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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옥 Feb 06. 2022

숲 속에서

                                                             


숲 속이다. 초록의 거대한 마당에 온갖 생명들이 흥겨운 향연을 벌이고 있다. 어떤 미술품이 이리도 아름다울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에 찬사를 보내며 꿈꾸듯 숲길을 걷는다.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니 사위질빵과 이름이 얄궂은 며느리 밑씻게가 수풀 속에서 함초롬히 미소 짓고 있다. 풀 섶에 핀 소담한 꽃들에 반해서 일렁이던 마음이 가시기도 전에 둥벙 만한 작은 연못과 마주한다. 맑은 얼굴을 하고 쉬고 있는 모습이 꿈결 같다. 동요에 나오는 토기가 물을 먹고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연못 중앙에 우뚝 선 수양버들이 너울거린다. 들여다보니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 위로 소금쟁이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눈을 홀린다. 옆에 올망졸망한 꽃들이 피어 있고 갈대 잎이 수런거리고 있다. 마음의 동요가 인다. 갈대 잎으로 나뭇잎 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조심스럽게 한 줄기를 꺾어 이리 접고 저리 접으니 나뭇잎배가 완성된다. 개망초 한 가지 노루꼬리 만 하게 꺾어 돛에 꽂으니 흰 돛의 초록배가 된다. 언제 만났던 나뭇잎 배 이던가? 고사리 손이 아닌 손마디가 굵어지고 주름진 손으로 좋다고 손뼉 치며 왜 콧잔등이 시큰해질까 왜 센티해지는 걸까?




나뭇잎 배 망가질세라 작은 물결이 일렁이는 연못에 살짜그니 띄운다. 처음에 기우뚱하다가 물의 흐름에 따라 뱅글뱅글 춤을 춘다. 물결 따라 살랑살랑 떠다니나 싶더니 수풀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고 있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 오리 한 마리가 먹이를 찾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자맥질을 하고 있다. 꼬리를 하늘로 치켜세우고 물속을 헤집자 물이 출렁이기 시작한다. 이때 수풀에 걸렸던 배가 한들한들 여유를 부리며 노닐기 시작한다. 잘 떠 다녀야 되는데 작은 꽃 돛이 물에 잠길까 봐 왜 이리 안쓰럽고 조바심이 나는지 모르겠다. 언덕을 만나면 손잡아 주고 싶고 낭떠러지를 만나면 보듬어 주고 싶은 자식들의 모습이 배의 행로 속에 투영된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서 있다.     




숲 속에서 풀벌레 소리 간간이 들려오고 연못에 늘어진 수양버들이 바람에 한들거린다. 우두커니 서서 나뭇잎 배를 바라보고 있으니 산책 나온 여인도 나뭇잎 배에 시선을 맞추고 출렁이는 배를 바라보고 서 있다. 배를 향한 애잔함이 통했을까? 처음 만났는데 마치 오래된 인연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고 있는 나를 본다. “잠시 보고 있으니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자식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요” 대답이 없다. 때론 아팠고 때론 화려했을지도 모를 자식을 잠시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뭇잎 배와 이별해야 할 시간, 그런데 이 야릇한 감정을 어찌해야 하나 아들 군에 있을 때 첫 면회 끝나고 돌아서던 기분과 다를 바 없다. 부대에 들여보내고 언덕을 내려오다 뒤를 돌아보다 아들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들도 엄마를 못 잊어 돌아보던 찰나였을 것이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그 안타까운 심정이 지금 오롯이 느껴진다. 순간 수없이 많이 불러왔던 동요가 떠오른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난다.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 살 떠다니겠지” 지금껏 그냥 생각 없이 불렀다. 그런데 내 손으로 만든 배를 두고 연못을 떠나오려니 동요 속 가사가 절실하게 와닿는다. 그랬었구나 동요 속의 아이도 이런 내 맘과 같았나 보다. 속으로 따라 부르다가 기억 하나를 붙잡는다.     

딸이 결혼하여 첫 명절에 딸애 부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느라 하루 내내 종종걸음을 쳤다. 어설픈 장모가 사위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며 어머니의 노고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명절 때면 거르지 않고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했다. 홍어회, 식혜, 새콤하고 매콤한 전라도식 콩나물 잡채와 넷째 사위가 좋아하는 쑥떡도 손수 만드셨다. 엄마니까 그냥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어머니께 고맙다고 애쓰셨다고 말씀 한 번 못 드렸던 딸은 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직접 겪어 봐야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배를 띄우고 나서 새삼 알게 된다. 배가 잘 떠다니길 바라며 연못을 떠나 숲길을 조금 걷다가 뒤돌아보니 빨간 모자의 여인은 쪼그리고 앉아 떠다니고 있는 배를 사진 찍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의 여인도 나뭇잎배가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아서 쉬이 떠나지 못하고 있었으리라.      





숲 속에 식물들도 모성이 있다고 한다. 연못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밤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익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접근할 수 없도록 서슬 퍼런 가시들을 고슴도치처럼 달고 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또 다른 가정을 이루게 하듯 밤이 여물면 그때서야 입을 벌려 씨앗을 지켜낸다지. 식물도 부모처럼 자식의 울타리가 되어주려고 애쓴다고 생각하니 숲 속에 생명체들이 경이롭기만 하다.     

멀리서 보니 커다란 나무가 누워있는데 심상치가 않다. 가까이 가보니 몸져누워있는 사람을 호위하는 듯 두 그루의 나무가 양쪽에 버티고 서 있다. 뿌리는 뽑히지 않고 중간 허리가 부러져 누워있다. 하지만 내치지 않고 보살피니 누운 채로 줄기가 나와서 자라고 있다. 인생의 겨울에서 자식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을 지탱해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다. 나무가 누인 그 공간이 어머니의 방인 듯 착각하며 가까이 다가가 나무를 어루만져 본다. 어머니의 피가 도는 듯 따뜻한 어머니의 손 같다. 새롭게 자라나고 있는 생명들아 부디 잘 자라 숲을 이루어라.     




새들의 푸드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해거름이다. 숲 속을 다리가 아닌 가슴으로 걷는다. 넓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숲 속에서 인간애를 느낀다. 어머니 품속 같은 숲에 오늘도 안긴다. 긴 휴식이다. 나뭇잎배도 잘 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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