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혹시 오만이었을까.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
먼 훗날의 일이어서 마치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생각했던 그 무엇.
아니, 그렇다 하여도 오만이라기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마지막 인사였다.
연우의 돌잔치를 마치고, 주일을 보내고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해
고생 많았다, 고 하시던 아버님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왜 우는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정신을 차리는 것이 사치라는 듯
어쩌면 기다렸다는 듯이 진행되던 장례의 일정 앞에
역시 믿을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의 전화로
쉴새없이 진동하던 아버님의 핸드폰은 어느덧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버님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연우였다.
조금이라도 예측했더라면,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의 그 날이 많이 달라졌을까,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어느 날처럼 나와 연우에게 장난을 치던 신랑의 눈빛이
불과 몇 초만에 뒤바뀌던 순간.
몇 시간 만에 서게 된 자리, 그리고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
슬픔을 미뤄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어쩌면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사이
억지로 억누르고 참아야했던 그 서러움이 폭발했을까.
아빠한테 다녀올게, 하는 그의 어깨가
1년을 굳건히 버티고 있던 가장으로서의 뒷모습이
아빠를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싶은 30대의 아들로 변해있었다.
햇살이, 바람이, 흙이 그를 위로해주기를.
그를 토닥여주기를.
뺨에 닿는 차가운 바람이 아빠의 손길이기를.
아내와 딸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의 무게를 의연하게 견뎌주어 참 고맙다고.
그동안 참 잘 해왔다고, 목덜미에 닿는 햇살이
아버님의 목소리를 실어주길.
열 두 번의 한 달.
아니, 우리에겐 삼백예순다섯 번의 하루.
하루만 힘내자, 오늘 하루만 잘 지내자.
그렇게 쌓인 날들이 벌써 1년이 된 오늘.
시간의 흐름이 야속하고, 다시 찾아올 일상이 버거워도
그는,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그 삶의 길 위에, 나는 묵묵히 동행할 뿐이다.
때로는 같이, 때로는 앞서서, 때로는 뒤에 서서
방향을 묻고, 건너갈 방법을 나누며, 그렇게 또 1년을.