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단면이 깨끗해야, 다시 이어붙일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재화와 용기는 헤어졌지만, 그들의 절단면이 깨끗하지 않았기에 다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연애란 너무 깨끗하게 끝나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물론 어떤 연애든 결코 아무것도 아닐 순 없겠지만.
어렸을 때는 향이 없고 아무도 모르게 지는 꽃이 좋았다. 목련이 싫었다. 감당할 수 없이 커다란 꽃송이가 함박 벌어지는 것도, 그렇게 커다란 꽃잎이 시커멓게 멍들어 나뒹구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울며불며 안달복달 상한 마음을 기어이 까뒤집어 보이는 것 같아 불편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은 불편하다. 하지만 눈물을 흘릴 눈도 험한 소리를 쏟을 입도 없고 휘저을 손도 바둥거릴 발도 없는 꽃이라면 저렇게 상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지금은 목련이 지는 자리에 잠시 머물곤 한다. 올해의 목숨이 끝나가는 마당에 지나치게 초연한 것에 정이 붙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시커멓게 말라붙은 꽃자리가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아이가 아니고, 몇 번의 연애가 나를 지나갔다. 절단면이 깨끗한 연애는 없었다. 다행인 것은 깨끗하지 않은 절단면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흉도 희미해진다는 것.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아도 아무런 것도 아니라는 것.
그렇게 아물어버리기 전에 재화와 용기가 다시 사랑하게 되어 좋았다. 물론 그들의 사랑이 다시 끝날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이별을 맞으면 재화는 아홉 번 용기를 죽이지 않아도 될까. 설령 재화의 소설 속에서 아홉 번 아니면 열두 번 용기가 죽더라도 더 이상 용기의 피부에 재화의 문장이 새겨지지는 않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소설 속 아홉 번 죽은 용기처럼 현실의 용기도 근사한 용사는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재화의 손에 유리조각 하나는 쥐여줄 수 있었으니. 그것도 정말 현실 연애 같아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현실 속의 공주는 용의 목에 직접 칼을 꽂는다. 그러기에 해피엔딩,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