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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연 Jul 16. 2021

'앓이 금지령'

엄마가 힘든 이유






육아에 힘든 부분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함이 가장 힘든 포인트였다.      


소위 ’앓이‘ 중독자였던 내가, 수시로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아기의 시간표로 성실히 살아가며 충분한 몰입의 시간을 빼앗긴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이 세상을, 온 순간을, 시마다 초 마다 열병처럼 앓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무엇인가에 푹 빠져 있었다. 느슨한 정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늘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특히 아이돌 대환영. 전국 파순이들 이 곳에 누우세요.), 

어떤 시대를 사랑하거나 (우리 나라의 역사는 늘 나를 울게 했다),

어떤 노래를 사랑하거나 (동서 고금 막론, 종적으로 횡적으로 무궁무진했던 음악의 세계) 

어떤 책을 사랑하거나 (파도 파도 끊임 없었던 진정한 대륙)

하물며 내가 먹는 라면 하나에도 온전한 애정을 쏟으며 살았다.     



아이를 낳자, 더 이상 무언가에 몰입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됐다. 몰입이니 앓이니, 그건 네 사정이구요. 내게는 지켜야 할, 돌봐야 할, 사랑해야 할 핏덩이 생명이 있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잠깐 정신을 놓으면 아이는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자랄 수도 없었다. 내가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였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었고, 내가 헤쳐 가야 했다.      



모든 ’앓이‘가 금지된 내게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허락된 앓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아이 하나를 온전하게 사랑하며 애달프도록 앓는 일이었다.      




아이 옆에서 24시간 징그러울 정도로 피부 접촉을 하고,

온 몸이 닳아 없어지도록, 물고 빨고 예뻐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태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목이 쉬도록 매일 이야기 했다.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네가 정말 좋다고,

네가 태어나서 정말 기쁘다고. 네가 얼마나 예쁜지 아냐고.

네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는지 모른다고.      

매일 아이가 하는 작은 행동을 슬로우 비디오처럼 놓치지 않고 보았고,

아주 작은 행동과 소리 하나 놓칠새라 조선왕조실록 마냥 매일 아이에 대해 기록했다.



     

너와의 시간을 통째로 갈아마시듯, 나는 온전히 너만을 앓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인 내가 가장 먼저 너의 작은 변화를 알아채도록 

네 곁에 온전히 있었고 너에게서 눈돌리지 않았다.          

너의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공유하고, 독점하고, 한 없이 누렸던 시간을 통과한 우리.     



짠! 하고 뭔가 보여줄 엄청난 것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무엇을 상상하든 여전히 Ing 중이다. 원래 육아란 그런 것이니까. 단 기간에 ’짠‘하며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서로 투닥투닥 하다가도(서로 친구 아니고 제가 엄마 맞구요) 5초도 안돼 미안하다 사과하고, 서로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고 좋은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앓고 있는 중이다.     

세상이 온통 나였던, 내가 우주였던 너와

온 우주의 중심이 너였던 나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앓고 있다.     



+     



네가 점차 자라나며, 예전처럼 아주 조금씩, 작게나마 다시 세상을 앓고 있다. 

세상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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