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피어나는 성장기
2020년 11월, 전 세계가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복병과 사투를 벌이던 시기. 나는 운명처럼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학 석사까지 마친 나는 평생 '경상남도'라는 지역적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은 채, 지방의 평범한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마무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의 톱니바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돌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권유로 익힌 한자, 대학원 시절 취미로 시작한 일본어가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연히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나루토'가 나를 낯선 타국으로 이끄는 복선이 되었던 셈이다.
나의 정착지는 카나가와현.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와 같은 수도권의 요충지다. 한국에서의 1년 남짓한 공부와 단 한 번의 여행 경험만으로 시작한 일본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무모할 정도의 용기는 20대의 열정이기에 가능했던 도전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커리어의 적응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리더십과 적극성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내가, 문화와 언어의 장벽 앞에 서자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회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조차 벅찼고, 간단한 회의록 작성에 꼬박 하루를 쏟아붓던 '이등병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묻는다. 왜 하필 일본의 N사였느냐고. 사실 내가 수많은 선택지 중 N사를 택해 일본 자동차 업계로 뛰어든 데에는 나만의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이 흥미진진한 취업 비화는 조만간 별도의 글에서 상세히 다루어 보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동차 설계직군을 담당했기에 전공인 기계공학 용어들이 공용언어로 자그마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5년이 흐른 지금, 소통에는 자신감이 붙었지만 문화적 차이나 커리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5년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변화를 요약하자면 세 가지다.
확장된 세계관: 한국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글로벌 시야를 갖게 되었다.
정체성의 변곡점: 단순한 엔지니어를 넘어 비즈니스와 경영을 아우르는 커리어 전환을 꿈꾸게 되었다.
새로운 뿌리: 일본인 배우자를 만나 이곳에 온전한 삶의 터전을 꾸리게 되었다.
이 세 가지 변화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피땀 어린 노력과 눈물 섞인 에피소드들의 집합체다. N사에서 겪은 5년간의 밀도 높은 경험들—엔지니어로서 성장했던 순간, 조직 내부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고독,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커리어 전환기를 맞이한 지금— 역시 앞으로 하나씩 풀어낼 예정이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여정이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챌린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나의 성장은 이제 막 궤도에 올랐을 뿐이다. 이 공간을 통해 나의 글로벌 성장기를 공유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분들에게 작지만 단단한 위로와 통찰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