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적당한 질서가 있어서 인간이 문명을 이루었다는 과학자의 말을 들었다. 인간은 삼천 년 전부터 뇌를 감량하고 있다고, 그 이유는 지식을 외부에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을 발명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이 문자를 만들고 기록을 시작하면서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지적 능력은 감퇴했다. 아마도 최초의 기록 이후에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기 시작했을 텐데,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친절한 우주가 질서정연한 탓에 이만큼은 이해했지만 그 이후 인간은 꾸준히 스스로의 지적 용량을 줄이고 있다는 건. 과학자는 덧붙였다. 인간처럼 단순한 지능을 가진 존재가 우주를 이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적당한 질서가 이 세계에 부여된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우리는 굉장히 희박한 확률로 태어나는 상냥한 세계에 살고 있는 거라고.
나의 불운, 나의 우울, 나의 슬픔, 나의 절망, 나의 괴로움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다정하고 상냥한 세계에 있다. 까마득하게 오래전 어쩌다 태어난 행운이 깃들어서. 빗방울 떨어지고 그친다. 하늘이 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