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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Feb 23. 2021

손해사정사의 생일

태어난 날 죽음을 생각하다



셀프 미역국은 패스! 차라리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로움을 택한다.



8시도 안 된 시간에 보험사 때문에 금감원에 가서 분신을 하겠다던 고객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 일찍 축하해주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체리를 보냈다면서, 나를 만나 보험금이 풀린 후 사업도 잘되고 아파트 청약도 당첨되었다고 고맙다고 한다. 그 말이, 나에게는 진짜 선물이었다.



아들이 생신이라서 출근 안 하는 거냐고 묻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 오늘은 지방출장. 나갈 준비를 마치고 다이어리 정리를 하는데 직원이 출근 보고를 한다. 어제 야근하면서 책상 위에 정리해놓은 일거리들을 다시 한번 부탁한다.


뇌경색 건 담당자가 전화해서 소견서를 추가해달라고 하는데 어차피 진단서 써준 주치의한테 앵무새 같이 반복될 내용을 비용과 시간을 들여 요식행위를 맞춰달라는 이유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고민한다. 왜 필요하냐고 따져볼까? 조사담당자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겠지? 이번엔 협조하기로 한다.



대전으로 향한다. 가는 기차 안에서 오랜만에 보험사심사자로 근무하는 동생과 카톡을 나눈다. 요즘 재택이라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코로나를 이유로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 못 본 지인들이 많다. 마치 졸업하고 친구들이 동네를 떠나고 나만 남은 것 같다.



15년지기 남사친이 ‘대한민국 최고 손해사정사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친구는 15년 내내 내가 뭘 하든 최고라고 말해준다. 일생에 한 명쯤은 나한테 충고 말고 무조건 최고라고 말해주는 건 정말 필요한 행복이다. 그 친구의 엄지는 내가 힘들 때 일어나게 한다.



대전에 도착해서 오늘 오후에 만날 사망 건의 소개자를 만나 먼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동행이 있다. 백내장 수술 후 의료과실로 망막박리가 와서 복시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전에도 의료과실로 시력상실을 한 사안을 처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분은 안과와 전혀 관계 없는 허리를 치료받다가 과잉출혈로 인한 허혈성 쇼크가 주원인이었다.



오늘 대전방문의 주목적인 만남을 하러 이동을 하며 소개자도 나도 애써 이런저런 말을 나누지만 편하지가 않다. 자살한 피보험자의 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피보험자의 자녀를 만나는 것과 피보험자의 부모를 만나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양쪽 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잘 처리하고 싶은 것은 다르지 않겠지만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이미 사고는 일어났고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처리해야 되는 과정들을 자녀들은 담담히 받아들이는데 부모는 모든 것에 감정을 더하고 자책을 더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는 것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출발인데, 부모가 자녀의 사망보험금을 위해 수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죄스럽다는 감정으로 시작한다.



사망 당시의 기록이나 목격자, 현장이나 정황 등이 매우 중요한데 자녀가 피보험자인 경우 위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 시기를 놓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전화가 온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자녀의 일을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손해사정사들끼리 개호환자(긴 간병기간이 필요한 환자)가 부모님이면 종결이 무난하고 자녀인 경우에는 대부분 종결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부모가 환자인 자녀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도 부모이고 자녀라서 그 두 입장이 모두 이해가 간다. 특히 부모의 입장에 서면 숨이 막혀온다. 하지만 손해사정사는 의뢰인의 고통에 공감할수록 내 감정에 둔감해져야 일을 잘할 수 있다. 손해사정사로서는 부모님 쪽을 만날 때 긴장감이 훨씬 더하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다 조심스럽다.



형사 건도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어서 서울에서 변호사님도 내려오셨다. 자녀 보험금 상담 때문에 서울까지 오실 리 만무하니 우리가 내려가자고 설득해서 모셔왔는데 헛걸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성공확률을 자꾸 물으시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장해진단금 아닌 사안에 확신을 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안은 순전히 해 볼 만한 일이지, 될만한 일은 아니다. 시원하게 “저만 믿으세요”라고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안은 거의 없다. 내 머리 속에 논리와 근거가 있으면 나는 선례가 없어도 GO!를 부른다. 안 그러면 포기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기차역에서 생일이라고 변호사님이 빵을 잔뜩 사주셨다. 서울에 도착하면 7시. 기차 안에서 쌓인 부재중 통화를 한다. 블로그를 보고 전화 주신 심근경색 문의, 교통사고 환자, 어제 퇴원한 뇌출혈 환자에 직원의 업무 관련 메시지가 한 가득이다. 지정석이 있는데 거의 간이의자에서 통화하면서 이동한다. 그래도 오늘은 출장이라 야근을 안 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야 겨우 하루종일 감사한 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생일 축하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본다.



나는 오늘 태어났는데 죽은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오늘 안에 스며있는 사건 사고들을 돌아본다. 뇌경색, 교통사고, 의료사고, 심근경색, 손가락절단. 아마 손해사정사로 살면서 들은 적 없고 믿고 싶지 않은 사건사고를 수없이 보게 되겠지. 손해사정사인 나는 이렇게 매일 사람들이 살면서 힘든 날들로 기억할 그 날들의 일부를 함께 살아낸다. 다행이야. 수현아 네가 태어나서. 스스로 손을 쓰다듬어본다.




이수현 손해사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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