스의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를 다녀야 하는 대학병원에서 하고 싶어할까?
사람은 내가 아는 것 안에서 들리고 보이고 생각하는 법! 나는 그 많은 영상들을 보고 들으면서 그 영상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 들리고 보이고 생각이 났다. 보험이었다.
패널들이 수도권 3차 병원에 환자 몰림 증상의 심각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진행자들은 물었다.
“아니, 왜 굳이 멀리까지 힘들게 오는 걸까요?”
그럼 내가 속으로 대답한다.
“보험금을 받아야 하니까. 개인병원에서 진료하는 내 주치의가 아무리 정확하고 자세하게 소견을 적어줘도 대학병원 소견 아니면 모두 무용지물이니까. 대학병원 소견이 아니라서 보험금을 받을 수 없으니까. 어차피 대학병원에 있는 자문의한테 물어본 후에 준다고 하니까.”
대표적으로 암치료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은 내용만 인정한다. 그조차도 수시로 객관적인(보험사 입장에서) 자문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만약, 암진단을 의원에서 받았고 암이 1기에 아주 작은 사이즈라서 개인병원에서 복강경으로 수술을 하고 약관에 부합하는 조직검사 결과 및 서류를 가지고 보험금을 청구해도 보험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대학병원으로 의료자문을 보내자고 할 거라 100% 확신한다. 그리고, 환자를 만난 적도 없는 대학병원 의사가 암이 아니라고 하면 그 환자는 암을 진단받은 적이 없는 환자가 된다. 건강보험공단 급여내역에 명백하게 암을 진료받은 것이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암입원치료에 대한 것은 극심하다. 오로지 대학병원에서 입원한 기간과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은 내용을 기준으로 암치료를 인정한다. 만약, 항암의 결과 부작용으로 혼자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그 환자가 대학병원에 입원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암치료로 인하여 입원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암수술의 결과 폐를 절제했기 때문에 호흡의 안정과 관리를 장기간 받아야 하는 환자도 암치료 목적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환자들은 본능적으로 하루라도 더 3차 병원에서 입원하려 한다. 검사도 3차 병원(대학병원)에서 받는다. 안 그러면,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해서 객관성을 입증하라고 한다. 대학병원이 의료기관 중 가장 객관적인 의학적 평가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험사는 말한다.
이제 보험사 현장조사자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피보험자 만나서 어떻게든 의료자문동의를 받고, 의료자문 결과 근거로 보험금을 안 주면 된다. 실손보험, 암입원비 모두 의료자문으로 해결 가능하다.
너무너무 바빠서 외래 환자 1분 만에 진료 끝내버리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어떻게 그 많은 의료자문들을 해내는지 모르겠지만 보험사가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대학병원의 의료자문 결과는 쏟아져나온다.
‘진단명과 치료의 적정성을 부정’하는 수많은 피보험자들의 수많은 진단명에 대한 획일된 질문과 거의 복사한 듯한 답변의 의료자문이 공장처럼 찍혀 나온다. 그러다가 ‘진단명과 치료의 적정성 부정’이 소송 등을 통해 해결되니 이제는 ‘입원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현실적으로는 대학병원이 아닌 병원의 모든 의사들의 소견을 보험사는 일단, 부정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그 주치의를 만나서 소견에 따른 보험금 지급에 대해 의사가 책임질 수 있냐고 심리적으로 압박하여서 결국 보험사가 원하는 소견을 받아내는 경우도 많다. 이 방법이 콧대 높은 의사님들한테 어찌 통할까 싶지만 실제로 매우 쓸모 있는 방법이고 현장조사자에게는 일종의 업무 노하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병원비 재원인 보험사가 대학병원 외에서 진료하는 의사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보험금이 필요한 사람들은 산 넘고 물 건너 시간과 돈을 쓰면서 대학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의료대란에 대한 ‘보험의 보험에 의한 보험을 위한’ 이수현 손해사정사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