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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y 24. 2021

코로나 자가격리 '생존보고'①


아침 8시였다. 남편이 전화를 걸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무증상 확진이래.” 나는 출근하기 위해 입었던 원피스를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욕실의 공사 마무리를 하러 오기로 되어있던 인테리어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사정을 설명하고 오늘 설치하기로 되어 있던 인덕션도 취소했다. 학원에 있는 아들을 일단 집으로 불렀다. 직원들에게는 출근하지 말고 보건소로 검사를 받고 집에서 쉬라고 했다.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소, 구청 그리고 남편의 직장에서 전화가 쉼 없이 걸려왔고 남편은 했던 대답을 반복해서 계속해야 했다. 우리는 당황한 심정을 서로 토로해볼 여유도 없었다. 한 기관에서는 카드 사용내역을 파악하도록 카드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고, 다른 기관에서는 카드 사용내역을 적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각자들 동선에 대한 정보를 따로 요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정보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한테도 계속 전화가 왔다. 밀접 접촉자이니 빨리 가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자 진정시키고 일단 밥부터 먹였다. 아이는 자기 때문에 학원이 휴원을 하거나 피해가 가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남편은 빈속에 인테리어 공사 중이라 엉망진창인 집에서 나와 아들이 남아 생활해야 한다면서 무거운 짐들을 베란다로 옮겨주었다. 오늘 설치하기로 한 연수기, 수전, 정수기, 타일 마무리 작업을 위해 어제 업체에서 갖다 놓은 타일박스와 시멘트 3포대 등등. 남편은 오후에 격리시설로 가야 한다고 했다. 

TV에서만 보던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보건소인지 구청인지 구분도 안 되는 사람들이 계속 전화를 해서 재촉을 한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픽업을 와서 데리고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없고 얼른 가라고만 한다. 불안해하는 아들을 데리고 구청 공무원인지 보건소 공무원인지가 알려준대로 확진자 가족이라고 했더니 확진자 가족 많으니까 똑같이 줄서서 기다리라고 짜증을 낸다. 이해가 안 간다. 그렇게 전화해서 재촉할 정도로 내가 위험체이면 당연히 따로 줄 세워서 당장 나부터 검사해야 하는 거 같은데 나를 마치 특혜를 바라는 사람 대하듯 한다.

검사를 받고 나오니 다행히 보건소 정문 10미터 반경 안에 정육점과 야채가게가 있어서 돼지고기 5근, 소고기 1근, 양파, 파, 토마토, 양배추를 샀다. 아들은 격리 기간 내내 고기 안 먹어도 되니까 제발 그냥 가자고 난리가 났다. 들은 척도 안했다.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 14일 외롭고 힘든 거 잘 버틸 수 있다. 나는 남편이 없는 집에서 너를 잘 먹이고 건사하고 버텨야 한다. 아들의 징징거림 앞에 사명감 같은 게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짐을 챙기고 있다. 세면도구, 속옷 등등. 온 집안이 공사 중이라 먼지투성이인데 부산하게 움직이는 남편이 떨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남편을 달래서 밥을 조금 먹였다. 남편은 나랑 아들한테 연신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남편은 직장이 동선을 제한해서 근속 30주년 행사에 회식도 못했고 축하해주러 온다는 친구들도 마다했었다. 최근 일주일은 집이 공사를 해서 집과 공사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가는 외에는 외출도 못했다. 다만, 욕실 물 사용이 안 되는 기간 동안 목욕탕을 다녀야 했다. 직장의 특성상 휴가복귀를 위해 코로나19 검사결과가 필요해서 받은 검사에서 ‘강제 휴가(?)’를 추가로 받게 된 이 상황이 도저히 남편은 물론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후 3시에 TV에서 보던 하얀 실험복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뒤집어 쓴 사람 2명이 와서 남편을 하얀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남편은 가는 순간까지 공사 중인 집에서 나와 아들이 위험하지 않게 안전장치를 하고 주의사항을 확인했다.

공부하라며 아들을 방에 들여보내 놓고 남편이 급하게 여기저기 붙여놓은 테이프들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거실에는 어제 설치한 씽크대에 들어가야 할 모든 주방 살림들과 베란다 살림들이 발디딜 틈 없이 채워져 있고 그 위로 어제 다 못 치운 씽크대 톱밥 먼지들이 뽀얗다. 인덕션이 없어서 휴대용 버너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욕실은 아직 수전 설치 전이고 정수기 설치를 못해서 식수가 없다. 온 집안을 뒤져보니 전기주전자에 남아 있는 물이 전부다. 배달을 시켜도 내일 새벽에나 오니 이걸로 둘이 새벽까지 버텨야 한다. 정리해서 버려야 할 살림들이 많은데 종량제봉투는 20리터 2장뿐이다. 보건소에서 준 100리터짜리 의료폐기물 봉투에 내가 입던 옷이랑 쓰던 그릇을 넣어서 버리는 게 맞을까? 그보다 우선 내 옷과 그릇이 의료용폐기물인가?

전화랑 카톡은 계속 울린다. 
“사정사님, 다음주 청구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정사님, 오늘까지 피보험자 확인서 팩스 부탁드립니다.” 
 “사정사님 교통사고가 났는데 상담 부탁드립니다.”

우리 집 공사하는 게 궁금해서 지나가다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이웃에게 연락해 부탁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해서 참기로 했다. 

코로나19. 그게 이런 거였구나. 그게 마스크 쓰는 이유인지 알았는데, 그거보다 더 대단한 거였구나. 이렇게 갑자기 일시에 모든 걸 멈춰버릴 수 있는 거였구나. 자가격리의 첫날을 속상함인지 목마름인지 타는 심정으로 보내고 새벽에 배송되자마자 아들을 깨워 물을 먹였다. 이 세상에 아들과 나 단 둘만 남은 것 같았고 오롯이 나는 손해사정사도 뭣도 아닌 어미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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