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왜? 어떻게? 일본이었는가?

글로벌 도전기, 그 첫 단추

by 요코하마 책사

일본 제조업과의 첫 인연


많은 분들이 질문한다. 왜 굳이 타국, 그것도 일본의 자동차회사였나고. 사실 나 역시 평벙한 취준생들과 취업에 대한 생각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게 한국에 있는 제조업에 종사하며 한국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때 학교 사업단에서 진행한 '글로벌 챌린저'라는 프로그램이 내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어두었고, 돌이켜보면 일본 취업이라는 운명의 굴래는 그때부터 굴러가고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글로벌 챈린저' 프로그램이란, 해외의 제조업 현장을 견학하며 학생들의 견문을 넓혀주는 학교 사업단의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나는 큐슈의 유명 제조업들을 견학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특히 내 마음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기업은 일본 굴지의 자동차회사 T사와 부품기업 D사의 라인 견학 경험이었다. 본인은 이전에도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제조업 현장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허나 일본 제조업의 현장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작은 쓰레기 하나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설비, 자신이 맡은 공정에 열의를 쏟아붓는 작업자들의 눈빛, 그리고 수많은 차량과 부품이 일사분란하게 만들어지는 광경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날의 경험이 막연하게나마 '기회가 된다면 일본 자동차 업계에 몸담고 싶다'라는 생각을 심어두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T사 미야타공장의 갤러리


일본어? 작은 취미이자 활력소!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일본어는 어떻게 공부했어?'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이지만, 그 시작은 고단했던 대학원 생활을 잊게 해줄 '취미'였다. 당시 실험실에서의 고뇌, 압박감, 스트레스 등을 해소할 창구가 절실했고, 막연히 등록했던 주말 3시간 일본어 회화 수업이 내 삶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었다. 지금도 생생한 점은 첫 수업을 듣자마자 '아, 이거다!' 라고 느꼈던 그 순간이다. 어릴 적부터 즐겨본 애니메이션 덕분에 리스닝이 수월했고, 중학교 때 학습지로 익힌 한자와 군대에서 취득한 한자 2급 덕분에 리딩 또한 큰 도움을 받았다. 역시 모든 경험은 하나의 점이 되어 언젠가 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활력소로 시작한 일본어는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 기왕 시작한 거 자격증까지 따보자는 마음으로 'JLPT N2'에 도전하게 되었다. 대학원 생활을 병행하며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출퇴근 시간과 운동 시간까지 쪼개어 활용한 9개월간의 분투 끝에 합격 통지서를 손에 넣었다. 이 결과는 단순한 자격증 취득을 넘어, 지친 대학원 생활 속 오아시스 같은 구원이 되었다. 그때는 이 작은 결실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톱니바퀴였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학원 생활을 극복한 방법과 구체적인 일본어 공부 방법은 추후 다시 공유하고자 한다.)

이세하라시에 위치한 기숙사 풍경


일본 취업기, N사행 티켓팅 발권


앞서 언급했듯이 본인은 해외 취업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학원 시절 협력 관계였던 국내 자동차사 H사나 전자사 L사 등 국내 기업 취업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상황이었다. 일본어 공부와 자격증 취득 역시 해외 취업을 위한 도구가 아닌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일본 취업 길에 오르게 되었을까? 바로 당시 일본 제조업계에 불어온 '한국 인재'에 대한 니즈 덕분이었다. 우연히 참석한 일본 취업 박람회에서 일본의 굴지 제조 기업들은 유창한 일본어 실력보다 인재의 잠재력(Potential)을 우선시하며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한국 취업 시장과는 사뭇 다른 양국의 온도 차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 '파소나코리아'라는 에이전트가 학교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N사를 소개받았다. 쟁쟁한 제조 기업들이 많았지만, 내가 N사를 강력히 희망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완성차 기업의 일원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공동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을 즐겼다. 그래서 다양한 부품을 하나의 완제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부서 및 협력사와 긴밀히 협업하는 업무를 꿈꿨다. 두 번째는 N사가 가진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 일본의 보수적인 문화와 외국인, 특히 한국인으로서 정착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조언을 많이 듣던 터였다. 그래서 전통적인 일본 조직문화보다는 외국인이라도 마음껏 '나다움'을 펼칠 수 있는 유연한 조직문화에 몸담고 싶었고, 그 갈망이 N사라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이 시점만 해도 나는 다양성이란 단순히 다국적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는 '국제성(Internationality)'을 의미한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에서 기인한 '균질성(Homogeneity)'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성장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바다에서 고래가 되고 싶었던 우물 안 개구리는 수많은 시련과 다양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거치며 성장해 나갔다. 5년간의 일본 생활을 통해 깨달은 다양성에 대한 수많은 메시지는 앞으로 여러분께 조금씩 풀어나가고자 한다.

입사 첫날 아침, 기숙사에서 바라본 나의 '북극성'


"앞을 보면서는 점을 연결할 수 없고 뒤를 돌아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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