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명사가 아니라 그저 대신하는 명사인데도, 사람들은 그를 질투하고 질타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웃는다는 이유로, 똥오줌 못 가리고 웃는다는 이유로 그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아무 데서나 물색없이 웃는 이를 발견하면 사람들은 즉각 그를 소환했다 평소와 같이 그가 웃을 때면 이런 말이 날아들었다 좋아? 살 만해? 만족스러워? 그가 웃길 때면 이런 말이 메다꽂혔다 우스워? 웃음이 나? 만족스러워? 평소와 다르게 물속에서도 만족은 녹지 않았다 불 속에서도 만족은 타지 않았다 오줌 앞에서도 똥 앞에서도 만족은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사람은 고유명사로 태어나 보통명사로 살아간다
제 이름을 대신하는 명사로 분해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분해서 허허 웃어버렸다
<그> 중
자다가 문득 생각났다. 나는 평범해요,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던 어느 오후를. 이후의 대화는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평범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평범한 게 제일 어려운 것 아닌가요 등등. 발화부터 전개까지 흔하디흔했으며, 언제나 그렇듯 결말은 없었다. 말은 어색하게 끊기고 잠시 바람에 굴러가는 비닐봉지를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갔다.
가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어서 손가락으로 얼굴을 더듬는다. 단추도 제대로 잠그지 못하는 무딘 손가락은 어리둥절한 허허벌판을 허우적거린다. 아직 얼굴이 남아있어? 커다란 구멍 속으로 이미 함몰된 것은 아니고?
나는 평범해요. 이를 악물고 말하면서 나는 찻집의 냅킨 뒤에 커다란 토끼를 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생각했다. 오늘 내가 지시대명사를 얼마나 썼지?
글을 쓰고 다시 읽으며 지시대명사를 지운다. 무의식적으로 참 많이 쓴다. 이, 그, 저. 이 감정, 그 사람, 저곳. 이름을 부를 수는 없어도 거기 마음으로 지그시 인화하고 싶은 지점. 고유명사와 보통명사 사이 그 어딘가에 나의 세계가 있다. 비록 지금도 나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지만.
갑자기 구두의 윤곽이 느껴지고 머리카락이 무거워지는 순간도 있지 않은가. 모르는 사이인 시인이 내 앞으로 와 나도 모르는 나의 얼굴을 근심스럽게 훑는다.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간절함이, 함부로 붙박지 않는 다정함이, 그러나 '나'를 근심하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 대명사인 나를, 없음의 대명사인 나를 그렇게라도 불러 흩어지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