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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May 04. 2021

보험아 고맙다. 내 친구랑 같이 있어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하고 낯선 하교 길 정류장에서 쫑을 처음 만났다. 그 아이는 이름에 ‘종’자가 들어가고 쫑알쫑알 말도 잘하고 걷는 것도 쫑쫑거린다고 아이들은 그 애를 그렇게 불렀다. 옆 반이었던 그 애는 학급일지 담당이었는데 매우 평범한 필체였던 그 애는 선생님이 “쫑!”하고 부르는 재미로 학급일지를 맡긴 것 같다고 말하곤 했었다. 쫑의 말대로 쫑은 그렇게라도 부르고 싶은 같이 있는 게 유쾌하고 즐거운 밝은 사람이었다.


일주일 전에 쫑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현아, 원적외선 이불 아니? 그게 덮으면 몸이 좋아진다고 해서 샀는데 사기당했다고 남편이 난리지 뭐야. 내 병에 좋다고 해서 샀는데 그렇지 뭐. 뭐라도 하고 싶은데.”

그렇다. 쫑쫑거리며 학급일지를 안고 교무실로 뛰어다니던 쫑은 지금 아프다. 집 밖에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게 10년도 더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집 밖에 나와본 건 1년도 넘었다. 우리가 대학 2학년 때 쫑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쫑에게 어머니의 소뇌위축증이 유전되었다는 걸 안 건 31살 때였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쫑의 어머니를 봐왔다. 처음 뵈었을 때 벽에 기대어 서 계셨었고 나중에는 앉아서 방문을 열고 인사를 받으셨고 그 다음에는 방에 누워 계셨고 그 이후에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뵌 적은 없었다. 그 병은 치료비가 들어가는 병이 아니다. 치료방법이 없어서. 하지만 온 가족이 온전히 스러져가는 모습을 서서히 10년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병원에 가기 전에 보험부터 어떻게 해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간병보험상품이 다양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당시 내가 다니던 보험사에서 장기간병보험이 출시되어 설계를 하고 손해보험사에 다니는 지인을 섭외해서(당시에는 교차판매 제도가 없었다) 실손보험을 가입하도록 하였다.

불길한 예감대로 쫑은 소뇌위축증을 진단받았다. 진단받고 한 2년 정도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 남편과 함께 열심히 다녔었지만 치료방법을 찾던 부부는 지쳤다. 몸 상태도 서서히 일상생활에 제한이 생겨서 살림과 생계, 육아가 모두 남편의 몫이 되자 현실적으로 3~4시간 거리의 병원들을 다니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나는 쫑이 실손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랬는데 그러지 못했다. 치료방법이 없기 때문에 실손보험을 청구할 일이 없다. 먹어야 하는 약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도 없다. 병원에서야 검사를 받으라고 하지만 검사결과에 따라 치료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불편한 환자를 데리고 굳이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 부부의 입장이다.

의학적으로 쫑은 투병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쫑은 투병하고 싶어한다. 뭐라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번엔 원적외선 이불을 샀다. 집에만 있는 쫑이 어떻게 그걸 알고 샀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투병의 방법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얼만데 애 아빠가 화를 내는 거야?”

 “응 그냥, 내 돈으로 샀어.”

내 돈. 쫑은 5년 전에 1억원의 간병보험금을 지급받았다. 그리고 매년 추가로 지급되는 보험금도 있다. 손이 많이 떨리지만 쫑은 아직 폰뱅킹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쫑은 본인 돈으로 본인의 방법으로 투병(원적원선 이불구매 등)도 하고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것도 결제를 해준다. 쫑의 남편은 화가 나겠지만 나는 쫑이 가끔 전화해서 투병 결과의 패배소식을 전해올 때면 그거라도 할 수 있는 돈이 있어서 다행이고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쫑의 마음에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 내가 드러내면 쫑도 울까봐 담담하게 전화를 끊는다. 쫑한테 전화를 받고 나면 나는 화장품을 보낸다. 엄마도 일찍 돌아가시고 여자 형제도 없는 쫑이 화장품 사다 달라고 부탁하다가 또 이상한 투병방법을 가지고 찾아올 사람한테 엮이게 될까봐 거의 10년째 해오고 있는 루틴이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보다 쫑한테 더 쓸모 있는 건 이상한 투병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통장잔고라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그 통장잔고가 아이들이 쫑을 아픈 엄마가 아니라 필요한 걸 해줄 수 있는 엄마로 부르게 하는 힘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보험금한테 완패했다. 내 우정을 보험금이 이겼다. 

5년 전 검사를 위해 입원한 병실에서 사지가 쉴새 없이 떨리는 쫑은 나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해줬다. 내가 더 많은 사람한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쫑! 쫑! 딴 건 모르겠고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보험아 고맙다. 내 친구랑 같이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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