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에서 꽃 핀 다양성(Diversity)

서로에게 따뜻한 존중이 필요한 시대

by 요코하마 책사

우물 밖, 바다로 헤엄친 개구리의 여정


남고, 군대, 공대를 거쳐온 나는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에서 기인한 '균질성(Homogeneity)' 그 자체였다. 평소 남성 위주의 사회에 속해 살며 누구보다 그들과 잘 섞이고 리드해왔던 터라, 한국에서 소수자(Minority)로서의 삶은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한국 남성으로서의 고충이나 사회적 이슈인 남녀 갈등을 논하고자 하는 글은 전혀 아니다. 오늘은 28년간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5년간 겪은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성(Diversity)'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의 행동과 마인드 변화를 전달해보고자 한다.

대학 시절 '해피무브 글로벌 청년봉사단'을 통해 인도 첸나이로 약 2주간 해외 봉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곳에서 느낀 '이문화'는 평생 나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선한 바람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신선한 바람은 우물 안 개구리를 바다로 향하게 하는 순풍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나에게 '다양성(Diversity)'의 정의는 곧 '국제성(Internationality)'이었다. 단순히 외국인이 많은 환경,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정의는, 일본 N사에 입사하고부터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해피무브 글로벌청년봉사단활동, '현대제철 인도 첸나이 센터'


한국인 종업원, 나도 '소수자(Minonirty)'?


다양한 인종과 언어로 둘러싸인 첫 회사 생활은 내가 생각해왔던 '다양성(Diversity) = 국제성(Internationality)'이라는 공식과는 괴리가 있었다. 자동차 업계의 특성상 현장(R&D, 생산, 품질 등)에는 언제나 남성이 대다수였고, 국적 또한 90% 이상이 일본인이었다. 즉, 일본인 남성이 '다수(Majority)'인 환경이었다. 물론 업무 특성상 해외 거점 담당자들과의 미팅이나 사내 다국적 사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이문화와 영어를 접할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 남성이 주축인 이곳은 그들만의 확고한 기준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나 또한 예외 없이 그들의 기준(일본어, 일본 문화)에 부합해야만 했다. 이를 일본 특유의 '동질성(Conformity)'이라 표현하겠다. 회사가 DEI를 추진하며 외국인을 채용하더라도, 결국 일본인과 같은 방식의 생각과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일본의 '와(和, 조화)' 문화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신입 사원이나 젊은 사원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해도 기존의 관례나 관습을 벗어나면 안 되었고, 조직의 목소리에 일치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문화가 DEI를 추진하는 회사 내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이는 수치로만 밀어붙이는 DEI가 진정한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물론 모든 일본인 남성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쇼와(昭和) 시대에 태어난 40~50대 일본 남성들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가질 기회가 부족했고, 일본의 젊은 세대나 외국인 사원들과의 간극을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구성원이 본인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내뱉지 못하는 환경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며, 그것이 현재 일본 산업 전반에 깔린 위기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내용은 추후 다시 깊이 있게 다루어보고자 한다.

일본 N사의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종업원 (AI제작)


좁은 가치관과 커리어의 빅터닝 포인트


이런 말이 있다. "다양성(Diversity)은 파티에 초대받는 것이고, 포용성(Inclusion)은 함께 춤을 추자고 권유받는 것이다." 이 말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준 귀중한 인생의 경험이 나에게 찾아왔다. 사내의 표면적인 다양성에 갈증을 느껴갈 때쯤, 반년간 외부 벤처기업으로 파견을 가는 사내 교육 제도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벤처기업 리스트 중 '전 세계 DEI를 발신하는 미디어 회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으로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다행히 상사와의 면담 끝에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24년 10월부터 시작된 나의 파견은 업무뿐만 아니라 가치관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공학 석사를 졸업하고 자동차 설계만 해오던 나에게 이벤트 기획, 홍보, 영업이라는 비즈니스 경험은 커리어에서도 새로운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내가 정의하던 '다양성'은 비로 '국제성(Internationality)'에서 시작해 '인간성(Humanity)'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엔지니어에서 비즈니스로 전환되는 커리어 여정은 추후 다시 공유하고자 한다.)


파견을 간 벤처기업 L사는 일본인 사장님을 필두로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국적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화는 물론 사용하는 영어의 발음과 뉘앙스조차 천차만별이었다. 이 다국적 멤버들이 발신하는 세계 각국의 DEI 이슈는 L사만의 독보적인 강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주로 일본 내 소수자 집단인 여성, 장애인, LGBTQ+ 등을 대상으로 영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DEI 관련 이벤트와 세미나에 참여했다. 지금 되돌아봐도 반년간의 경험은 나의 좁았던 가치관과 커리어에 긍정적인 파동을 일으켜 주었다.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회사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주변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N사의 종업원으로 참여한 Tokyo Pride 2025


진정한 '다양성(Diversity)'은 '포용성(Inclusion)'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첫 영업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당사자 의식'을 갖지 못한 채 세일즈에 임했기 때문이다. 평생 그들의 삶을 깊이 고민해 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단지 실적을 위해 열심인 다수자(Majority) 남성의 이야기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반년간의 파견 기간 동안 단순히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하기보다, '왜 나의 세일즈가 그들에게 통하지 않을까?'를 먼저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기 시작했다. 일본 화장품 기업 'S'사의 세미나에 참석해 100명의 여성 사이에서 유일한 남성으로 화장품을 논해 보기도 하고, 장애 관련 DEI 세미나에서 3시간 동안 휠체어를 타 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시선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체험은 영업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인드에도 아래와 같은 큰 변화를 불러왔다.


1.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도전

2. 외국인 사원으로서 직접 체감한 '소수자성(Minority)'

3. 무심코 지나쳤던 소중한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존재하는 '소수자적 면모'

4. 이러한 일련의 깨달음을 통해 얻은 새로운 마인드셋


이러한 변화를 주변에 전파하기 위해 파견 복귀 후에는 사내 ERG(종업원 리소스 그룹, Employee Resource Group)에 가입하여 현재까지도 소수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때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던 '소수자성'은 이제 강점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현재는 사내외에서 많은 강연과 스피치 기회를 얻고 있다. 타국에서 한국의 다양성 결여로 인한 여러 사회 이슈를 접할 때면 안타까움을 느낀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나답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야말로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든다는 이 값진 깨달음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모국인 한국에도 꼭 전달하고 싶다.

'소수자(Minority) 체험'을 통한 당사자 의식의 깨달음 (AI제작)


관련게시글 : https://blog-en.learningcycle.co/2025/04/08/my-journey-to-embracing-opinion-diversity/


우리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때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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