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을 일종의 전문적인 직업군으로 본다면 글의 소용에 따라 어떤 글이든 능숙하게 써내려가야 하겠지요. 나는 대체 이 생에서 뭘 제대로 하고 사는 걸까요.
유독 어려워하는 글들이 있어요. 실용문… 은 그럭저럭 쓰지만 좋아하지는 않아요. 글자수가 제한되어 있는 카피도 고역스럽기는 하지만 가끔 씁니다. 투쟁적인 언어가 들어가야 하는 글들은 도통 쓰지 못해요. 성명서나 고발문 같은 것들이지요. 가끔 써야할 일이 생겨요.
부탁을 받으면 일단 거절합니다. 내 성격을 생각하면 정말 강경하다 싶을 정도로 딱 잘라 거절해요. 하지만 이 청탁이 돌고돌아 나한테까지 왔다는 것은 부탁하는 사람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라 결국 쓰게 돼요. 그리고 원고를 보내고 수정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끙끙거리고 수정해보내고 다시 더 세게 써달라는 부탁이 오고 그렇게 무한수정을 거치면서 글은 누더기가 돼요. 그렇게 내가 쓴 글이지만 정말 내가 쓴 글같지 않은 글을 어렵게 써서 보내고 나면 드물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서 개제 확인 후 원본을 삭제해버리는 때도 있아요.
소모가 심한 체질이라 자극이 강한 것들을 피해요. 공포영화라던가 갈등요소가 많은 드라마 같은 것들이요. 보고 있으면 앉은채 하얗게 불타는 기분이 들어요. 촌스러운줄 알지만 그 상황에 너무 쉽게 빠져들어요. 텍스트는 일단 읽고 해석한 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재연하는 것이니 거리두기가 쉬운데 감각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이미지, 소리에 약해요.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하며 내는 소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일가족을 몰살했다는 최초의 범죄기록에 마음이 멈춘 적이 있어요. 너무 섬뜩하지만 나는 그를 어쩐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어요.
며칠전 , 마음이 약한 사춘기 아이에게 큰 소리로 꾸지람을 하자 아이가 기절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네 생각이 나니, 물끄러미 안부를 전하시던 지인이 있었어요. 전 그렇게까지 마음이 약하진 않아요, 하면서 웃었지만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순간 사방이 캄캄해진 기분이 들기는 했어요. 나도 큰 소리를 싫어하거든요. 깜짝 놀라 까맣게 수그러들었을 아이의 마음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최근에 우여곡절을 겪으며 누더기로 만들어 보낸 글에 대한 감사인사 끝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하지만 써주신 원글이 좋았어요, 숲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거든요,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글이었어요.
맞아요, 난 모든 글에 마음을 엎지르나 봐요. 섣부르게도, 철이 없게도.
글에만 엎지르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제는 순간순간 마음을 쏟아버려요. 얼룩투성이 옷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어요.
마음을 엎지르는 일로 상처는 받지 않지만,
내 마음의 얼룩이 어지럽지는 않았으면 해요. 얼룩이 아닌 무늬가 되어 오늘, 이 흐린 오후의 모퉁이를 지나가는 이에게 문득의 쉼이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