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아감벤 <내용 없는 인간>

by 별이언니

얼마 전 친구들과 아름다움을 이루는 틀과 결국 틀을 허락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서로 침묵했던 것 같다. 뇌의 관성으로 일정량의 문장이 만들어지고 혀와 입술이 부지런히 움직여 소리를 내놓지만 생각의 발목이 잡혔다.

<내용 없는 인간>. 제목을 보고 나는 물 먹은 손을 소의 잔등 위에 올려놓던 순한 눈매의 시인을 떠올렸다. 그의 "내용 없는 아름다움"은 여전히 뜨거운 화두다. 시인은 가도 시는 남는다. 그리고 시는 마치 그것이 아름다운 것의 운명인 마냥 이리저리 흩어지고 찢겨져 걸개처럼 거리에 걸려 나부낀다.

때때로 시를 그냥 가만히 들어올려 그 청신한 이마에 이마를 맞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아감벤이 열 편의 에세이에서 뜨겁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허무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두렵다. 그것이 결국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예술에 주 오일 운동과 유기농 식단을 권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거푸집도 되지 못하는 순간에 매몰될 수는 없다.

한 시인의 이름을 들으면 가만히 떠오르는 어떤 시를 갖고 싶다. 그것은 내용 없는 인간인 한 예술가가 손톱과 발톱이 다 닳도록 허무의 벼랑을 기어올라 만난 꽃과도 같다. 바람이 불면 툭, 부러져 사라질 아름다움을 끌어 그는 시안에 영원히 박제한다.

철학자는 차갑고 냉소적인 눈으로 예술과 예술가와 '취향의 인간'을 바라본다. 아니, 차가운 눈빛 안쪽에는 와글거리며 터져나오기 직전의 함성이 있다. 그리고 그 함성의 열기는 지금 여기의 예술, 예술가도 갖고 있다. 우리를 끝없이 집어삼키려고 달려드는 어떤 허기에 맞서며 세계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움켜쥐려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세계와 인간을 이루는 근간, 어떤 정서다. 인간의 말로 차마 빚어지지 않는 '근본'을 향해 예술가는 끝없이 몸을 던지고 불화하고 길항한다. 새로움만을 갈망하지는 않는다.

그런 희망으로 오늘도 시를 쓰고 읽는다. 어떤 아름다운 정서를 가만히 들어올려 이마를 맞대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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