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활이라는 혹한기를 극복하고 핀 꽃망울
오늘도 논문 작성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전국의 대학원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겸, 나의 대학원 생활 극복기를 남겨보려 한다. 나에게 대학원 생활이란 한마디로 '인생의 혹한기' 그 자체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고등학교 학비조차 내지 못하시던 시절, 21개월의 군 생활, 그리고 지금의 해외 생활을 통틀어 봐도 대학원 2년만큼 혹독하고 자존감이 낮았던 시기는 없었다. 물론 당시의 생활이나 지도 교수님과의 관계를 전부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그토록 힘든 상황도 결국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사실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 이유는 거창한 학문적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했으나 업계 상황이 힘들어졌고, 전공을 살려 취업이 잘되는 기계공학으로 옮겨가려는 목적이 다였다.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진학했던 것이 혹독한 생활의 단초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지도 교수님께서도 나의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간파하셨는지 모르겠다.
처음 담당하게 된 기업 프로젝트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내 굴지의 가전회사 L사와의 프로젝트였는데, 좀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의 현상을 똑같이 재현해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재현이 안 되니 원인 파악은 고사하고 해결책조차 제시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 이어졌다. 밤낮없는 고민 끝에 겨우 비슷한 조건에서 현상을 재현해낼 수 있었고, 가설을 세워 검증과 해결책을 하나하나 찾아나갔다. 결국 과제 기간을 연장하는 우여곡절 끝에야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이 고군분투의 기록은 훗날 내 석사 논문의 핵심 주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부족함과 밑바닥을 처절하게 마주했다. ‘나는 왜 이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까?’, ‘나는 연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늘 자신감 넘치던 나는 그 2년 동안 생기를 잃어갔다. 출근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무거웠고, 평소라면 대답 잘했을 질문도 교수님 앞에서는 기가 죽어 바보처럼 대답하다 혼나기 일쑤인 악순환이 반복됐다. 1년 차를 마칠 즈음에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1년을 더 한다고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과, 지금 그만두면 어중간한 상태로 공무원 준비나 하게 될 것 같은 허망함 사이에서 매일 갈등했다. 그때 내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준 실험실 동료들에게 지금도 참 감사하다.
가끔 뉴스에서 대학원생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할 때면, 학부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마음이 이제는 남 일 같지가 않다. 지금도 어디선가 홀로 끙끙대고 있을 대학원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그 지옥 같은 시간도 결국 지나가고 봄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새로운 환경을 헤쳐 나가는 지금의 삶이 그때보다는 훨씬 낫고 행복하다. 돌이켜보면 그 혹한기가 있었기에 나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만약 오늘도 그때의 나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길 바란다. ‘하늘은 나에게 얼마나 큰 일을 맡기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끝은 반드시 오니, 입학할 때의 초심을 기억하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건네주자.
약 7~8년 전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니, 지금 이 순간이 새삼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가족과 따뜻한 집에서 밥을 먹고, 원하는 직장에 다니며 내 일을 통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박사 과정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계속 도전해 나갈 생각이다. 분명 또 다른 새로운 혹한기가 찾아오겠지만,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어떤 시련이 와도 끝내 극복해낼 나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이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