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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ji May 21. 2020

내 책 제목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원하는 책 vs 팔리는 책  

책을 쓴다면 당연히 제목은 <77 사이즈 아줌마의 앵커 도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주요 정체성, '77 사이즈+아줌마'가 다 들어가 있고, 앵커를 처음 맡아 겪게 된 일에 대한 이야기라는,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그 내용도 모두 제목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편집자님의 판단은 '안돼!! 절대!! never!! no!!'였다.

 

또다시 그 '가짜 77 사이즈' 이슈가 떠올랐다.

"아니, 님은 사이즈를 가지고 어필해서 책을 내기에는 너무 몸이... 애매하십니다. 얼핏 보기엔 77로 잘 안 보이니 또 가짜 진짜 이슈가 떠오르며 진짜 77 언니들의 불필요한 분노만 살 수 있어요!"

"아니! 제가 무슨 나이를 어리게 속이는 것도 아니고! 몸무게를 줄이는 것도 아니고!! 코디님도 인증한 진짜 77인데! 77을 77이라고도 못하나요, 아오!"

이유는 또 있었다. 출판업계 역사상 사이즈를 내세우는 책은 처음에 호기심은 끌지 모르겠으나 높은 판매량으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어쩐다.. 고민하다 내가 다음으로 생각해낸 제목은 <어쩌다 앵커>였다. '어쩌다 앵커가 되어서 겪은 일을 썼으니 무난하고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희망이었을 뿐! 그냥 무난하기만 해서는 서점에서 순식 하게 사라지고 그런 책이 나왔다는 건 본인과 주변 몇몇과 슬픈 편집자만 기억하게 될 터이니, 출판사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는 나는 뒤로 젖혀두고, 편집자님이 출판사의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한 제목은 무려 '내 자리는 내가 정할게요'!!!! 아니 지지리 궁상맞은 일상에 허걱 대는 얘기를 적은 건데 저 도발적이고 당당한 제목은 무엇이란 말인가, 책 껍데기와 내용의 불일치에 대해 어필해 보였으나 편집자님의 반응은 냉정했다.


"워킹맘 얘기는 팔리지 않습니다. 너무나 험난한 일상에 허덕이다 보니 워킹맘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거든요. 부동산 얘기나 교육이나 이런 아주 실용적인 얘기가 아니면요. 그러니까 주독자는 2,30대 여성인 건데.. 요즘 트렌드는 그런 도발적이고 당당한..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자세를 담을 수 있는 그런 제목이 호소력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출근길의 주문' 같은? 잘 팔리는 책은 일+사랑+취미 얘기가 있는데 님 책은 일+육아만 있고.. 취미라도 뭐 없을까요? "


하.. 나도 책을 읽을 시간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산다면 대부분은 찌든 워킹맘 얘기를 사게 되는데.. 뭔가 또 억울하고 분했다. 게다가 통통하고 활발한 아줌마 일러스트나 파스텔톤 단색이면 좋겠다 싶었던 표지에는 스튜디오 안에 있는 내 사진까지 떡하니 실리게 되었으니!!


"저.. 그냥 일러스트 하면 안 되나요? 사진 싫은데..."

"안됩니다! 지금 서점에 가보시면 다 똑같은 그런 일러스트예요. 도무지 차별화가 안됩니닷!"


이번에도 바로 제압당하고 말했고, 그렇게 완성된 표지 디자인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망했다!"였다. 출간과 동시에 쭈욱 길고 긴 놀림의 길이 시작될 것이 뻔해 보였고, 조심스럽게 그룹별로 의견을 물었다.


먼저 가장 우호적일 것으로 기대되는 가족 카톡방!

조심스레 표지 디자인을 공유하자 동생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위인전이야?"

부모님은 뭔가 좀 더 다정한 얘기를 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두 분은 표지는 보지도 않은 척, 딴청을 피우셨다.

"응... 어디 글 잘 썼나 봐야겠네~ "


하아.. 가족이 이 정도라니 큰일이다. 대학 친구들이 있는 방에 표지 사진을 올렸더니, 아주 카톡방을 개설한 이후에 대화가 이토록 활발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나를 놀리고 책 제목을 씹느라 난리가 났다.


"'아싸 나 성공했어!' 이런 느낌이네?"

"너네도 나만큼 해봐. 성공 못한 건 니 탓이야.. 뭐 이런 느낌?"

"80년대 책 같은데.. 레트로풍인데 우리가 몰라본 거야?"

"옆자리 동료한테 물어봤는데 책 안 살 것 같대 ㅋㅋㅋ "


이어지는 후배의 반응..

"악! 얼굴을 박아서 책을 내면 김은혜, 김주하 선배에 이어 우리 회사에서 3번째가 되는 거네요?! 푸하하하하"

"내 자리를 내가 정한다면, 이제 다음 인사는 선배 스스로 내는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


하아.... 너무 마음이 괴롭지만 '2,30대 여성들에게 물어봤어야지 주변 늙은이들에게 물어봐서 그렇다'는 편집자님의 말에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뭐 바꿀 방법도 없고!!! 욕한 님들! 양심적으로 책 한 권씩은 사줍시다!!!



이미 실물은 나왔고... 내일은 인터넷 서점 네 군데 모두, 월요일부터는 오프라인 서점에 풀립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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