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출신의 일본어 공부 노하우
나는 이과 출신에 제2외국어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 영어조차 서툴렀던 내가, 삶에 일본어가 들어와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일본어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떻게 단기간에 시험에 합격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계속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학창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을 꽤 좋아했다. 당시 '판도라TV'였던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채널이 있었다. 유명한 작품뿐만 아니라 마이너한 애니메이션까지 자막으로 즐겼는데, 돌이켜보니 이때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귀를 트이게 한 리스닝(?)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중학생 때는 부모님의 권유로 약 2년간 매주 한자 학습지를 풀었다. 요령 피울 줄 몰랐던 나는 시키는 대로 곧잘 따랐고, 한자 5급 자격증까지 따고 나서야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학습지를 그만두었다. 제2외국어와 아무런 연이 없을 줄 알았던 내 인생에, 학창 시절의 애니메이션과 한자 공부는 훗날 '일본어'라는 묘목의 훌륭한 씨앗이 되어주었다.
결정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힘든 대학원 생활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취미였다. 지칠 대로 지친 실험실 생활 속에서, 연구 주제 말고 내 머리를 집중시킬 무언가를 갈망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우연히 '시사일본어' 학원 간판을 보게 되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간 나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내 주말 기초 회화반을 등록했다. 첫 수업에서 나는 운명적으로 일본어가 평생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는 직감을 받았다. 기초 회화반이라 모두가 어려워할 때, 나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인지 언어가 귀에 익숙했고 입으로 뱉어내는 것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그때 그 학원 간판에 이끌려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6개월 코스의 회화 수업이 끝나갈 5개월 차쯤,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JLPT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일본 취업이나 스펙으로 활용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지 더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JLPT N2 3개월 단기 준비반을 등록했다. 확실히 기초 회화에서 N2로 넘어오니 난이도가 확 올라와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사용되는 한자, 문법, 내용 등이 기초 회화 레벨과는 확연히 달랐고, 3개월 만에 합격하기에는 학원 수업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도 꾸준함과 '엉덩이'로 하는 자격증 공부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나름의 공부 전략을 세웠다.
먼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어휘는 '회독 JLPT'라는 앱을 활용했다. N5부터 N1까지 어휘가 나뉘어 있고, 모르는 단어는 '모름', 아는 단어는 '알고 있음'으로 넘기며 외울 때까지 반복하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식이었다.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부족한 시간을 쪼개기 위해 출퇴근 버스 안 15분, 혹은 틈날 때마다 이 앱을 켰다. 낮은 레벨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지 않았던 터라 N3 단어도 함께 외우자는 생각으로 N3(1,100자)와 N2(2,100자)를 동시에 진행했다. 3개월 동안 약 3,200자를 외우는 것은 하루에 대략 18개 이상의 어휘를 암기해야 하는 강행군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지간히 대학원 생활의 도피처가 필요했나 싶다.
그렇다면 정말 들리지 않던 리스닝은 어떻게 했을까? 재미없는 교재의 리닝을 주구장창 듣고 있자니 답답함이 컸다. 그래서 기분 전환도 할 겸 주 1회씩 '한일 교류회'에 참가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일본인들과 일본어를 배우려는 한국인들이 모여 식사하며 대화하는 모임이다. 물론 시험용 표현을 정교하게 배우지는 못하지만, 일본어 스피킹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책 속에 갇혀 있던 일본어가 살아나 귀와 입으로 오고 가는 기쁨, 이것은 언어를 제대로 배워본 사람만이 아는 감동일 것이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지 9년차, 일본에 거주한 지도 5년이 지났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일본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배움이 그렇듯,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일본어다. 일본어를 모르는 분들이 보면 내 실력이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일본인의 시선에서는 그저 '일본어를 잘하는 외국인' 수준일 것이다. 2020년 12월부터 일본에 살며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JLPT N1도 취득했지만, 시험이라는 틀을 벗어난 '진짜 일본어'의 세계는 여전히 갈 길이 아득하다.
회사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비즈니스 일본어는 소통에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일본인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문화가 깊게 스며든 표현들을 마주할 때면 그 벽을 거의 매일 실감한다. 한국에서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어휘가 있듯, 일본 역시 고유의 문화가 녹아든 언어는 정말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일본어 원서와 기사를 읽으며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읽고 해석하는 속도는 일본인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나름대로 모르는 단어를 메모해가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5년 뒤, 10년 뒤 바라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묵묵히 정진하는 나 자신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와타시 간바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