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조르노, 아이와 떠나는 이탈리아 여행
허둥지둥 엄마의 삶은 늘 소소하고 분주하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는, 지극히 사소하고 자잘하지만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건들에 대응하는 삶이기에 그렇다.
“뭐? 벌써 6월이야?”
내심 불안했다. 이번만큼은 미리, 부지런히 움직여서 준비하며 피로를 쌓은 채 떠나는 여행을 피하고 싶었건만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사건은 엄마의 야심 찬 계획을 물고 늘어졌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구내염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연우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라면 알 것이다. 아이의 유치원 등원 여부에 엄마, 아빠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의 삶이 질적으로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돌보며 소아과에 오가는 일로 6월은 흘러가고 있었다.
“후아, 숙소 예약해야 하는데…”
도대체 이 말을 몇 번째 하고 있는지. 사실, 나는 여행의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첫째도 숙소, 둘째도 숙소, 셋째도 숙소인 사람이다. 무조건 5성급 호텔! 풀빌라! 물론 이런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숙소란 여행의 여정 가운데 잠만 자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말하자면, 내게 숙소란 여행 중에 우리 가족이 ‘사는’ 며칠 간의 ‘집’이랄까. 처음 밟아보는 낯선 여행지에 다정하게 우리를 맞이하고, 쉼을 제공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또는 며칠 간의 머묾이 선물 같았으면 좋겠다. 숙소 문을 여는 순간, “고생 많았어! 편히 쉬고 가!”라는 인사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은 생각보다 더 근사하다!
그러니, 여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숙소 예약이 한 곳도 완료되지 않은 상황은 무척이나 초조한 일이었다. 우리 부부가 계획하는 모든 여행에서 숙소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 여기에는 여러 번의 여행 끝에 내린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는데 ‘기준이 더 높은 쪽이 숙소를 담당하자, 정도가 될 것이다. 남편이 고르는 숙소가 별로라는 게 아니라, 내 기준이 더 높다는 뜻이다. 그게 그건가... - 비행도 그렇지만 숙소도 서두르지 않으면 덜 마음에 드는 곳을 더 비싼 값에 이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연우의 컨디션이 회복될 즈음에서야 시작된 숙소 검색은 사흘 정도 이어졌고, 늦게 시작한 대가로 나는 낮이고 밤이고 틈만 나면 예약 사이트를 뒤져야 했다. 아, 그때 그 숙소 어디였더라. 좋아 보였는데. 잘 정리해 놓을걸, 을 수백 번은 되뇌면서. 과정이야 어쨌건 마지막 날 숙소를 예약할 때의 기분은 언제나 짜릿하다. 일단 비행과 숙소 예약을 마치고 나면 출발은 할 수 있으니까. 세부적인 일정은 여행지에서 즉흥적으로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출발 2주 전쯤에야 비로소 구체화되었다. - 이탈리아 자유여행이란 걸 생각하면, 그것도 여행메이트 가운데 하나가 만 3세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다소 나태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
우리의 여행은 로마에서 시작되어 시에나, 포르토 베네레, 피렌체, 발도르차를 거쳐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7박 8일의 일정으로 계획되었다. 처음 우리가 계획했던 건 이탈리아 남부여행이었다. 그러다 이탈리아 정보 검색 중 발견된 사진 한 장에 피렌체가 끼어들었고, 몇 년 전 다녀온 친퀘테레까지 슬쩍 끼어들면서 남부가 빠진 채로 루트가 완성된 것이다. 차근차근 풀어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코스였다. - 아, 토스카나여! -
예약된 숙소는 총 여섯 개. 여행 중에는 ‘아뿔싸! 연우가 있었지’를 뒤늦게 떠올리며 매일 숙소가 바뀌는 일정을 후회한 순간이 있었지만, 막상 다녀오고 나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여행은 낯섦이고, 배움이고, 도전이기도 하니까. 더욱이 아이가 ‘함께’하는 여행일 뿐, 아이를 ‘위한’ 여행인 것은 아니니까. 그 과정을 엄마, 아빠와 함께 겪어낸 연우는 그만큼 성장했다고 믿는다. 적어도 매일 짐을 풀고 싸기를 반복하는 그 엄청난 일을 해냈으니 말이다!
대략적인 여행지가 정해지고 나면 렌터카와 지역별 방문지 등을 담당하던 남편과 숙소 예약을 담당한 내가 마주 앉는다. 지도 위에 우리의 여행 코스가 선명히 그려지는 순간이다. 우리 두 사람이 아주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준비한다는 건,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첫 유럽 여행이니만큼 이번에는 ‘J’력을 발휘해 예약한 숙소를 표로 정리하는 수고도 들여보았다.
첫째 날은 12시간 비행의 피로를 풀어야 하니, 공항 근처의 아늑한 아파트먼트가 좋겠어.
둘째 날은 연우를 위한 숙소로 선택했어. 농장 동물들과 놀 수 있는 곳이래!
셋째 날은 우아하고 한적하게 쉬어가 보자. 바다가 보이는 숙소면 좋겠지?
넷째 날은 피렌체의 중심에 머무는 게 좋겠어. 무조건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다섯째 날은, (숨겨진) 한 명의 여행 메이트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발도르차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곳에서 디너를 즐겨보자.
마지막 숙소에서는 로맨틱한 로마의 아파트에서 이틀 살기로 마무리해 보는 거야.
나의 숙소 브리핑이 끝났다. 신기한 건, 각자 수집한 정보가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어? 나도 거기 저장해 뒀는데! 가자, 가자! 어느덧 결혼 8년 차인 우리 부부는 좀처럼 싸우는 일이 없다. 쿵, 하면 짝, 하는 사람과 일상을 살아가는 일도 즐거운데 하물며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어떠하랴! 이제 어느 정도 된 것 같으니 남은 2주는 우리의 일상을 성실히 살아가기로 한다. 출근 준비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청소를 하다가, 잠이 들기 전에 이따금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공유하며.
어쨌든, 숙소 예약이라는 나의 가장 큰 임무는 마쳤으니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디데이가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이가 없을 때의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만 3세 아이를 데리고 7박 8일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만 3세! 더욱이 비행시간은 무려 12시간이다. - 밤 비행기가 아니다, 아침 비행기다! - 자, 이제부터 무엇을 챙길 것인가! 엄마의 고민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