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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24. 2021

책임보험, 치킨 그리고 손해사정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센터장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외상환자 대부분은 블루칼라 계층”이라며 “한 번은 어떤 언론인이 저희 병원에서 한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시면서 그 환자분들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정말 90% 이상이 우리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산업, 소위 말해서 산업 현장이나 아니면 적어도 운수계통이나 그런 데서 일을 하시면서 사회를 떠받치시는 분들이었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24일 한겨레신문)



외과의사와는 다른 시각에서 중증외상환자를 자주 만나는 직업을 가진 나도 위 내용에 동의한다. 동료가 깜박한 고압전기차단 때문에 척추의 디스크가 녹아내릴 정도의 전신화상에 한쪽 팔은 절단하고 구축이 생겨 모든 관절이 온전히 접히지 않는 환자, 프레스 기계에 전신이 들어가 유골도 안 남은 경우, 사업 실패한 가장이 휴가 없이 야근만 하고 살다가 저녁으로 먹은 삼겹살에서 포도상구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인해 양쪽 상지와 양쪽 하지를 절단한 경우 등등. 손해사정사는 그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손해액을 산정하고 그에 합당한 보험금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고 입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해서 돈도 번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디스크가 녹아내린 환자는 80% 장해시 1억원을 지급해야 하는 고도후유장해에서 5%가 모자라서 못받을 위기였다. 의사가 화상으로 디스크가 손상된 경우는 처음이라는 이유로 진단을 내려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상상해보라. 열기에 등근육이 타다 못해 척추 안에 있는 디스크를 녹일 정도의 고통을. 그런데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기를 거부했다. 보험사는 주치의가 거부하니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의사에게 장해진단이 어려우면 디스크가 녹아내린 원인이 고압전기 사고라는 소견만이라도 써달라고 사정해서 보험사에 제출하니 이번에는 20% 삭감하자고 한다. 이유는 어차피 그 소견서 인정 안 해서 소송 가면 소송 비용 20% 발생할거니 미리 깎고 받으라는 것이다. 만약, 피보험자가 산업현장 시찰 중이었던 국회의원이었다면 그렇게 했을까? 아마 보험심사 일주일 만에 전액 지급으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아쉬움으로 씁쓸하게 마무리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보상금, 또는 보험금’에서 삭감된 금액은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라도 혜택이라 불리우고 있을까? 환자는 내가 아니었으면 나머지 80% 중 한 푼도 못 받았을 거라며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대형 로펌 변호사였다면 100%를 받게 해줄 수도 있었을텐데”라는 자책이 들었다.



얼마 전 무보험차량에 의해 중증외상을 입은 배달원의 사고를 수임했다. 무보험사고를 당하면 본인 차량의 무보험상해로 처리하면 된다. 이 고객은 노모와 월세집에서 둘이 사는데 오토바이가 전재산이고 오토바이는 대물보험만 가입되어 있다. 차가 없으니 당연히 무보험상해가 안된다. 그럼 산재처리를 하면 되는데, 4대 보험료가 아까워서 산재적용 제외 신청을 했다. 온전히 책임보험 외에는 기댈 곳이 없는데 당연히 치료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아들이 일을 못하면 허리가 아파 오래 걷지도 못하는 노모는 돈이 없어 공부 잘해도 대학을 못 보낸 시집 간 딸이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기를 바라고, 맞벌이를 해서 겨우 코로나에 생계를 꾸리는 딸은 주저앉아 울래야 울 수도 없다. 처음엔 어차피, 책임보험 처리뿐이라 수임을 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정사님이 외면하면 우리는 어디 의지할 곳도 없다’면서 환자 누나가 사정을 해서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수술만 했는데 치료비는 3/5을 썼다. 진단주수는 8주나 남았는데. 책임보험뿐이라고 하니 병원에서들 받아주지 않아서 겨우 받아준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수술비의 반도 넘는 병원비가 나왔다. 한도가 없으니 건강보험으로 돌려달라고 병원에 부탁했더니 그럼 돈이 안된다면서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나갈 테니 건강보험심사만 올려달라고 사정해서 올렸더니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가해자랑 합의하는 순간부터는 모든 구상을 환자에게 하겠다는 것을 사인해야 건강보험 적용을 해주겠다고 했다. 건강보험공단에 아무리 설명해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병원도, 공단도, 보험사도 자기 입장에서의 금전만을 계산할 뿐 이 환자가 억울한 피해자라는 계산은 1도 없는 것 같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만 당연히 이보다 상세한 과정은 생략한 거니 감안하기 바란다.



이 일을 맡은 후 거의 매일 화내거나 빌거나 사정하고 환자 누나한테도 어디 어디에 항의하거나 사정해보라고 한다. 어디다 사정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게 손해사정사였나? 환자 대신, 누나는 나한테까지 연신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마음이 아파 퇴근 전 통화를 하고 나서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내가 좀 더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녀도 할 수 있는 게 사정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밖에 없는 현실이 화가 나고 속상했다.



그러다가 수임해제를 하고 싶어졌다. 내가 결정하는 것 하나 하나가 그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들에게 노동능력상실률 1%가 한 달 월세이고 고민해서 먹는다는 치킨이 몇 마리인가? 그리고, 내 안에 충돌하는 또 하나의 욕구가 있었다.



나에게 이 일은 경제활동이지 봉사활동이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벗어버리고 싶었다. 멀리서 찾아온 동생에게 하소연했더니 깊숙이 있는 나를 만나서 물어보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시 또 죄송하다고 하는 그녀에게 내가 끝까지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나도 비굴하게 사정할 시간에 돈 되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치킨에 목숨을 걸어보기로 했다. 정답 우리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킨인 것 같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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